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의 중심 건물인 ‘무량수전’은 그 유명세만큼이나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남아 있다. 대부분의 참배객이나 관광객, 혹은 답사를 하러온 학생들 등등은 무량수전 안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적다. 설령 들어온다고 하여도 간단히 참배만하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많은 이들이 그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거나 혹은 기둥에 기대어 멀리 소백산의 연봉을 바라다보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전통사찰 중 근자에 단청을 새로 하지 않았거나 보수를 않은 경우 내부의 기둥을 잘 살펴보면 100여 년 전 혹은 그보다 오래전에 그곳을 다녀간 이들을 만날 수 있다.
이번에는 바로 100 여 년 전 부석사 무량수전을 다년간 이들을 소개한다.
잘은 모르지만 100 여 년 전에는 법당에 먹과 벼루, 그리고 붓이 비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비치된 붓으로 자신이 다녀간 흔적을 남기거나 소원을 적어 놓았던 것으로 보인다.
연휴를 맞아 부석사를 찾은 사람들이 무량수전에서 참배를 하고 있다. 모두들 무슨 간절한 소원이 있을까. 100 여 년 전의 사람들이나 오늘을 사는 사람들, 그리고 미래에 우리가 왔던 이 길을 다시금 찾을 그들을 생각하니 파란 가을 하늘에 흰구름이 눈에 들어온다.
그럼 무량수전에 남겨진 사연들을 살펴보자.
1.奉化 乃城面 虎坪居 ●●● 戊申년 四月 過此.
1908년 혹은 1848년 4월에 봉화 내성면 호평에 사는 누군가가 다녀갔다.
2.慶尙道 榮川 韶川居 佛前望●●
경상도 영천(영주) 소천에 거주하는 누군가가 부처님전에 뭔가를 기원한 내용.
3.安東 前川居 金在喆 己亥 三月十五日 太白山 浮石寺 過此
안동 전천에사는 김재철이라는 사람이 1899년 3월15일 부석사를 방문했다.
4.慶尙北道 安東郡 豊地(山)面居 金龍信 所願 乾命 己●生(기축생일 경우 1889년, 기묘생일 경우 1879년), 坤命 丁亥生(1887년생) 生男 就願文
경북 안동에 거주하는 김용신(1889년생 혹은 1879년생)이 1887년생 아내와 함께 무량수전에 와서 아들 낳기를 기원하고 축원한 내용으로 이들의 나이를 대략적으로 환산하여 이 기록을 남긴 시기를 역산하면 1900년대 초일 것으로 보인다. 경상북도라는 지명을 사용한 것도 대략 그 시기쯤이다.
5.榮川居 李鐘岐 李鐘夏 庚寅年 三月 二十日 過此
영주에 거주하는 이종기, 이종하 이 둘은 형제로 보이는데 1890년 3월20일에 부석사에 다녀갔음을 기록하고 있다.
6.●●道 ●●郡 丹山面 南木里居 金錫宰 一生所願 父母壽命康寧●●●富貴多男●●●●千万●●
부분적으로 글씨 판독이 어렵지만 전반적으로 유추해보면 경상도 순흥군 단산면 남목리에 사는 김석재라는 사람이 일생의 소원으로 부모의 수명장수와 부귀, 자손번창을 기원하고 있는 내용이다.
7.慶尙北道 ●●里居 ●●生 再拜 無量壽佛前 多男子●文章●祝伏
경상북도라는 지명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1900년대 초에 무량수전을 참배하면서 무량수부처님을 참배하고 득남을 축원한 내용이다.
8.安東 甘泉面 ●洞里 丙戌 九月二十三日 姜永淳 金益洙 崔道述 過此
감천면은 지금은 예천군 소속이었으니 이 글을 기록할 당시에는 안동에 속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감천면이 예천으로 속한 연대가 1914년이었으므로 이 병술년은 1886년 경으로 추정된다. 강영순, 김익수, 최도술 아마도 이들은 친구들로 함께 부석사에 유람을 왔다가 글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
9.順興 三人 五月十二日 具炳魯 具萬秀 姜在喆 今日同遊記
순흥에 사는 구병로, 구만수, 강재철이라는 사람이 시기는 알 수 없지만 5월 12일 부석사에 유람을 왔던 것을 글로 남긴 것이다.
10.光緖十三年 過此
1887년에 왔다가다.
11.경상좌도 구장 선물샤나 오경문이 그축 七월六일 영고과차아라
대구시장(?) 선물내에 사는 오경문이 기축년(1889년) 7월 6일 왔다 갔다
12. 갑진생, 경술생, 경오생, 병인생, 기해생, 임진생과 갓치왔소.
1800년대 중반에 태어난 사람 5명이 왔다갔음.
무량수전 기둥에 적힌 옛 사람들의 소원. 경북 안동에 사는 부부가 득남을 기원하면 적은 것이다.
현재 무량수전내 기둥에 적힌 묵서(墨書) 가운데 대다수는 부석사에 언제 누구와 왔다갔는지를 밝힌 내용이다. 일부 묵서에서는 앞서 밝힌 내용과 같이 간절한 소망들을 적은 것들도 있다.
그냥 스쳐지나갈 수 있는 아무런 의미 없는 낙서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그동안 무량수전을 다녀간 옛사람들의 소박한 꿈과 정들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