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동국대는 곧 한국불교를 상징한다. 세기적 급변에 따른 글로벌화에 발맞춰 국제사회에 한국불교를 인식시키고 있는 중추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 바로 동국대이기 때문이다.

동국대가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서열구조에 크게 좌우되지 않고 국제적 위상을 확보할 수 있었던 현실적 배경은 ‘불교학의 중심’이라는 당연적 인식구조에 힘입은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동국대에 부여된 이러한 국제적 인식은 대학의 권위와 함께 한국불교교단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출가승단의 위상에 절대적 영향을 끼쳤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물론 동국대의 존재성이 던져주는 상징적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도외시하고 있는 당체가 출가승단인 점을 감안하면 동국대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동국대를 교육도량이 아닌 헤게모니 대상으로 보는 그들의 습성이 이미 오래전 고착되었다고 보는 대다수 불자들의 시각은 그러한 현실을 잘 말해준다.

동국대는 ‘불교종립’이라는 모태적 신분(?)에 의해 자연스럽게 ‘불교학의 중심’이라는 명성을 얻었고, 그것은 공인된 사실이었다. 불교학만의 범주를 벗어나 학제 간 교류를 통한 불교학의 학문적‧사회적 기능을 제시하는데도 부족함이 없던 시대가 있었다. 적어도 현대기의 불교분규, 이른바 비구-대처승 분규가 발생하기 이전까지 동국대는 그 명성에 부응하며 국내 대학 최고의 권위를 자랑했다.

오늘날 동국대의 현실은 어떤가.

“찬란한 출발, 나락의 현대사”

동국대의 역사적 권위에 가장 부합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사실을 애써 감출 필요도 없고, 기분 상할 필요도 없다. 현실을 곱씹고 인정할 수 있어야 권위와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방안마련이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2.
동국대의 역사성은 여타의 불교종립대학에 매우 소중한 학습효과로 작용할 수 있다. 앞서 동국대의 상징성과 성찰의 배경을 살펴본 까닭은 그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불교종립대학은 근래 들어 중앙승가대‧위덕대‧금강대‧서울불교대학원대‧동방대학원대 등이 잇달아 개교함에 따라 동국대와 함께 6개 대학으로 늘어났다. 동국대와 중앙승가대는 조계종이, 위덕대는 진각종이, 금강대는 천태종이, 동방대학원대학은 태고종이 각각 설립주체 또는 학교법인 대표자로 참여하고 있으며, 서울불교대학원대학은 사립의 보문학원이 운영주체이나 설립자가 조계종 소속승려이다.

불교종립대학은 이처럼 주요종단이 설립주체자로 참여하고 있다. 이는 곧 동국대의 역사성에서도 알 수 있듯이, 종교적 특성에 따른 ‘대학의 기능과 교육의 자율성’이라는 본질적 의제를 현실적으로 얼마나 실현할 수 있을 것인지의 숙제를 안고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얼마 전 불교종립대학 6명의 총장들이 ｢불교종립대학교 총장협의회｣(이하 총장협의회)를 결성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동안 동국대로 상징되었던 불교계 고등교육기관의 면모가 크게 향상된 현실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여간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교단안팎으로 불교와 유관한 핵심사안에 대해 교단 내 고등교육기관의 운영주체들이 ‘함께’ 논의할 수 있는 구도를 형성한 것으로 볼 수 있으니 어찌 반갑지 않겠는가.

불교종립 6개 대학 총장들은 지난 6월 17일 회동한 자리에서 총장협의회 결성에 따른 회장(동국대 김희옥 총장)과 총무(서울불교대학원대 김명권 총장) 등을 선임하고, 앞으로 △한국불교의 발전과 포교방법 △종립대학 간 학문교류와 협력강화 △불교교육의 글로벌화 방안 등을 논의해가기로 협의했다는 전언이다.

총장협의회 결성소식에 불교학을 공부하고 있는 불자의 한 사람으로서 필자 나름의 반가운 마음을 감출 수 없으나, 기대 또한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총장은 여느 조직과 마찬가지로 여타 소임자와는 달리 대학당국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총장협의회는 총장 간의 만남을 넘어서 대학 간의 연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총장협의회가 결성주체인 현직총장의 임기를 끝으로 해체되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할 것이며, 동국대가 보여준 학습효과에 힘입어 부디 생산적인 논의와 학문연구의 현실적 회향을 바라고자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 사회 최고의 지성인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학총장들이 모여 나누는 논의가 고작 허공의 메아리 내지 차담정도로 끝나버리는 일이 발생한다면, 총장협의회를 결성한 취지와 자존심은 물론이고 불교교육을 통한 인재양성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깊이 고뇌해주기를 바란다.

3.
기독교가 세운 대학의 수치에 비하면 불교종립대학의 수적면모는 보잘 것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불교계 고등교육기관의 이러한 현실은 역설적으로 불교종립대학의 역할과 기능이 더욱 강조되고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자 배경이다. 총장협의회의 향후 운영과 관련해 몇 가지 의제를 제안하고 싶은 것은 그 때문이다.

먼저,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라는 상식을 새삼 상기했으면 한다. 학문연구는 다른 분야와는 달리 어떤 명분으로도 정치적 계산과 이해관계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학교재단이나 설립종단으로부터 이를 지켜주는 일이 총장의 역할이요 능력일 것이다.

학문연구는 그야말로 자유분방함 속에서 비로소 발전할 수 있다. 이는 진리다. 종교관련 학문영역은 더더욱 그렇다. 신앙 속에 함몰되지 않는 연구와 그에 기반한 교단적 활동이 전제될 때 진정한 가치의 종교성과 사상성 논의가 가능하며, 한국불교의 발전적인 논의도 이로부터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예로부터 학자가 없는 사회는 이상이 없는 사회요 정견이 없는 사회라고 했다. 영혼 없는 학자라든가 모름지기 서적의 기생충에 머무는 학자가 아닌, 전공분야의 연구에 기대어 사회의 사표가 되고 대중을 교화할 수 있는 포부와 식견을 갖춘 자를 진정한 학자라고 정의하는 까닭이다.

하여, 학자가 걸어가야 하는 공통된 길은 죽은 학문이 아닌 산 학문의 길이어야 한다. 현실적인 문제에 직접적으로 동참하지 못할 지라도 대안적 논리를 제시하거나 일정하게 접근하는 노력은 학문을 연구하는 최소한의 소이요 동시대를 살아가는 지성인의 소명일 것이다.

불교학자의 경우 더더욱 불교교의에 입각해 대중과 시대적 아픔을 공유하고 교단의 불의를 바로잡고자 하는 발심이 필요하겠으나, 종립대학 소속학자들에게 만연되어 있는 교단 눈치보기 현상은 불교학계의 서글픈 현실과 학문연구의 한계성을 대변해준다고 하겠다. 단지 삭발염의한 겉모습과 가당치 않은 신앙성을 앞세워 학자의 의의를 곡해하고 학자의 참된 권위와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승려가 종립대학을 장악하고 있는 한, 대학의 위상은 물론 소속학자들의 비전을 담보한 학문연구와 그에 기반한 사회적․교단적 역할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을 터이다.

종립대학에 소속된 불교학자들의 활발발한 사회참여와 교단적‧신앙적 비판학문을 보장하고 바람막이 해줄 수 있는 방안마련을 총장협의회의 제1의제로 삼아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4.
인사권을 쥐고 있는 학교재단이 대다수 출가승려로 구성되어 있고, 인사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설립종단 핵심인사들의 눈 밖에 날 경우 총장선임 자체가 어려운 현실이고 보면, 총장협의회에 예민한 의제를 상정하는 게 무리일 수 있다는 생각도 없지 않다.

그래서다. 우리 사회 최고의 지성인 집단이요 고등학문의 전당인 대학의 총장들에게 한번 묻고 싶다.

“총장에 어떻게 선임되셨습니까?”

이 의구심은 반드시 우문이 되어야 할 명제다. 문제는 총장으로서의 역할이다. 앞서 총장협의회의 제1의제로 삼아주기를 제안한 내용에 덧붙여 중요한 의제 몇 가지를 상정하고 싶은 게 있다. 종립대학 총장으로서 불교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공동천명한데 따른 몇 가지 현안을 적시하는 바이니,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제도권 밖에서 헤매고 있는 불교학 전공학위자들의 진로와 학부생들의 취업문제에 제자식처럼 발로 뛰어달라는 당부가 그것이다. 단위별 대학의 몫일 수 있겠으나 이왕 대학 간 연대를 의미하는 총장협의회를 결성했으니, 이 기회에 제대로 한번 공동권력(?)을 행사해주기를 앙망한다.

첫째, 대학에 불교학문과 이웃학제간 연구․교류할 수 있는 각종 연구소의 활성화를 통한 전공학위자들의 교차순환제 도입을 제안한다. ‘불교학’이라는 공통분모에 초점을 맞춰 불교인재들의 절망적 현실타개 방안을 총장협의회의 공동과제로 삼아 불교발전논의의 일환으로 섭수해주기를 바란다.

둘째, 불교학 전공학위자들의 현실적 삶의 문제를 설립종단 내지 종단협의회 차원의 불교현안으로 수용해 인재풀을 가동하는 방안이다. 전공학위자들에게 가칭 ‘종단교수’라는 명칭을 부여해 종단관리 하에 있는 전국사찰의 승가대학 및 교양대학과 각종 문화강좌 등에 인적순환제 도입을 통한 인재활용방식이다. 오래 전부터 단위별 대학차원에서도 풀어갈 수 있었던 문제라고 보았으나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했던 사안으로 치부된 바, 총장협의회 출범에 즈음해 거듭 제안하는 명제이다. 경로를 조속히 찾아주기를 기원해마지 않는다.

셋째, 불교학부생들의 자긍심을 키워주는 일이다. 학과선택에 대한 자긍심 고취는 학문적 성과에서도 찾을 수 있겠으나, 졸업 후 취업문제에 직면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졸업생 활용방안의 걸림돌은 출가승단의 사고의식부재가 가장 큰 병폐요, 종립대학과 교단 간의 연계시스템이 전혀 갖춰 있지 않다는 현실이 문제일 따름이다.

총장협의회가 우선 고려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불교학부 졸업생들에게 종단의 포교사 내지 법사자격을 부여해 포교활동기반을 공인해달라는 주문이다. 조계종의 포교사고시제도와 포교사단의 실태를 분석해보더라도 종립대학 4년 과정의 불교학부 졸업생들에게 포교사 내지 법사자격을 부여하지 않을뿐더러, 인재활용에 눈감고 귀막은 이유를 도대체 용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국대의 선례를 들어보면, 105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동국대와 조계종단의 관계설정이 권력의 영역에만 집중되었지 정작 불교인재들의 진로에 나몰라라 해왔다는 사실은 대학과 종단 운영주체들의 안이한 태도를 확인해주는 단면이 아닐 수 없다. 불교대학 모 학과의 경우 학생 수보다 교수인원이 더 많게 된 실정에 직면하자, 급기야 학부학과를 통폐합하는 망극을 보여준, 종립대학 설립의 근간인 불교대학의 초라한 현실은 그대로 한국불교의 미래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여하튼 종립대학 불교학부생들의 진로와 관련해 성보박물관 큐레이터·문화해설사·사찰도서관 사서·사찰연구소 연구원·사찰종무원·템플스테이 가이드 등 불교(사찰)와 유관한 모든 분야에 진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불교학부 커리큘럼에 반영하고, 이를 교단과 연계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점을 밝힌다. 이는 곧 불교(사찰)의 발전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 수준 높은 인적자원의 구체적 활용방안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총장협의회의 면밀한 검토를 촉구하는 바다.

넷째, 군법사 파견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황무지라고 불리는 군포교와 이를 책임지고 있는 군법사 자격부여에 기득권을 앞세워선 안 된다는 제언이다. 현재 동국대와 중앙승가대 출신에게만 부여하고 있는 군법사 자격을 종립대학 전체로 확대해야 한다는 점을 주요의제로 삼아달라는 주문이다. 불교학부생들의 진로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나, 조계종이 독점개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총장협의회의 의욕적인 행보를 요청한다. 포교에 너와 내가 따로 있을 수 없고, 종단을 따지는 일 자체가 기독교공화국으로 회자되고 있는 현하 한국사회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실로 우매하기 짝이 없고 이기적인 배부른 소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5.
“지금의 문명은 날로 발달이 빨라서 네 필의 말이 끄는 마차로도 쫓기 힘든 형편이니, 서둘지 않으려 하나 어찌 서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승려형제들에게 나는 큰소리로 이렇게 절규한다. ‘교육을 방해하는 자는 반드시 지옥에 떨어지고, 교육을 진흥시키는 자는 마땅히 불도를 이루리라’고.”

근대기 만해 한용운 스님이 <조선불교유신론>에서 절규했던 말이다. 만해스님의 이 절규는 1백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데 씁쓸한 뒷맛을 감출 수 없다. 작금의 출가승려들은 교육을 방해하는 자인가, 진흥시키는 자인가.

흔히 “가장 안전빵의 취업은 출가”라는 말이 불교계에 회자된 지 오래다. 종립대학 불교학부 출신들을 비롯한 불교계 재가종사자들의 현실적 애환을 상징하고 있는 이 비언(悲言)을 종립대학 총장들은 가슴으로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총장협의회의 건승을 기원한다. <<STRONG>동방불교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