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 대웅전
국보 제49호
소재지: 충남 예산군 덕산면 덕숭산
연 대: 1308 년
입을 앞으로 쭉 내밀어야 한다. 덕. 숭. 산. 수. 덕. 사.
산은 절을 만들고 절은 산이 만든다던가. ‘덕숭 낭자’를 사모한 ‘수덕 도령’의 애절한 사연을 품고 조성된 수덕사. 수덕사의 역사는 곧 대웅전의 역사와 다름 아니다. 수덕사 대웅전은 우리나라의 옛 건물 중에서도 정확한 건립연대가 밝혀지고 있으니, 장장 700년이 넘는 연륜과 건축학적 가치는 대표적인 전통 고건축 중 하나로 당당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단청의 퇴색으로 목질이 드러나 있고, 감추지 않아 쉽게 살필 수 있는 부재는 마치 가구를 짜놓은 듯한 구성미와 공예적 정신에 충실한 아름다운 조형미를 부각시킨다.
대웅전 외벽을 장식했던 벽화는 일제강점기에 있었던 보수작업 중에야 발견되었지만, 6.25 전쟁 때 소실되는 바람에 이제는 민낯이다. 본래 대웅전의 벽을 수놓았던 꽃꽂이상과 극락조, 비천의 모습이 있다면 오늘날 대웅전이 자아내는 간결한 자연미와는 또 다른 화려한 분위기와 눈부신 장엄함을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벽화가 생략된 채 사각기둥과 배흘림기둥을 혼재하여 큼직하고 굵은 부재들이 만들어낸 배합은, 주심포 양식에서 보일 수 있는 상단지붕의 육중한 무게감을 안정적이고도 편안함으로 유도하고 있다. 더불어 충남지역에서 나타나는 건축양식으로 건물정면 3칸 중에 가운데 칸을 비교적 넓게 설계하는 특유의 기법을 도입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개방성까지 꾀하는 치밀함이 돋보인다.
전래되는 우리나라 사찰 전각들은 대부분 조선조에 조성된 건축물이다. 조선 중기이후는 임진왜란의 병화를 겪은 터라서 열악한 사정 하에 이루어진 불사였음을 감안해도, 온 나라에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만큼은 팔작지붕의 화려함을 고집한 양식이 많은 편이다.
팔작지붕이 흡사 요리조리 머리를 빗어 올리고 핀을 꼽아 한껏 멋을 낸 헤어스타일에 비유한다면, 맞배지붕은 시원스레 툭툭 커트한 단발머리처럼 경쾌한 느낌이다. 수덕사의 대웅전이야말로 ‘맞배지붕이란 이런 모양이다’라고 할 만한 표본적 건물이다.
앞서서 언급한 건물정면에서 보여주는 아름다운 조형미는 측면을 바라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니, 단순한 주심포의 공포를 측면에서는 세심하게 층층의 도리를 연결하여 움켜쥐었고, 이 긴장감은 소꼬리 모양의 앙증스런 우미량을 통해 연결하면서 아름다움을 배가된다. 대웅전 측면에서는 이 일련의 모습들을 다 드러내 보여줌으로써 육중한 지붕과 견고한 기둥이 하나가 되어, 뾰족하고 강인한 맞배지붕 본연의 멋진 자태가 완성된다.
굳건한 대웅전의 기상을 바라보다 보면 수덕사만큼은 모든 전각을 맞배지붕으로 꾸며 조성했다면, 무척 개성 있으면서도 대웅전의 매력이 몇 배나 두드러지지 않았을까 하는 나름의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오랜 세월을 한결같이 정숙한 자세로 지켜온 대웅전을 볼 때마다 느껴온 감동은 늘 성실함과 겸손함이었다. 그리 크다고 할 수도 없고 요란한 치장이 있지도 않지만, 온갖 풍파를 견뎌낸 세월의 무게감 하나 만으로도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오늘날 수덕사는 조계종의 교구 본사이며 총림의 규모를 자랑하는 사세이지만, 모든 전각과 장엄물을 망라한, 사찰의 구성과 산내 암자는 물론 이름 없는 들풀. 심지어 산자락에 내리 쬐는 따사로운 햇볕까지도 온통 대웅전을 위한 자리매김이며, 대웅전만이 단연 빛나는 형국이다.
수덕사는 현재 규모의 대찰이 들어서기에 적합할 만치 넓고 평평한 터전을 가진 절은 아니다. 현금 조계종단 내에서 매우 비중 있는 덕숭문중의 스님들 역량으로 이같이 큰 규모의 불사가 이루어졌지만, 수덕사 전각의 가람배치는 결국 대웅전을 기준으로 에워싸듯 포진되어 있고, 모든 기운은 대웅전을 부각시켜 돋보이기 위한 짜임으로 여겨진다.
한때 일주문 바로 앞까지 치밀어 좌판을 벌렸던 상가들과 음식점, 숙박업소도 이제는 새로 정비하여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절에 들어서는 진입로는 어쩔 수 없이 왁자한 가운데 온통 먹는 데만 목적을 두고 온 사람들인 양 사하촌의 풍경은 늘 시끄럽고 음식냄새 진동하며 노랫가락이 들린다.
절에 들어선다. 처음 맞닥뜨리는 수덕사는 보는 이를 주눅 들도록 위압적인 일주문이 맞이하게 되고, 올려다보면 마치 내게로 쏟아 내릴 듯 거대하게 양팔 벌리고 있는 황하루를 벗어나면, 이어서 금빛 번쩍이는 탑이 반긴다. 그 다음 탑을 빗겨 다가설 때 드디어는 대문인지 뻔히 아는 문짝에 ‘대 문’이라 써 붙이듯 격에 안 맞도록 큰 대웅전 현판이 보이고 대웅전이 나타난다.
안구정화란 이런 때 쓰는 말인가. 언제나처럼 한결같은 대웅전의 장엄함으로 그 품격에 조금의 손상 없이 당당하게 버티고 맞아주니 가슴이 뭉클해온다. 무엇보다 긴 세월을 잘 견뎌준 대웅전이 너무도 고맙고 잘 지켜 오신 스님들이 또한 고마우며, 쓸고 닦고 온갖 정성으로 보살펴 오신 수많은 우리의 보살님들이 너무도 고맙다.
기둥에 손을 얹어본다. 단청은 잊혀진 지 이미 오래고, 마르다 못해 허옇게 핏기 없는, 할머니의 종아리 같은 푸석푸석함 속에 질긴 세월이 묻어있다.
땀 뻘뻘 적시며 떡시루를 이고 온 할머니가 조심스레 법당 문턱에 떡을 내려놓고는 이 기둥을 붙들고 긴 숨 내쉬며 옷매무새를 고쳐 잡으셨을 게다. 그 분의 뼈마디 거친 손이 느껴지면서, 이내 따뜻한 미소를 만날 수 있다.
법당에 들어서면 우람한 배흘림기둥 두 개가 버티고 있어 하심을 유도하고 천정도, 닷집도 없는 간결한 내부구조 또한 외벽에서 느낀 감동에 조금의 흐트러짐이 없다.
이 같이 내부 장엄을 생략함은 부처님을 진솔하게 만나 뵙고, 자신의 그릇만큼 깨닫고 또 발원 기도하라는 자유스런 편안함을 준다. 따라서 시선은 오로지 부처님에게로 모여지고 부처님과 나만의 공간이 될 수 있어 모은 손에 간절함이 더해진다.
성냥개비 하나에도 순식간에 타버릴 것만 같은 맨살 기둥이지만,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그 누구도 함부로 손댈 수 없는 700여년을 지켜내었으리라.
누군가는 ‘대 여섯 남은 고려시대의 고건축물은 특별히 우수했기 때문에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용케도 살아남은 건물만이 오늘의 우리에게 소개되고 있을 뿐이다’라 말하지만, 끝내 버텨온 질긴 생명력 자체가 남다른 기운을 간직했기에 가능했으리라 본다.
대웅전은 등 뒤로 덕숭산에 기대선 채 남쪽의 충청도 내포지역 들판을 쓸어보고 있다.
앞으로 덕숭총림 수덕사는 시속에 따라 어떤 형태로든 변화가 있을 테고 나름의 발전과 변모가 따르겠지만, 도도한 세월의 격랑을 거슬러 당당하게 서있는 대웅전이 그 자리에 있는 한 수덕사에서 만나는 가슴 설레는 감동은 영원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