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부처님오신날을 맞는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교계차원의 분위기도 그렇고 전국의 단위사찰에서는 봉축행사준비에 몸과 맘이 여념없다. 그래도 마냥 즐겁고 환희심이 충만한 시기가 이즈음이다. 불교집안의 가장 큰 명절이니만큼 출․재가의 모든 불자가 들뜬 마음 가눌 길 없어보여도 그저 좋게만 느껴지는 불교계의 4월 초파일 풍경이다.
그래서다. 매년 부처님오신날 즈음이 다가오면 사색에 젖게 하는 명제가 화두잡기마냥 성찰을 재촉한다. 해를 거듭할수록 발전(?)하고 있는 제등행진 장엄물의 대형화․고급화 현상과 초파일 단상이 그 하나요, 부처님오신날 법정공휴일 지정에 대한 의견이 또 하나이다.
필자의 이 같은 의견개진은 연등축제에 찬물을 끼얹는 망언(?)으로 치부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부처님 생신잔치를 벌이는 불자들의 마음자세가 본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스스로를 한번쯤 들여다보는 여유를 가져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다. 종교적 행위의 구조적 변화를 촉(促)하는 이 같은 제언이 불교본연의 역할과 기능을 우리 사회 저변에 보편화할 수 있다는 의견으로 공론화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필자는 오래 전부터 갈수록 심화되는 제등행진 장엄물의 경쟁적 구도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던 경험을 갖고 있으며, 그러한 생각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물론 불교계의 가장 큰 기념일을 맞는 불자들의 마음가짐을 ‘장엄’과 ‘환희’로 표출하는 일은 불자로서 지극히 당연한 도리일 수 있다는 생각도 없지 않다. 그런데도 부처님을 맞이하는 정성이 단위당 수억의 예산을 들인 대형 내지 고급형 장엄물에 담긴다는 정서는 빈자일등(貧者一燈)의 정신과도 정면 배치된다는 점에서 ‘화려함의 극치’를 조장하는 일을 더 이상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연등축제는 부처님의 탄신을 축하하는 사람들의 지극함이 한데 어우러진, 그야말로 사람잔치로 행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고가의 소모성 장엄물을 조성해 시내대로를 행진하는 방식보다 뭇 대중을 초청해 그들과 함께 삶의 가치를 나누고 다양한 계층의 수많은 사람들이 장엄의 주인공이 되는 화장세계를 현실 속에 시현해 보이는 것이야말로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뜻을 바로 행하는 일이요 부처님을 진정 기쁘게 하는 일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유독 집단 이기가 강한 우리 사회에서 중생교화를 제일의제로 삼고 있는 불교마저 자축분위기에 도취해 더 많은 바깥사람들의 불편을 외면하는 일은 1%의 부유한 인생들이 “내 맘대로 사는 게 무슨 문제냐”는 항변과도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로 편 가르는 부처님오신날 자축분위기는 당일 연등 달기에서 최고조에 이른다. 시주금의 많고 적음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연등의 다양한 크기가 그렇고, 큰 연등에는 어김없이 정치인의 이름을 내건 또 다른 정교유착의 행태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바 없다. 한 해의 대목장사라는 말을 반증하듯 봉축행사를 마친 직후 전국사찰의 적지 않은 스님들은 성지순례(?)라는 명목으로 해외나들이에 나설 것이다. 그들이 부처님오신날 절을 찾아 연등을 달았던 일반서민의 1천원의 가치를 알고 있는지 묻고 싶은 것은 그 때문이다.
필자는 또, 부처님오신날 법정공휴일 쟁취는 기독교 따라하기의 대표적인 사례요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전형이라고 생각한다. 정치권에 기댄 단시각적이고 지극히 집단이기적인 소산의 하나라고 보는 것이다. 부처님오신날 공휴일 지정은 광복 직후인 그해 10월 미군정에 의해 기독교 성탄일(X-마스)이 휴일로 지정되면서, 불교권이 종교간 형평성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한 결과 무려 30년 만에 얻어낸 성과이다. 1975년의 일이다. 당시 불교계는 마치 경쟁에서 승리의 쾌거를 맛보거나 빼앗겼던 성을 탈환한 것처럼 환희의 기쁨을 만끽했다. 우리는 그 당시 부처님오신날 공휴일 지정요구보다 기독교 성탄일의 공휴일 해제를 촉구할 수 있는 지혜로운 사고를 공유했다면 장로대통령 이승만에 의해 불교교단이 난파되는 치욕의 현대사를 피해갈 수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잘 알다시피 정부수립 이래 우리 사회는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다종교사회요 정교분리의 법치국가이다. 다종교사회는 역설적으로 종교로부터 자유로운 사회요, 어떤 종교를 믿든 안 믿든 불편함이 따르지 않는 사회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정교유착을 허용하지 않는 정교분리국가 또한 종교간 차별 없는 사회를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특정종교의 기념일이 국가공휴일로 지정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일뿐더러 있어서도 안 되는 까닭이다.
불교가 우리 사회에서 보여줘야 할 모습은 진정한 ‘종교(宗敎)’로서의 가치를 선양하는 일이다. 불교가 진정한 종교로서의 가치를 선양하는 일의 처음과 끝은 사고의식구조를 대(對)국민 마인드로 전환하는 일이다. 일반국민보다 특별한 대접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고착되어버린 종교계 인사들의 의식구조를 ‘국민’이라는 개념 속으로 예속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선민 내지 특권의식에 함몰되어 시혜받기만을 원하기에 앞서 스스로 국민 속으로 들어가 국민의 불편한 심기를 해소하고 국민의 삶을 보살펴 향상시켜주는 행보야말로 불교가 존재하는 궁극적인 이유이기 때문이다.
종교간의 갈등 내지 위화감을 부추기거나 ‘우는 자식 떡 하나 더 준다’는 논리로 떼를 써서 요구하는 바를 쟁취하겠다는 따위의 행위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익히고 행하는 불자로서 여간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다. 자신의 인생은 물론이고 남의 인생마저 제맘대로 보이지 않는 신에게 봉헌하는 일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유일신 숭배자들의 같잖은 행위를 똑같이 쟁취하듯 따라하는 일은 더더욱 어리석고 우스운 꼴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 때문이다.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가장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정치권을 선도하지는 못할망정 그들에게 기대거나 유착하고자 하는 불교권 인사들의 의식구조를 결코 달갑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다. 다종교사회에서 불교계가 앞장서 종교화합과 진정한 종교역할을 모색하기 위해서라도 부처님오신날의 법정공휴일을 해제하도록 정부당국에 요청하기를 당부한다. 기독교 성탄일의 법정공휴일도 공히 함께 해제하기를 촉구하면서 말이다.
신자 수는 물론 작금의 정치권을 비롯해 교육계․문화계․언론계 등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불교 대비 기독교가 다섯 배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불교가 기독교의 종교편향행위에 편승하는 일은 결국 불교의 고사(枯死)를 재촉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 시각에서 집단이기 내지 종교간 이전투구라는 오명을 벗고 불교의 정당한 사회적 역할과 위상정립을 위해서라도 종교권력을 앞세워 소탐(小貪)의 이득 챙기는 일을 자행해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아울러 이 같은 사고유형의 확대를 통해 복지는 물론 종립학교에서의 종교교육 강제와 국민혈세인 국고보조금의 정당성 문제의식으로부터 문화재관람료 폐지와 종교법인법 제정 등을 추진하는 성숙한 모습으로 우리 사회를 선도하는 불교본연의 가치회복을 기원하는 바다. 전통과 문화 전반에서 고유성을 상실해가고 있는 작금의 한국불교가 ‘국민의 지지’를 얻고 기독교의 도전과 만행을 저지할 수 있는 불씨는 이로부터 타오르기 시작할 것이다.<<STRONG>대해, 동방불교대학교수·교학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