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다더니 그새 두 달이 훌쩍 흘렀다. 세상에서 가장 두려워할 것도 시간이라고 하더니 담박 60일을 넘겼다.

우리는 두 달 사이에 불교계의 가장 큰 잔치인 연등축제와 부처님오신날 봉축의례를 모두 마쳤다. 납자들은 다시 화두 들고 하안거에 들었고, 그와 상관없다는 일부 승려들은 성지순례 명목으로 해외나들이를 다녀왔다. 안거 주처가 아닌 사찰과 종무행정 등을 멈출 수 없는 종단의 기관_단체들은 내년의 4·8봉축을 기약하며 다시 일상(日常)으로 돌아갈 시점이다.

그래서다. 한번 돌아볼 일이 있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이겠으나, 시간의 수레바퀴는 멈추지 않을 것이고, 또다시 때를 당해 교계 선지식의 인연들이 추한 작태를 연출하지 않을까 심히 염려되는 바 없지 않기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이다. 이점 깊은 양해 바란다.

필자는 두 달 전 본 칼럼에서 대중정서를 빌어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후보 선거캠프 고문 내지 상임고문의 직책을 맡은 불교종단 주요인사 380명의 명단공개를 촉구한 바 있다. 삭발염의한 출가승려로서 잘못 선택한 자신의 행위에 대한 발로참회와 본뜻과 달리 명단에 올라 있는 인사에게는 해명할 기회마저 박탈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명단공개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간언했었다.

수락한 사실이 없는데도 명단에 오른 인사들은 본인의 이름을 올린 자를 발본색원해 자신의 명예는 물론 불교의 위의를 심하게 훼손시킨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며, 명단공개 이후 그들의 행보를 따져 공경할 가치가 있는지의 여부를 판단해보는 일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일 수 있다는 견해도 덧붙였다.

의식 있는 젊은 승려들의 결사체인 ‘청정승가를 위한 대중결사’(의장 만초, 이하 대중결사)도 당시 ‘종단지도부는 MB선거캠프 참여의혹에 대해 공식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제하의 성명서를 공개 발표한 바 있다. 대중결사는 성명서에서 “종단지도부의 입장표명은 부처님오신날 이전까지 나와야 한다”고 못박았다. 물론 종단지도부가 입장표명을 거부할 경우 추가조처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천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두 달 전의 의제를 다시 들고 나선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당시 교계의 대중정서는 물론이거니와 대중결사도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채 지리멸렬하게 지속되기를 원하지 않으며, 의혹해소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분명하게 밝혔으나, 부처님오신날 이전은 차치하더라도 이후의 여한 행보를 아직 접하지 못한 까닭이다.

MB선거캠프 참여명단을 확보하고 있는 곳은 대중결사와 교계 모 언론사로 알려져 있다.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라고 해야 할까. 용두사미(龍頭蛇尾)와 같은 두 단체의 행보를 부처님오신날을 전후한 불가피한 사정으로 이해하고 싶은 것은 지금까지다.

명단공개를 원하는 대중정서에 반하는 행위가 지속될 경우 모종의 정치적 거래가 있다거나 선거캠프 참여인사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불신(不信)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언론의 기능과 그나마 의식 있는 소장승려들로 구성돼 있는 대중결사에 거는 기대를 이쯤에서 거두게 되는 가슴 아픈 일이 부디 없기를 기대해마지 않는다.

이 글을 다시 쓸 수밖에 없었던 진정한 동기는 또 있다. 얼마 전 참으로 통탄을 금치 못할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는 소식을 접하고서다. 내년 12월에 치러질 차기대선에서 여당의 유력한 후보를 지원할 수 있는 교계인사들의 리스트가 작성되고, 이미 줄을 대고 있는 출가승려들의 행보도 분주해지고 있다는 소식이 그것이다. 2007년 대선 당시에도 그랬듯이 내밀하게 추진되고 있는 사안인 만큼 지금으로서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있겠느냐만, 이 같은 소식을 접하면서 소문의 사실여부를 떠나 가장 먼저 필자의 뇌리를 스친 것은 MB선거캠프에 참여한 380명의 명단을 반드시 공개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어떤 명분으로든 출가승려들의 ‘정치 해바라기성’ 행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절실함이 이와 같은 글을 다시 쓰게 한 것이다.

하여, 거듭 촉구하건대 MB선거캠프에 참여한 380명의 명단은 반드시 공개되어야 한다. 명단을 확보하고 있는 당사자-대중결사와 모 언론사-는 더 이상 ‘정치적 거래용’(?)으로 비밀함에 숨겨둬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각성할 필요가 있다. 내년 대선에서 또다시 불교의 자존심이 능지처참되고 출가승려들의 위의가 내팽개쳐지는 어리석음을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실, 정교분리의 헌법조항을 들춰내 정치가 어떻고 종교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일은 이제 식상한 의제일 뿐이다. 사회법에 의거하지 않고도 출가사문의 정치적 행보를 경책(警策)할 수 있는 전거는 없지 않다. 중국 남북조시대 여산혜원(廬山慧遠, 334~416)스님의 ｢사문왕자불경론(沙門王者不敬論)｣이 매우 좋은 사례다.

혜원스님이 ｢사문왕자불경론(沙門王者不敬論)｣을 지어 교단을 향해 “출가승려는 왕에게 예를 올릴 필요가 없다”고 채찍을 내린 배경은 당시 정교유착이 치성(熾盛)하면서 교단과 승려의 타락이 예의염치(禮義廉恥)를 기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혜원스님의 피맺힌 절규는 1600여 년의 시공간을 초월한 우리 시대의 비전(vision)이 되어 지금도 여전히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데, 정작 그 수혜자가 되는 출가승려들은 여전히 정치해바라기의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오호통재(嗚呼痛哉)일 따름이다.

도대체 무엇이 아쉬워 세속정치의 경계에서 헤매는 걸까. 어떤 단맛의 이득이 있어 그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걸까. 정치가 그립다면 삭발염의를 거두고 그 길로 직행하면 될 일인데, 하필 삭발의 모습으로 장삼과 가사를 수하고 우리 사회에서 가장 후안무치(厚顔無恥)하기로 이름난 정치인들의 행보에 줄을 맞추는 행각은 어디서 오는 당당함일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부끄럼 없는 행보가 분노와 울분을 넘어 가련한 마음을 일으키게 하는 이유는 또 무슨 조화일까.

‘불자사문불경론(佛子沙門不敬論)’이라도 지어 출가자들에 대한 공경과 공양을 거둬들이는 일이 정녕 필요하지 않는가 묻고 싶은 것은 그 때문이다. 애재애재(哀哉哀哉)라. 무명(無明)이 두렵고 두려울 따름이다. <<STRONG>동방불교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