佛境淨無埃 부처님 경계는 맑아 티끌이 없으니
如如坐妙悟 한결같고 한결같아 앉아 오묘하게 깨칠 수 있지.
菩提花正開 진리의 꽃이 지금 바로 활짝 피었으니
覆陰成淸趣 그늘이 덮여 맑은 정취를 이루었네.
去去速歸來 어디를 가시더라도 곧바로 다시 되돌아오고
一誠化百災 한 번 정성으로 온갖 재앙을 없앤다네.
心存阿彌陀 마음속에 아미타 부처님을 지녔으니
萬般全無懼 온갖 경우를 다 겪어도 두려움이 없다네.
- 부처님 경지(佛境), 승예(僧叡)
사진=장명확
선시는 우리나라에서만 쓰여진 것은 아니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사실인데, 우리는 자칫 중국이나 일본에서 쓰여진 선시에 대해서는 무심하게 넘기기가 쉽다. 아니 아예 그런 것이 있는지조차 깜빡 잊을 때도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 선시가 좋은 만큼 이국의 선시 세계는 어떤지도 관심을 가져볼 만한 일일 것이다.
사실 선시의 시작은 육조혜능(六祖慧能, 638-713) 스님의 시에서 출발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그 잘 알려진 오조홍인(五祖弘忍) 스님이 두 제자 혜능과 신수(神秀, 605-706) 사이의 법력 시험을 하면서 낸 과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남돈북점(南頓北漸)이라는 두 수양 방식이 갈린 것도 두 분 스님의 이 시 대결에서였다.
그러나 중국 불교사를 보면 혜능 스님 이전에도 많은 스님들이 한시를 남긴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이 분들의 한시는 교학(敎學)을 익힌 분들이라 선시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수행을 하면서 얻은 부처님의 진리의 말씀에 대해 느낀 생각들이 잘 담겨져 있다. 오늘은 이런 스님의 한시 가운데 한 편을 읽어보도록 하자.
위 시를 쓴 승예(378-444?) 스님은 중국 동진(東晉) 시대 때 활동했다. 하남성 장락(長樂)에서 태어났는데, 젊어서부터 출가에 뜻을 두어 18살 때 승현(僧賢)에게 사사하고, 24살 때에 스승의 곁을 떠나 여러 산문(山門)을 유력했다. 불전의 번역가로 유명한 구마라습(鳩摩羅什)이 장안(長安)에 오자, 그에게 사사하고 스승의 불전 한역(漢譯)에 참가하여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과 대지도론(大智度論), 중론(中論), 12문론(門論), 대품경(大品經), 소품경(小品經) 등의 서문을 썼다. 오랜 뒤에 여산(廬山)에 들어가 혜원(慧遠) 스님에게 귀의하여 정업(淨業)을 닦았고, 남조 송(宋)나라 원가(元嘉, 424-453) 연간에 아무 병 없이 입적했다.
사진= 장명확
우리 불가의 화두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을 들라면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가 아닐까? “달마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까닭은 무엇입니까?”로 번역되는 이 말은 부처님이 깨달으신 진리의 세계가 무엇인가를 묻는 것과 같다. 이 시는 그런 화두에 대한 대답에 해당할 만한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부처님 경계는 맑아 티끌 하나 없는 곳으로 정의하지만,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금단의 구역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여여해서 앉은 자리에서 곧바로 깨칠 수 있다고 단언한다. 해탈이니 깨침은 거룩한 스님네들의 일이니 우리 같은 범인이 어떻게 흉내나 내겠냐고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 닿지 못한 경지라면 그것을 참된 경지라 말하기는 어렵다. 누구나 수행을 통해 갈 수 있는 곳이라야 참된 경지일 것이다. 그 곳은 일단 들어가면 진리의 꽃이 사계절 울긋불긋 피어있고,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그늘도 있어 맑은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온 사방이 극락세계다. 부처님의 가피력은 온 누리에 미만해 있어 어디를 계시든 바로 내 곁에 계시는 것과 같으며, 중생을 모두 제도하겠다는 거룩한 정성으로 세상의 온갖 재앙과 번뇌를 말끔히 씻어낸다. 이렇게 스님은 다양한 묘사로 부처님의 경지를 묘사하고 알려준다.
시의 마지막 구절은 결론이자 권유이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고 마음속 깊이 아미타 부처님을 잘 모셔 어디를 가더라도 흔들리거나 의심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것은 단순히 부처님께 의지하려는 마음을 가지라는 뜻이 아니다. 내 자신이 이미 부처님의 경지를 마음 밭 속에 일궜으니 그렇다는 것이다. 깨침의 세계에 닿게 되면 내가 곧 부처니, 그 아름다운 빛을 이제는 밖으로 돌려 중생 제도의 길로 나가라는 취지가 담겨 있다.
건방진 소리겠지만 부처님 경지란 게 별 게 아니다. 무애(無埃)의 경지. 바로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무엇일까? 그 간단한 이치를 모르고 번뇌와 물욕에 빠진 중생들은 아귀다툼을 벌이다가 허망하게 목숨을 버리고 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