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 도시 돈황 막고굴의 추억
중국 감숙성에 가면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인 돈황이 있다. 현지 발음으로는 둔황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고구려와 전쟁했던 중국 수나라 이전부터 형성된, 실크로드 관문으로써 구법승들과 장사를 하는 대상(隊商)들이 휴식을 취하며 오가는 도시였다. 신라 혜초스님도 인도에서 돌아올 때는 돈황을 거쳤다.
우리 식탁에 오르는 후추도 인도에서 돈황을 거쳐 들어온 조미료다. 원래 이름은 호국에서 온 것이라 하여 호초(胡椒)다. 또 장기판의 장기도 인도에서는 상희(象戱)라 하였는데. 돈황으로 들어와 중국식 전쟁놀이로 바뀌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이다. 뿐만 아니다. 수박도 마찬가지다. 수박도 서쪽에서 온 박이라 하여 서박이라 불렸다. 접시꽃도 실크로드를 타고 우리나라에 들어온 꽃이다.
특히 불교가 돈황을 거쳐서 중국이나 우리나라에 들어온 사실은 이미 다 밝혀진 사실이다. 돈황 서북쪽 절벽에 형성된 석굴사원인 막고굴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최근까지 석굴 사원이 4백여 군데 이상 발견된 막고굴에는 북위시대부터 청나라 때까지의 불교미술이 벽화나 불상 등으로 장엄하고 완벽하게 남아 순례자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혜초스님의 <왕오천축국전>도 막고굴 17굴인 일명 장경동에서 발견되어 학자들을 크게 놀라게 한 바 있다.
나는 막고굴을 두 번이나 다녀와 <돈황 가는 길>이란 책을 발간한 적이 있는데, 늘 잊히지 않는 것은 당나라 때에 조성된 45굴의 불상들이다. 그 불상들 중에서도 가섭존자와 아난존자의 상(像)이다. 45굴이 유명해진 까닭은 막고굴의 불상들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받는 보살상이 있기 때문인데, 나는 그보다는 부처님 2대 제자인 가섭존자와 아난존자의 상에 마음이 끌려왔던 것이다.

돈황 막고굴과 쌍봉사의 가섭존자와 아난존자의 모습은 왜 비슷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산방 아래의 쌍봉사 대웅전에 봉안된 가섭존자와 아난존자의 상과 너무도 흡사하기 때문이다. 쌍봉사 대웅전의 부처님 2대 제자상은 조선 숙종 때의 작품이니까 막고굴의 45굴과는 무려 1천 년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데 어찌하여 모습이 쌍둥이처럼 같은지 기적 같을 뿐이다. 특히 아난존자의 원만한 상호나 가섭존자의 턱에 점점이 난 수염이 똑같다. 턱에 수염을 그린 까닭은 수염 깎을 시간도 없이 정진만 했다는 상징일 터이다.
아난존자나 가섭존자의 상을 그린 화첩이 전해지지 않았으면 불가능하리라 생각된다. 나는 사람들이 찾아와 설명을 부탁하면 앞서 얘기한 사실을 빠트리지 않는다. 직접 돈황을 가서 사진도 찍어오고 했기 때문에 증명이 가능한 것이다. 부처님 2대 제자와 나와의 인연을 얘기하다 보니 서론이 길어졌지만 다 알다시피 아난존자는 부처님의 말씀을, 가섭존자는 부처님의 마음을 전한 분들이다. 두 분 제자가 있었기 때문에 부처님의 말씀인 교(敎)가, 부처님의 마음인 선(禪)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해졌다고 봐야 옳다.
부처님 말씀을 전한 아난존자, 부처님 마음을 전한 가섭존자
부처님 말씀을 전한 아난존자는 부처님의 사촌 동생이다. 부처님이 성도한 후 카필라성의 석가 족을 방문했을 때, 부처님을 흠모한 나머지 출가하여 부처님이 열반에 들 때까지 25년 동안 충직하게 시봉했으며 부처님 말씀을 가장 많이 들었다고 하여 사람들이 부처님 10대 제자 중에서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고 찬탄했다.
또한 아난존자는 카필라성 왕족답게 미남으로 잘생긴 데다 마음씨가 친절하고 언행도 부드러워 많은 여인들이 따랐다. 어느 날 아난존자가 사위성으로 탁발하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아난존자는 마탕가 족이 살고 있는 마을을 지나쳤다. 마탕가 족은 사성계급 중에서 가장 낮은 수드라보다 더 천한 사람들이었다. 마침 아난존자는 우물 옆을 지나다가 마탕가 족의 처녀가 물을 긷는 것을 보고는 말했다.
“여인이여, 목이 마르니 물을 좀 떠줄 수 없습니까.”
처녀가 깜짝 놀랐다.
“저는 천한 여자이기 때문에 스님께 물을 떠 드릴 수 없습니다.”
처녀의 이름은 푸라쿠리티였다.
“여인이여, 부처님 제자들은 신분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물을 떠 주시오.”
아난존자는 처녀에게 물을 얻어 마시고 난 뒤 고맙다는 표시로 고개를 숙이고 합장했다. 처녀는 집으로 돌아와 아난존자의 자애로운 태도와 잘생긴 얼굴을 잊지 못했다. 처녀는 밤낮으로 아난존자만 생각하다가 급기야 결혼하고 싶다는 마음을 냈다.
처녀는 날마다 아난존자가 탁발하러 오는 길목을 지켰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난존자가 보이자 달려가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저 분은 내 남편이 될 사람입니다.”
아난존자는 기원정사로 돌아와 부처님에게 그 사실을 보고했다. 그러자 부처님이 다른 스님을 시켜 마탕가 족의 그 처녀를 기원정사로 데리고 오게 했다. 처녀가 기원정사로 오자, 부처님이 물었다.
“푸라쿠리티여, 아난과 결혼하고 싶은 것이 사실인가.”
“부처님이시여, 결혼하고 싶습니다.”
“방법이 하나 있다. 아난과 함께 있고 싶다면 출가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처녀는 아난존자와 결혼하지는 못하더라도 함께 있는 것만도 행운이라고 생각하여 출가했다. 부처님 제자가 되어 긴 머리를 자르고 황색의 가사를 입었다. 어느 날 부처님이 푸라쿠리티에게 말했다.
“아난을 사랑한다고 했지. 아난의 어디가 그렇게 좋더냐.”
“부처님이시여, 저는 아난존자의 눈, 코, 귀, 입, 목소리와 태도 등 아난존자의 모든 것을 다 사랑합니다.”
부처님이 잠시 그녀를 자비롭게 바라보더니 말했다.
“눈에는 눈곱이, 코에는 콧물이, 귀 속에는 귀지가, 몸 안에는 똥과 오줌 등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다. 푸라쿠리티야, 그래도 아난의 그것들이 사랑스러우냐.”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난 푸라쿠리티는 육신이 무상하고 더럽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것들에 매달렸던 자신을 몹시 부끄럽게 여겼다. 푸라쿠리티는 부처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참회했다. 그러고 나서 무상하고 더러운 몸을 생각하면서 부지런히 수행하여 마침내 아라한이 되었다.
아난존자는 부처님이 열반에 들 때 끝까지 자리를 지켰고 가장 슬프게 울었던 제자였다. 열반을 앞둔 부처님이 슬피 우는 아난존자를 오히려 위로를 할 정도였다.
“아난아, 슬퍼하지 마라. 예전에 내가 설하지 않았더냐. ‘사랑하는 사람, 친한 사람과도 반드시 헤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살아 있는 자는 모두가 멸하지 않음이 없다’고. 아난아, 너는 오랫동안 자애로운 말과 행동, 그리고 진실한 마음으로 나를 시봉했다. 너는 누구보다 더 공덕을 쌓았다. 더 정진하거라. 그리하면 머잖아 틀림없이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니라.”
아난존자는 부처님 말씀대로 부처님이 열반한 뒤 칠엽굴 앞 절벽 위에서 일주일 동안 밤낮으로 정진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그리하여 오백 대중들의 좌장인 가섭존자 앞에서 부처님 말씀을 낱낱이 기억하며 기록으로 남겼던 것이다.
아난존자가 정이 많은 제자였다면 가섭존자는 사리가 분명한 이성적인 제자였다. 출가 후 입적할 때까지 용맹정진으로 일관한 제자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가섭존자를 두타제일의 제자라고 칭송했다. 출신도 최상의 계급인 바라문이었다. 부모의 강권으로 결혼했지만 청정함을 좇아 12년 동안 밤에 부부생활을 하지 않았다. 부부가 서로 독신 수행자를 갈망했으므로 마침내 출가하기 위해 각자 다른 길로 떠났다가, 가섭존자는 왕사성 근처의 니그로다 나무 아래서 좌선하고 있던 부처님을 만나 제자가 되었다.
이후 가섭존자는 하루도 쉬지 않고 두타수행을 하여 부처님보다 나이가 어린 데도 얼굴에 많은 주름이 생겼다. 그는 부처님이 주신 분소의, 즉 누더기가사를 걸치고 다녔다. 부처님과 가사를 바꿔 입은 사연은 이랬다.
왕사성에서 탁발을 마치고 죽림정사로 돌아가는 길에 잠시 쉬려고 할 때였다. 가섭존자가 자신의 가사를 네 겹으로 접어 부처님이 앉을 자리를 마련했다. 그때 부처님이 가섭존자의 옷이 부드럽다고 칭찬했다. 그러자 가섭존자가 말했다.
“그러시다면 부처님이시여, 저의 가사를 받아주십시오.”
부처님이 허락했다. 자신의 낡은 분소의를 가섭존자에게 주고, 그 대신 가섭존자의 가사를 받았다. 어디를 가든 가섭존자는 부처님이 주신 헤진 가사만 걸치고 다녔다. 왕사성 죽림정사에서 사위성 기원정사로 갔을 때도 가섭존자는 그 낡은 가사만 걸치고서 부처님 앞에 앉아 설법을 들었다. 하루는 부처님 앞에 있는 가섭존자를 향해 수행자들이 수군거렸다.
“누더기를 걸친 저 자는 누군가. 부처님 앞에서 더러운 가사를 걸치고 있다니.”
부처님의 귀에까지 그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부처님이 가섭존자를 불렀다.
“가섭아, 내 자리를 반으로 줄 터이니 여기에 앉아라.”
가섭존자가 옆에 앉자, 부처님이 다시 말했다.
“가섭아, 너는 언제 출가했느냐.”
“세존께서는 저의 스승이십니다. 저는 세존의 제자입니다.”
“그렇다, 나는 너의 스승이고, 너는 나의 제자이다. 그러니 너는 여기에 함께 앉을 수 있는 것이다.”
수행자들이 모두 놀랐다. 그러자 부처님이 수행자들에게 설했다. 가섭을 옆에 앉힌 것은 가섭이 부처님과 같은 경지에 도달했기 때문이라며 수행자들에게 가섭처럼 간절하게 용맹정진할 것을 당부했던 것이다.
어느 날인가는 부처님이 가섭존자의 건강을 염려하여 그만 정진하라고 말하자, 가섭존자가 ‘자신이 정진하는 것은 말세의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이고자 그런 것’이라고 말하여 부처님이 ‘그렇다면 네 마음대로 하라’고 허락한 적도 있었다. 가섭존자의 그런 마음과 태도를 사실적으로 드러내고자 이마 주름살과 턱 수염을 점점이 수염을 그리지 않았을까 싶다.
법신(法身)인 부처님을 잘 받들어 ‘살아있는 자는 멸하지 않음이 없다, 시봉한 공덕이 크므로 머잖아 아라한이 될 것이다’라고 위로와 격려를 받은 아난존자, 그리고 한결 같은 용맹 정진으로 부처님의 분소의를 물려받은 가섭존자의 상을 볼 때마다 우리 자신도 어떤 불제자가 되어야 하는지 새삼 신심이 솟구친다. 부처님 2대 제자가 남긴 두 갈래 전등(傳燈)의 불빛 아래서 참된 정진의 길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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