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경이로운 눈으로 스님을 바라봤다. 스님은 심각한 얼굴로 정성스럽게 차를 우렸다. 아주 좋은 차를 내주겠다는 스님의 호언장담에 가슴은 부풀었다. 이윽고 찻잔을 입술에 댄 그때, 스님이 내게 장난을 치는 건가, 청년은 의아했고 스님의 얼굴은 더없이 진지했다.

“이게 차 맛이면 맛이 없는 게 차 맛인가?”

청년은 충격을 받았다. 맹물 맛이었다. 궁금했다. 맛있는 차라는 것이 대체 어떤 맛인지. 그때부터 차를 공부하고 차를 사다 먹기 시작했다. 물맛이 좋아야 한다 하여 산에 올라 석간수를 받았고 불이 좋아야 한다 하여 직접 숯을 만들기도 했지만 여전히 차 맛을 알 수 없었다.

차 맛에 목마른 나날, 청년은 마침내 스승을 찾았다. 큰절을 올리고 차에 대해 알고 싶다 청했다. 스승과 함께 차를 만들고 스승의 차와 자신이 만든 차를 비교해보면서야 비로소 햇차가 이런 것이구나, 느꼈다. 그렇게 차를 알고 차를 마시고 차를 만든 지 벌써 30년 세월이 흘렀다.

승주에 위치한 야생차밭 6천 평을 가꾸며 제다 작업실 ‘다보원’을 운영하는 진벽 유수용 씨의 집을 2013년의 달력을 한 장 남긴 어느 날 불쑥 찾았다. 항시 무덤덤한 얼굴로 솔직하게 말하며 때로 너털웃음을 짓곤 하는 그와 마주앉아 평소 궁금했던 차 이야기를 물었다.

“차 마셔 차인이면 길 가는 사람은 도인?”

태어날 적부터 찻집 딸내미로 차를 접해온 내게 차는 별 게 아니라 차였지만, 어떤 이들은 차에 예(禮)를 결합해 범접하기 어려운 무언가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이따금은 불편하게 느껴졌다. 다도, 다도예절, 다도 자격증 등으로 대변되기도 하는 오늘날 ‘그들만의 차 세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웃기다”. 그의 첫 대답이다. “차를 마신다고 차인이면 길 가는 사람은 도인이고 밥 먹는 사람은 식인이냐, 차가 무슨 벼슬이냐?” 되묻는 그의 대꾸에 설핏 웃음이 난다. “술은 마실수록 싸가지가 없어져서 격식이 있어도 된다. 하지만 차는 그런 게 필요한 게 아니다. 차는 마시면 마실수록 정신이 또랑또랑해진다”는 것이 이유다.

이어 초의 스님의 <다신전>을 이야기 한다. “차의 대가라 하는 초의 스님도 차를 맛있게 먹기 위한 방법을 안내하지, 이렇게 먹어라 저렇게 먹어라 하나도 안 한다. 차는 폼 잡기 위한 것이 아니고 말똥한 정신으로 인간다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는 그는 “차는 차를 마시며 찻값을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주인과 손님의 머리가 가까워지는 것”이라 말했다.

차가 고급문화라는 인식에 일조하는 것은 만만찮은 가격 때문이다. 실제 수제녹차를 판매하는 그도 “그럴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숱한 시행착오를 겪어서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지 단순한 가격 때문만은 아니다. 쓴 맛을 즐길 수 있고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 사람들에게 차는 결코 비싸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 일반적으로 인건비가 싼 나라에서 들여오는 커피와 단순 비교하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말도 더한다.

“차는 기호…맛에 대한 감각을 아는 것”

청년 유수용이 아저씨 유수용이 되고 어느덧 중년에 접어들기까지 몰두하고 있는 차란 그에게 무엇일까. 단번에 나오는 대답은 차가 특별하단 생각이 안 든다는 것이다.

“차는 하나의 음식이다. 기호음료이고. 다만 차는 단번에 알고 마시기가 쉽지 않구나, 훈련을 통해서 맛을 알아가는구나 라고 생각한다. 단맛에 길들여지지 않고, 맛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 기호에 따라 생각할 뿐, 특별한 것이 아니다.”

그는 스스로 차를 마시는 사람에게만 도움이 되는 사람일 뿐, 차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의미 없는 사람이라 덧붙였다. 의미가 없는 사람이라니. 차인은 무릇 ‘내 차가 최고’라는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그는 대수롭지 않게 “(한때) 나도 그랬다” 한다.

“어릴 땐 ‘좋은 차’를 정해놓고 만들어서 고생도 많이 했다. ‘내 차가 좋은 차’라는 고집도 많이 부렸다”는 그가 불쑥, 차가 언제 제일 맛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계절로 치차면 햇차가 나는 봄일까? 재료를 생각하면 어린 두 잎 사이에 창처럼 솟은 새순인 1창 2기를 말하는 것일까? 고요히 앉아 마시는 명상차일까, 좋은 사람과 함께 마시는 차일까? 숱한 대답을 가늠하며 우물쭈물하는 내게 그는 ‘처음에 만들었을 때’라 자답했다.

“차는 처음에 만들었을 때가 제일 맛있다. 뭐가 잘못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해마다 만들면 만들수록 차가 맛이 없다고 느껴졌다. 20년이 지나니까 ‘좋은 차’를 만드는 건 모르겠고 뭐가 잘못됐다는 것은 안다” 한다.

차를 만들 때 자신의 기호를 고정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어떤 이에게 당신의 차가 제일 맛있다면, 그의 기호에 맞을 따름이지 우쭐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차를 마실 때 중요한 것은 ‘아는 것’이다. 자신의 감각에 맞는 자신의 기호를. “차는 맛이 특별하지 않아 어렵다. 차를 맛있게 마시려면 차 맛에 관심이 있어야 한다. 차는 개인의 기호”라는 그의 말을 곰곰 씹어본다면 조금 더 수긍하기가 쉬울까.

한편 차를 마시는 것이 감각과 입맛에 솔직해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그는 무조건적인 커피지상주의와 중국차지상주의를 경계한다.

“커피나 중국차가 맛있다는 것도 잘 생각해볼 일이다. 사대주의적인 생각일 수 있다. 커피의 강한 맛은 탄 맛이다. 탄 맛이 정말 맛있는 맛인가? 다른 사람들이 맛있다고 하니까 나한테도 맛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아닌가? 자기 입맛에 솔직했으면 좋겠다. 자기 기호와 풍토에 맞는 차를 찾는 탐구의 시간이 길어지고 맛을 습득해가면서 좋은 차를 찾게 된다.”

“치우치지 않아야 질리지 않아”

유수용 씨는 스물두 살에 지리산에서 차를 만들었고, 스물아홉에 다보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갓 스무 살이 넘은 청년 유수용이 처음 차를 시작했을 때 주위 어른들은 그에게 ‘미친놈’이라 했다. 그 어른들, 이제는 유수용 씨의 차 마니아가 됐다.

차가 나기 시작하는 5월이면 다보원은 여러 사람의 인적으로 활기를 띤다. 제다 체험을 하러 오는 이들도 있지만 특히 대학 후배들의 발걸음이 꾸준하다. 대학시절 불교학생회에서 파생해 창립한 차 동아리로 인연을 맺은 후배들이다. 그들은 바쁜 직장생활 중에도 시간을 쪼개 다보원을 찾는다. 비결이랄 것은 없다. “차를 알려주고 차 만드는 것을 알려주면 스스로 차 맛이 변하는 걸 알게 된다. 그 매력을 알면 저절로 빠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맹물 같은 차에 무슨 맛이 있는지 궁금해 시작했던 것 말고, 30년이 다 되도록 차가 좋은 이유는 뭘까. 질리지 않는단다. “차나 밥이나 물이나 질리지 않는 것은 치우친 맛이 없어서다. 중도는 모르겠지만 치우치지 않는 것을 아는 것. 치우친 맛이 없기 위해서 다섯 가지 맛이 조화를 이루게 하고, 치우쳤구나, 아는 것이 중요하다”며 “향에 맛이 어울리고 맛과 색이 조화를 이루면 그게 좋은 차 아니겠나”고 반문한다.

유식학에서 장자, 논어, 프로이트 심리학에 이르기까지 일반인과 학생을 대상으로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는 그에게 ‘다선일미’라는 운을 띄워봤다. 차와 선은 정말로 한 가지 맛입니까? 그는 답한다. “세상의 모든 것이 통하겠지. 선은 아주 자세하고 철저해야 깨우친다. 미세하게 살펴야 선으로 연결된다. 그러려면 감각이 아주 예민해져야 한다. 차도 감각이 예민해야 하고. 그래서 차가 선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아닐까.”

본격적인 겨울에 접어드는 겨울, 이야기를 마친 유수용 씨는 차밭 월동준비를 위해 짐을 꾸린다. 한 사람의 차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하면서, 그의 말과 생각을 전할지언정 그의 손길이 묻은 맑은 녹차와 깊이 있는 발효차를, 그 향과 맛을 소개할 수 없는 것이 못내 아쉽다. 그러나 문유산 자락 건강한 야생차밭은 쉬이 없어질 것이 아니므로 다음의 어느 인연을 기약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