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후보 선거캠프 ‘747불교지원단’의 내부문건이 교계안팎에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불교종단 등의 주요인사 380명이 당시 선거캠프 고문 내지 상임고문의 직책을 맡아 특정후보자를 적극 지원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도한 교계언론의 주장과, 앞서 ‘주권방송’에 출연해 이를 폭로한 교계인사의 발언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여하튼 불교종단 핵심인사 수백 명이 특정후보 선거캠프에 무더기로 참여했다는 전언이 공개적으로 회자되면서 설왕설래 말이 많은 건 막을 길이 없어 보인다.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인원수가 많은 이들의 놀라움을 자아낸 현실이 첫 번째 이유요, 인원수도 그렇거니와 불교종단 핵심인사들을 모두 아우르고 있다는 점에서 회자되는 여파가 만만치 않은 것이 두 번째 이유인 듯싶다. 지난 4일 방송에 출연해 처음 이 같은 사실을 폭로한 당사자가 캠프에 참여한 인사들을 소개한 후 실제로 수락작업에 나섰던 몇몇 재가자들의 명단공개는 원하지 않는다며 이른바 ‘부분 엠바고’를 요청한 행위나, 명단 단독입수를 내세우며 이를 기사화한 교계언론의 제한적 보도가 가당한 것인지 이러쿵저러쿵 말들을 낳고 있는 것이 세 번째 이유이다.
시위를 떠난 화살을 돌이킬 수 없는 것처럼 무성한 말들을 주워 담을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불교종단 핵심인사들을 특정후보 대선캠프와 연결해준 이들의 몇몇이 전․현직 교계언론인이라는 사실이다.
필자는 가라앉을 줄 모르는 이 같은 무성한 말들에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시비를 따지듯 곱씹는 일을 자행하고픈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원론적 입장에서 말들이 많은 작금의 실상에 자아 비판적 가치를 대비해 볼 필요성은 없지 않을까 한번쯤 고민해보자는 차원에서 몇 마디 고언을 해볼까 한다. 정치인의 행태를 놓고 왈가불가하는 정보는 필자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제공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380명이라는 인원수는 현하 불교종단 소속의 삭발염의한 구성원 숫자에 비하면 많은 숫자라고 볼 수 없다. 그런데도 그 파문이 만만치 않은 것은 명단에 오른 인사들이 작금의 불교현실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인사들이라는 점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삭발염의한 이들이 삼독심에 빠진 단면을 우리 사회에 그대로 노출한 셈이니, 어쩌면 당사자들보다 국민과 그들을 모신(?) 선거캠프 정치 인사들의 불교를 바라보는 시각이 어떨까 불자 한 사람으로서 심히 자괴감과 함께 자존심이 상한다는 것이다.
불교인사 380명이 특정후보 선거캠프에 참여했다고 밝힌 당사자나, 이를 밝힌 언론이 일부 명단만을 보도한 의도 또한 갖가지 오해와 의혹을 불러일으키는 사실에 대해서도 재고해주었으면 한다. 상당한 폭발력을 갖고 회자되고 있는 이러한 사실을 폭로 또는 보도하는 일이 정당한 행위라고 판단했다면 어떤 이유에서라도 정치적 저의가 숨어있다는 대중의 비소를 감수하는 자체가 어불성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여, 380명의 명단은 반드시 공개할 필요가 있다. 굳이 헌법조항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정교분리는 비정한 정치인들보다 종교인이 먼저 지켜야 할 도리요 금기일 것이다. 더욱이 여느 종교인들보다 삭발염의한 출가승려들이 정치인의 선거캠프에 드나드는 모습은 모든 걸 감안해서 보더라도 볼썽사나운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다. 명단은 반드시 공개되어야 한다. 캠프참여를 수락한 인사는 인사대로 이면의 인연관계 때문에 그랬다고 하더라도 삭발염의한 이로서 잘못 선택한 자신의 행위에 대해 발로참회해야 한다는 대중정서를 일깨워줄 필요가 있다. 아울러 본의와 달리 명단에 올라 있는 인사에게는 해명할 기회마저 박탈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명단공개는 필수적이며, 수락한 바 없는데도 명단에 오른 인사들은 본인의 이름을 올린 자를 발본색원하여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자신의 명예는 물론 불교의 위의가 심하게 훼손당했는데도 이를 방치한다면 스스로 캠프참여를 인정하는 행위가 될 것이며, 명단공개 이후 그들의 행보를 따져 공경의 가치여부를 판단해보는 일도 의미있는 일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끝으로 불교인사와 선거캠프의 연결고리로서 소임을 다한 전․현직 교계언론인들에게 애정을 담아 당부하고 싶다. 정치적 행보는 종교를 선택하는 행위와 다르지 않는 신념의 소산일 수 있기에 한 말씀 덧붙인다.
그렇다. 바로 그 신념에 의한 행보를 요청하고 싶은 것이다. 전직은 전직이기에 더더욱 그러한 의식구조를 분명히 하여 자신의 진로를 선택해야 할 것이며, 그 선택에 당당할 수 없을 때 그 선택은 잘못된 것임을 알고 스스로를 바로잡아주면 될 일이다. 현직의 경우에는 그 경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두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정치적 행보를 하고 싶다면 그 자리를 떠나는 당당한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스스로 불자임을 자부하면서 불교의 명예를 빌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거나 우를 범하는 일은 동시대 불자로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공(公)은 공이요 사(私)는 사일 뿐이다. 공을 취하되 사적인 인지상정을 인정할 수 있는 경계가 있고, 견해를 분명히 밝혀야 하는 경계가 있다. 그를 잘 구분하고 선택하는 일이 곧 팔정도요, 그 가운데 특히 정견(正見)․정사유(正思惟)․정명(正命)이 아니겠는가. <<STRONG>동방불교대학 교수, 교학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