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내 생에서 2008년 2월 10일은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안개속의 풍경” 보다 더 절망적이었다. 차기정권의 신자유주의독재와 수구독재에 대한 지루한 싸움에로의 “안개속의 전망”과 평소 큰 어른으로 따르고 싶었던 일제 때 노동운동가이며 항일 운동가이고 “안개속의 자유당” 시절에 미국과 이승만에 반대하고, 대중문화운동에 헌신하셨던 조문기 선생의 영결식이 바로 내일이었다. 필자는 장례일정에 모두 참여하기로 하고 준비를 하기로 했다.
어둠이 한 참 익어가는 장례식장 앞으로 설 연휴를 이겨내고 내일 다시 노동의 현장으로 퍼부어져야 하는 자들의 고통스러운 자동차행렬을 바라보다 잠시 실내에 들어와 뉴스를 보니
숭례문에 연기가 모락모락 한다. 순간 필자는 전기 누전이나 무분별한 보여주기씩 야간고열조명으로 인한 가열상태에서 발화가 된 것으로 착각했다. 이윽고 언론사 기자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뭐라고 생각하느냐 인데 내가 안 보고 어찌 아는가? 바로 집으로 가서 카메라를 들고는 현장으로 달려갔다. 현장은 아수라장이었다. 하도 답답해서 문화재청 담당과장에게 전화했더니 말로는 “자기가 죽일 놈 이란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철밥통을 차고 있다.―

화재현장에서 소방관들은 처음에는 느긋하다가 불이 꺼지지 않자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언론사 기자들이 소방관보다 더 많이 보였다. 시간이 갈수록 현장은 아수라장이고 불은 확대되어갔다. 하는 수 없이 “문화재전문위원이다. 내 판단으론 지붕을 깨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붕을 깨고 소방호스를 넣자.” 라고 주문했지만 묵묵부답. 곧 문화재청 과장이 도착해서 필자는 “지붕을 깨자.” 라고 제안했다. 알다시피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타 부처와 유기적인 협조가 되던가? 더구나 훈련도 아닌 실제상황에서 문화재청과 소방방재청의 협력은 불가능했고 “안개속의 숭례문 일대”는 한 치의 앞도 볼 수 없는 비극의 현장으로 내닫고 있었다.
그리하여 한국의 상징, 국보중의 국보 등 온갖 미사여구에 이용되어 왔던 숭례문은 우리 마음속에서 사라졌다. 이후 대법원은 숭례문에 불을 질러 전소시킨 방화범에게 징역 10년을 확정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반사회적인 범죄행위를 저지른 만큼 책임이 더욱 무겁다.” 라고 했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문인 “책임” 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것 이 있다.
숭례문 화재와 관련해서 문화재관리의 최고 책임자는 중구청장, 서울시장, 문화재청장에게 있다. 하지만 중구청의 말단관리자가 벌금형을 받은 것 외에는 그 어떤 책임을 지는 고위 공직자가 없다는 것이다. 현행법이나 도덕적, 윤리적인 책임을 지는 고위공직자도 없다는 것이 오늘날 한국사회 고위 공직자의 윤리이라니 씁쓸하고 한심한 생각이외는 없다.
그런데 책임은 고사하고 더 이상한 일들만 벌어지고 있다. 서울시장은 백주대낮에 문화재인 서울시청을 중장비를 동원해 파괴해 버렸다. 더해서 서울은 막개발의 광풍에 휩싸여있다. 광주에서는 전남도청 본관의 반 이상을 철거하고 아시아문화전당을 짓겠다고 한다. 전남도청 본관은 1925년에 한국인 손에 설계된 2층 건물이고 1975년에 3층으로 증축했으며 도시가 팽창하며 공간이 비좁아 옆 날개 부분을 증축했다.
알다시피 전남도청은 광주민주화 운동의 상징적인 건물이며 옆에 증축되어 철거위기에 처한 곳은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이 피의 학살을 시작하며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광주를 생각하면 전남도청을 상징적으로 떠올린다.
즉 1925년에 지어진 전남 도청만이 아닌 옆에 증축된 곳까지 전남도청으로 확인하고 있다.
몇 남지도 않은 광주 민주화운동의 상징물을 “문화의 전당” 입구를 만들겠다고 철거를 감행한다면 의미 없는 존재일 뿐이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말이 있다. 전남도청의 존재는 민주와 인권의 세계적인 상징이다.
또한 개발독재정권에 의한 한반도운하의 변종인 『4대강 살리기 사업』은 강의 역사와 문화를 죽이는 사업에 불과하며 용산참화에서 알 수 있듯이 도시민속이나 켜켜이 내려오는 사람들의 생활문화를 파괴하는 “뉴타운”사업도 박정희 정권의 “새마을운동” 을 영어로 바꾼 아류에 불과하다.
숭례문이 사라진지 1년이 흘렀다. 지난 1년간 반성다운 반성, 대책다운 대책은 없고, 형식적인 매뉴얼과 도식적인 방재훈련, 복구하는데 필요한 돈타령만이 즐비하고 냄비처럼 달구어지며 한 풀이를 하던 사람들은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언론들도 진정성이 없는 형식적인 특집 프로그램만 만들고 있다.
중요한 것은 화재 순간부터 수습 및 복구 과정에서 문화적인 소양이 토대가 되고 냉정하게 진행했어야했다. 화재당시의 진중하지 못한 방식, 책임지는 공직자의 모습, 수습과정의 잔해처리방식에서의 과학적인 역사성 부여, 복구방식의 선진적인 문화행정은 온대간대 없음에 진중한 반성과 대안이 있어야 한다.
공청회 한번 없는 복구방식, 밀실에서 그들만의 복구 안을 놓고 무조건 따르라고 하고, 문화재청 2급 국장이 복구단장이란다. 도편수도 결정된바 없이 목재를 구하고 치목(나무 가공)을 한단다. 한마디로 불탄 숭례문을 이용해서 또 그들만의 배를 불리겠다는 것이다.
요즈음 권력을 손에 넣은 자 들의 횡포가 너무나 심하게 다가온다. 그들은 숭례문을 잃고도 무엇을 더 잃어 가는지 얼마나 더 잃어 가는지 조차도 모른다. 2009년 오늘! 한국의 짙은 안개주의보가 언제 걷어질지….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문화재전문위원/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