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녁 9시가 되자 돈황 막고굴(莫高窟) 저편으로 노을이 진다. 강렬했던 사막의 태양도 밤을 알리는 초생달에게 하늘의 자리를 물려주고 꺼져가는 불길 마냥 서쪽 하늘을 불태운다. 사막의 모래산들도 해의 마지막 모습을 구경하느랴 붉어진 얼굴을 드러낸다.
아! 내가 실크로드 한가운데에 서 있구나. 그 옛날 구법승 선배 스님들이 인도로 가기 위해 머물렀던 이곳에 내가 와 있구나.
돈황에 온 것은 예일대 주관으로 2주일간 진행된 학술세미나 및 석굴 참관을 하러 온 것이다.
490개가 넘는 돈황 막고굴을 매일 10굴씩 참관하면서 불교 미술과 돈황의 역사와 사회를 공부한다. 책의 사진으로만 보던 이곳에 직접 와보니 놀라운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이 사막 한 가운데에 이런 웅장한 굴들을 파서 여러 불보살님을 모신 그 정성에 감탄을 하고, 벽화 속의 그려진 부처님 전생담과 각종 변상도를 보면서 그 색깔과 모양과 정교함에 또 감탄을 한다.

세미나와 저녁 공양을 마치고 남는 시간에는 우리가 머무는 막고굴 옆 산장을 빠져나와 사막을 종종 걷는다. 이렇게 해가 지고 별이 뜨는 사막의 하늘을 보고 있으면 천년이라는 시간을 뛰어 넘어 과거로 돌아간 듯 하다. 머리위로 뜬 은하수와 멀리 보이는 막고굴의 모습과 모래 위를 걷는 내 발자국 소리만이 들린다.
다음 날 새벽 6시가 채 되지 않았을 무렵 산장밖 북소리에 잠을 깼다. 올림픽 성화가 내일 도착하는데 그 행사를 위해서 리허설을 한단다. 중국 불교 유산의 대표격인 돈황에 성화가 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같은 외국인들의 참석은 일체 거부한단다.
그 뿐만이 아니라 행사가 있는 당일 날에는 아예 모든 외국인들이 돈황 막고굴 근처에 머무를 수 없다는 지시가 당국에서 떨어졌다. 파리나 런던에서 있었던 성화 봉송 관련 사건들의 기억 때문인지 아니면 외국인들은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 인지 어쨌건 우리는 버스를 타고 2시간 떨어진 안시(安息) 라는 도시에서 그 다음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안시의 호텔 안에서 텔레비전을 보니 돈황석굴 앞에서 벌어진 성화맞이 행사 모습이 방송되었다. 근처 학교에서 동원된 학생들의 모습과 돈황연구소 연구위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행사 모습이 끝나자 올림픽 관련 광고가 나가는데 이번 올림픽 구호가 목소리 좋은 어느 남자 음성으로 우렁차게 전해졌다. “同一个世界, 同一个梦想.” “하나의 세상, 하나의 꿈”이라.
누가 이런 구호를 만들었는지 몰라도 그 세상, 그 꿈 안에는 중국 정부의 검열을 통과한 사람들만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했다. 또한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이나 가치관을 하나로 몰아서 억지로 같게 만들려 하는 선전 문구 같아서 왠지 부담스럽다.
돈황 막고굴로 돌아와 보니 언제 그런 행사가 있었냐는듯이 조용했다. 막고굴 부처님들 또한 세월의 변화를 초탈하신 듯 천년의 선정 미소를 하고 계셨다. 아마도 그 미소가 사막의 정적속의 나에게 주시는 부처님 커다란 법문인듯 싶다.

혜민 스님은
UC 버클리를 졸업하고 하버드대학에서 종교학 석사를 받고 프린스턴대학에서 「7세기부터 13세기까지 중국의 나한 신앙, 설화, 예술, 성지와 의례」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9년 뉴욕 불광선원 주지 휘광 스님을 만나 은사로 출가한 혜민 스님은 2006년부터 햄프셔대 정교수로 재직 중이다. 박사 논문 연구하는 동안 중국 북경과 일본 오사카에서 산 경험을 바탕으로 2002년부터 2005년까지 법보신문 세심청심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기도 했다. 스님은 한국 승려로서 미국내 대학교 정교수가 된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