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北京)은 나에게 서울과 뉴욕, 보스톤 다음으로 가장 친숙한 도시이다. 박사 공부 중 2년동안 북경에 산 경험이 있기 때문에 도시 곳곳에 무엇이 어디에 있고, 어딜 어떻게 찾아가야 되는지 꽤 익숙하다. 그런데 3년만에 다시 찾은 북경은 올림픽을 위해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해서 그런지 정말로 많이 변해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현대적이라는 신공항에서 부터 새로 개통한 지하철 라인들, 그리고 북경의 새로운 랜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CCTV 타워, 천안문 광장 옆에 위치한 국립 극장격인 국가 대극원 (国家大剧院)등은 북경의 스카이라인과 북경 주민들의 삶의 질을 바꾸어 놓았다. 올림픽 공원안에 새둥지의 모양을 한 스태디움(鸟巢)과 물입방체 모양으로 만든 수영장 (水立方) 또한 북경 올림픽의 상징이자 중국인들의 자존심이다. 오랜만에 자금성에 들어가보니 지붕의 노란색 기와를 전면 교체하고 곳곳을 수리해서 궁 전체가 마치 세수를 하고 새끔해진 모습이다.
3년만에 중국인 도반들을 다시 만나니 반갑기가 그지 없었다. 도시는 변했어도 사람들은 그리 많이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예전에 자주 만났던 찻집에서 즐겨 마시던 차를 마시며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 보따리를 하나 둘씩 풀어 놓는다.
모시는 티벳의 린포체 스님이 작년 가을에 북경에 왔다 가신 이야기, 북경 외곽으로 방생 나가려 했다가 올림픽 때문에 그냥 북경안 공원에서 한 이야기, 사천성에 사는 도반 부모님과 지진 이야기, 최근에 허리가 아퍼서 병원 다녀온 이야기등 격조 했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태어나 자란 나라는 달라도 서로가 서로를 염려해 주고 모든 일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은 국경도 문화도 언어도 다 초월한다.
한족(漢族) 중국인이지만 나의 도반들은 티벳이나 대만 문제에 있어서 상당히 이해의 심도가 깊고 중국 정부의 단순 논리에 완전히 동조하지 않는다. 왜 이런 차이가 있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들의 주변에는 대만에서 온 친한 동료들과 티벳에 계시는 스승님이 있어서 그런것 같다.
누군가 미사일 공격을 해서라도 대만의 분리화를 막아야 한다고 하는 주장을 한다면 내 도반들은 대만 동료의 얼굴과 그들의 가족을 떠 올리는 것 같다. 티벳 독립 시위로 스님들이 끌려갔다는 뉴스를 접하면 또한 티벳에 사는 스승님의 안위를 먼저 걱정하는 것이다.
나 또한 사천성에 지진이 났다고 했을 때 사천 출신의 도반들과 예전 중국어 선생님의 가족들에게 아무런 일이 없는지 염려가 되었다.
사람이 살면서 국가나 민족, 종교로 서로를 나누어서 미워하고 압박하고 심지어는 대량 학살하는 경우를 본다. 보통 그런 경우에는 압박의 대상이 집단화되고 추상화 되어진다. 그러나 압박의 대상 가운데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람이 생겨 버리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미워해야 될 대상이 구체화 되면서 그들도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 함부로 그들에게 총을 겨누거나 국가에서 시킨다고 무조건 그들을 미워 할 수 없는 것이다.
미국으로 돌아와 이메일을 열어 보니 북경의 도반으로 부터 소식이 와 있었다. 박태환 수영 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장면을 텔레비전으로 보았는데 정말로 멋있었다고 말이다.
그러고 보면 중국의 도반들도 한국과 관련된 일을 접하면 제일 먼저 내가 생각나는 모양이다.
혜민 스님(햄프셔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