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6년, 문무왕 즉위 16년 되는 해에 태백산 자락 봉황산 중턱에 터를 잡은 부석사는 1,300여년의 역사를 이어 오고 있다. 세월이 흘러 신라왕조는 몰락하고 새롭게 들어선 고려왕조가 들어섰지만 부석사는 여전히 해동화엄종찰로서의 굳건한 반석을 유지하고 있었다.

9세기 부석사에서 출가하고 수학한 여러 스님들 중에는 신라 선종의 고승으로 추앙받은 스님들이 많았고, 이후 고려조에 들어서도 부석사는 국사(國師)가 주석하는 최고의 사찰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918년 고려 개국이후 조선이 개창한 1392년까지 부석사에는 원융(圓融)국사, 현오(玄悟)국사, 충명(沖明)국사, 진각(眞覺)국사 등이 주지로 주석하면서 의상스님의 화엄을 계승 발전시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470여년의 고려사에서 부석사의 위상과 역사를 알만한 자료는 매우 드물다. 앞서 언급한 여러 국사들의 비문에 잠깐 언급되고 고려사나 기타 문헌에 드문드문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고려시대 부석사의 가장 큰 사건으로는 1358년 왜구의 침입으로 무량수전 등이 소실된 것과 1203년 무신정권에 반발하여 스님들이 난을 일으킨 것이다. 이 두 사건으로 인해 부석사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 위상까지 격하되거나 축소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남아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고려시대 부석사의 역사를 정리해 보면, 1041년 원융국사가 부석사에 머물면서 대장경을 인쇄하고 대장당(大藏堂)을 건립 혹은 중수했으며, 1146년 현오국사가 부석사 주지로 주석하였다. 1201년에는 조사당 단청이 있었고, 1203년 부석사 승도의 난이 일어났으며, 1250년 충명국사가 부석사 주지로 있으면서 『불설아미타경』을 판각하였고, 1358년 왜구의 병화로 무량수전이 불에 탔으며, 1372년 진각국사가 부석사에 주석하면서 무량수전과 조사당을 중건하였다.

대장단

천장방

특히 부석사에는 고려 중기에 판각된 것으로 추정되는 거란본 ‘3종『화엄경』(40, 60, 80권본)목판’ 6백여 장과 고려시대 판각한 『묘법연화경』목판 등이 다수 전하고 있다.

이외에도 1198년 사천감(司天監) 이인보(李寅甫)가 경주도(慶州道) 제고사(祭告使)로서 산천을 돌며 제사를 지내고 돌아가려던 길에 부석사에 머물렀으며, 1202년 경주와 청도 운문산(雲門山) 일대의 민란(民亂)이 발생했을 때 진압군의 수제원(修製員)으로 자원하여 종군한 이규보(李奎報)가 부석사에 와서 ‘부석사 장육(丈六)에 올리는 축원문’을 지어 부처님의 가피로 난리가 진압되기를 기원한바 있다.

또한 보물 1647호로 지정된 경북 성주 심원사 소장 「길흉축월횡간 고려목판(吉凶逐月橫看 高麗木板)」이 고려 고종 6년(1219) 6월에 부석사에서 원당주(願堂主) 중태사(重太師) 지○(知○)스님이 편찬하였다.
 
이보다 앞서 1101년 고려 숙종의 명으로 의상스님을 원교(圓敎)국사로 추증하고 그 비석을 세우게 했다고 하였으며. 이즈음 대각국사 의천스님은 부석사를 참배하면서 ‘부석존자예찬문(浮石尊者禮讚文)’을 짓기도 하였다.

고려시대의 부석사 가람 규모는 어느 정도였을까. 현재 남아 있는 건물 중에서는 무량수전과 조사당이 있지만 문헌기록과 출토 유물로 볼 때 다수의 건물들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 중 대표적인 건물로 취원루를 들 수 있다. 조선 후기까지 전해오던 취원루는 본래 무량수전 서남쪽 축대 위에 위치한 누각으로 전국적으로 유명했다.

후대의 문헌이지만 1785년에 작성된 ‘예천 용문산 창기사(용문사) 만세루 상량문’에는 “장대하고 미려한 볼품은 취원루에 양보할지라도 크고 우뚝함은 조양루에 손색이 없네”라고 적혀 있어 취원루의 명성을 미루어 알 수 있다.

고려후기 문신인 안축(安軸1287-1348)은 자신의 저서인 『죽계별곡(竹溪別曲)』에서 ‘취원루(聚遠樓)’에서 노닐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이 누각이 늦어도 고려시대부터 전해오던 건물임을 알 수 있다.

이밖에도 부석사에는 다수의 승당과 함께 ‘대봉지원(大鳳之院)’과 대장당(大藏堂), 천장방(天長房), 수비원(守碑院) 등의 당우가 있었음을 출토 유물과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지난 호에서 이미 언급한바 있지만 고려시대 부석사는 무량수전을 중심으로 동서 각 2㎞ 즉 10리에 이르는 사역을 형성하고 있었음을 현장 조사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이후 조선시대의 문헌 등에서 보다 구체적인 전각들의 명칭이 등장하지만 현장 조사과정에서 출토된 유물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통일신라시대의 것도 확인되고 있어 고려시대까지 부석사는 국찰(國刹)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음호에서는 이번호에 소개된 ‘천장방’이라는 시설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원융국사가 부석사를 중창 혹은 무량수전 중건했다며 ‘원융국사비’의 비문을 인용하고 있지만 정작 비문에는 그런 내용이 전혀 없음을 밝혀 둔다. 이로 인한 폐해가 실로 막대하여 무량수전과 부석사를 연구하는 이들에게 결정적인 오류를 안겨주고 있어 추후라도 관련 연구자들의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