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차는 우리에게 ‘오래된 미래’를 전한다
보이차의 주 생산지인 중국 운남성 최남단 지역을 서쌍판납이라고 부른다. 난창강의 북쪽으로는 역무와 고육대차산이, 남쪽으로는 맹해와 포랑산이 유명하다. 그 남쪽 포랑산 부근에 낙생호(樂生號)라는 ‘호’급 보이차가 있었다. 호급보이차는 1949년 이전의 골동보이차 시대의 명칭이다. 몇 십 년이 지난 지금에 그 품질의 명맥을 이을만한 차를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이름에 ‘호’를 넣은 듯하다. 대표적 젊은 보이차 제조 기술자 양위화, 이정이 2012년 ‘위화호’라는 이름의 차를 만들기 전의 2004∼2011년간의 브랜드가 ‘낙생호’다. 그 새로운 ‘위화호’ 가운데 양위화 공방에서 고차수로 전통기법대로 만든 차로 ‘포랑산 꺼쟈오’가 있다. 이 이름을 달고 나온 차들은 발효와 숙성이 잘되 우린 차탕의 색도 은은한 황금빛에 더하여 붉은 빛이 감돈다. 참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지향하는 그런 생기가 도는 그런 생생하면서도 참으로 맑고 밝은 차 브랜드다.
‘98년 포랑산 청병’의 경우 우리나라에 들어온 2006년에는 진기가 8년밖에 안되었지만 그다지 싸지 않은 12만원이었다. 그런데 불과 7년만인 2013년에는 8배나 급등해 100만원을 넘었다. 지금은 품절되어 구하기도 어려운 전설적인 차가 되었다. 포랑산의 고차수만으로 만든데다가 부드럽고 발효도 늦은게 특징이다. 게다가 수량도 적고 맛이 진기가 같은 다른 차보다 월등하다보니 보이 ‘차맛’을 아는 사람들이 알아본 것이다. 지유명차 강남점 박종하대표가 우려내준 포랑산 꺼짜오는 이 차가 귀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단박에 바로 가르쳐 줬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17년이 된 지금 차, 물, 사람 등의 ‘조화’를 귀중히 여기는 차예사가 팽주가 되어 우려서 낸 맛도 좋다. 무엇보다도 우려낸 다음에 보이는 차엽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입천장에서도 텁텁한 듯한 맛의 여운이 꺼끌꺼끌한 게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도 높은 차다. 그러기에 사라고 했는데도 미리 못산 사람들은 땅을 치고 후회하게 한 명품 ‘차’다. 내키지 않는 표현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득이하게 ‘격’은 ‘가치’를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격’의 측면에서가 아니라 친구인 8년 된 차와 교류하고 22년 이후를 내다보고 ‘오래된’ 미래로서 도반을 고른 안목에는 찬사를 보낸다.
중국정부가 계획경제의 끝을 선언하자, 보이차를 만들던 차창들은 2004년부터 사유화가 진행되었다. 우리에게 알려진 보이차의 대부분은 맹해차창(지금의 대익차창)에서 나왔다. 대규모공장에서 대량생산을 하는 보이차들도 좋지만 중국에서 보이차 붐이 일어난 2000년부터 다시 시작된 수제차의 맛이 더 낫다는 의견도 있다. 보이차는 밥과 반찬처럼 매일 마시는 존귀하면서도 평범한 음식문화다. 그냥 삶의 일부다. 집에서도 누구나 자유롭게 보이차를 만들다 보니 개인 차창에서의 제조법은 제각각이다. 누구나 전통방식에 따라 보이차를 만들되 가풍(家風)에 따라 새로운 시도도 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호급 보이차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대지차(재배대엽)로만 만들면 결국 밋밋한 차품을 갖는다. 그래서 고수차가 들어가야 보이차 다운 훌륭하고 웅장한 맛이 난다. 흔히들 좋다고 알려진 야생차는 진짜 야생차가 아니다. 100% 야생차는 사람들이 마시기에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구토와 복통을 동반하기에 누구도 상용화를 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신 야생차의 줄기와 가지를 잘라서 잘 관리해서 듬성듬성 방목하듯이 심은 차를 ‘야생차’라고 하니 진짜 야생은 아닌 셈이다.
이런 방치형이 좋은 찻잎을 가진다. 서로 좀 멀리 드문드문 떨어져 있어야 뿌리가 암반까지 잘 내리기 때문이다. 재배형인 대지차는 너무 따닥따닥 붙어 있어서 애초부터 좋은 맛을 기대하기가 어려워진다. 하지만,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대지차가 어느 시점이 되면 참 좋은 맛을 내기도 한다. 그러기에 보이차 공부가 어려운가 보다. 학원과외를 받는 학생도 훌륭하지만 그건 선생님도 훌륭했을 때 이야기다. 학원도 안다니고 학교공부를 했다고 해도 분명 뛰어난 아이가 있는 것도 사실인 것과 마찬가지인가 보다. 보이차를 통해 자연을 대하다보면 차공부가 아니라 사람, 인생공부를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 받아들이게 한다.
‘야생차’와 ‘대지차’그리고 고차수를 어떻게 브랜딩하는가에 따라서 차맛은 완전히 변한다. 1997년과 98년 사이 처음으로 고차수만으로 딴 차가 나타나기도 했다. 2000년까지는 kg당 가격이 같았기 때문에 모두들 대지차를 주로하고 모자라면 고차수까지 가서 따와서 보이차를 제조하기도 했다. 수제차는 정성들여 만들긴 하지만, 다 좋은 것도 아니다. 잘못 만들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까닭에 누가 만들었는지가 점점 중요해진다. 농산물의 경우 생산자가 누군지 알아야 한다. 생산지는 물론 생산자까지 표시되어야 하는 게 농산품이다.
먹는 걸로 장난치는 이는 현대사회에서 살아남지 못하게 해야 한다. 거꾸로 가장 중요한 먹거리에 보다 깊은 관심을 갖지 않는 현대인에게도 책임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일일이 구매자인 고객들이 그걸 확인할 수 없으니 믿을 수 있는 유통판매자가 그걸 해줘야 한다. 유통판매자가 어디서 누가 만들었는지 어떤 방식으로 만들었는지 정확히 알아야 믿을 수 있다. 그래야 엉뚱하고 이상한 가격도 안 매기고 바가지도 씌우지 않게 된다. 또한 고객의 수요를 점검해서 생산자에게 알리는 양방향 소통 채널도 가동해야 한다.
위화호의 경우 GU명차의 박현 회장이 직접 중국으로 건너가서 브랜딩을 비롯해서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전달한다고 한다. 우리들의 입맛을 고려한 앞으로 위화호의 차맛이 어떻게 변할지 기대되는 부분이다. 아니 확신되는 부분이다. 2012년 10월에 위화호에서 만든 ‘포랑대엽’이라는 보이숙전(보이차 숙차로 만든 벽돌모양의 전차)의 맛이 그 증거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한다. 이 말은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또는 ‘뿌린대로 거둔다’라는 불교의 인과응보·윤회·연기법과도 상통한다. 호급보이차보다 발전된 형태의 최선의 보이차를 만들려는 생산자, 유통자, 소비자 모두의 희망이 모였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법고창신(法古創新)이다. 옛 것(호급골동차)을 본받아 새로운 것(위화호)을 만들어 낸다는 의미로서 『논어』에 나오는 온고지신과 유사한 의미를 지닌 말이다. 우리에게 인도 라닥의 별명으로 알려진 ‘오래된 미래’가 주는 또 다른 호칭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살피면 나라고 집착할게 없는 ‘참나’의 오래된 미래를 찾을 수 있다. 그 미래로 향한 스스로의 운명 흐름에 부합하며 사는 것이 ‘순리’다. 하늘의 명이라는 ‘천명’에 부응하는 ‘스스로의 운’이 ‘사명’이다. 차는 기술이 아니라 삶이다. 그래서 다도가 아니라 ‘차의(茶毅)’가 맞다. 그걸 모르면 차를 30년을 우려도 소용이 없다. 선방에서 30안거를 나온 운수납자인 선승들이 아직 깨치지 못한 것과 같다. 오직 마음공부를 통해 스스로의 사명을 아는 사람만이 차의 ‘오래된 미래’를 알 수 있을 따름이다. ‘물아일체’의 차(스승)의 미래가 그걸 잔잔하게 가르쳐준다.
하도겸 박사/ 칼럼니스트
* 사진은 지유명차 인사점의 문대혁 점장이 제공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