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란 어떤 것일까. 사람들은 보통 불상이나 탑, 전각과 같은 유형의 문화재를 문화재라고 생각한다. 이들보다 조금 더 문화재에 관심을 둔 이는 바라춤을 추거나 탈춤을 추는 것과 같이 일정한 형태가 없는 것도 문화재임을 안다.

그런데, 사실 문화재를 지금처럼 유형과 무형으로 나눈 두 가지 카테고리로 구분 짓는 것 역시 충분하지 못하다. 나는 문화재로 인정할 일정한 기준이나 틀이 없을지언정, 법정 스님과 같은 분, 특히 『무소유』와 같은 책을 써 세상 사람들에게 무한한 청량함을 불어넣어주고 있는 분들이야말로 진정한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라고 생각한다.

청소년기에 나는 별난 욕심이 있었다. 헌책방에서 오래된 책과 자료들을 구해 읽고 또래 친구들이나 선배들과 토론을 해서 내 주장을 관철해야 속이 편했다. 금서(禁書)를 사려고 며칠 동안 뒤진 끝에 어렵게 구했으나 불심검문을 당해 압수당하고 파출소에서 하룻밤을 보낸 적도 있었다. 이런 내 행동을 걱정하던 부모님은 내가 군대를 간 틈을 이용해 분서갱유(?)를 단행했다. 책들을 없애버린 것이다. 그때의 심정은 여자 친구와 헤어진 것보다 더 슬펐다.

20여년 전부터 우리 것이 좋아 혼자서 전국을 돌아다니다 문화재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고 싶어 14년 전에 목수 신영훈 선생님을 찾아갔다. 당시 선생님이 나에게 던진 화두는 이것이었다. “자네 혹시 수집 취미가 있는가? 우리 문화재 공부 하려면 그런 취미는 버리게!”

나는 순간 멍했다. 물질적으로는 돈이 없어 골동품을 모으지 못하지만 정신적 의미로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말씀인데, 이 양반이 어떻게 나를 꿰뚫고 있지! 한참을 고민했지만 급한 성격은 여전했으니 집으로 가서 책장 구석에 있던 법정 스님의 『무소유』(범우사)를 꺼내 들었던 기억이 있다.

인간의 역사는 자기네 몫을 좀 더 늘리기 위해 끊임없이 싸우는 과정이며, 소유욕을 채우기 위해 물건뿐만 아니라 사람까지도 소유하려 한다고 진단한 30년 전 법정 스님의 혜안은 오늘날에도 어김없이 증명되고 있다. 우리들의 소유 관념이 때로 우리들의 눈을 멀게 하며 그래서 자기의 분수까지도 돌볼 새 없이 들뜨게 되는 것이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법정 스님의 ‘무소유’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무관심하거나 피동적인 삶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세상사를 사랑이라는 관용으로 더욱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실천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경직되고 흑백논리만 강조되는 세상에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한편 잘못된 것에 가차 없이 돌팔매를 던진다.또한 ‘무소유’는 무관심이나 포기를 의미하지 않는다. 경쟁을 하되 옆과 뒤를 따뜻하게 보는 것이라 한다.그러나 스님의 ‘무소유’에 대한 가르침에 아직도 나는 어리석을 뿐이다.

오늘날도 이따금씩 법정 스님의 책 무소유를 펼쳐들곤 한다. 스님의 가르침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어쩌면 지금의 모습이 아닌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가고 있을 지도 모른다. 스님의 가르침, 즉 피동적이고, 무관심한 것이 무소유의 진정한 가치가 아니라, 다양성을 존중하고 잘못된 것이나 불의를 보고는 가차 없이 돌팔매를 던질 줄 아는 용기를 갖는 것이 진정한 지혜요, 무소유 정신이라는 가르침이 오늘날의 나를 만들어준 것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그러나 아직도 나는 법정 스님의 무소유 정신을 늘 머릿속에 간직하고, 그 가르침을 사회에 올곧게 적용하는데 늘 부족함을 느낀다. 스님의 책 『무소유』를 대할 때마다 언제나 스스로 모자람과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그렇기에 법정 스님과 스님의 책 『무소유』는 내게 영원한, 그리고 값진 문화재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