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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우리나라의 전통사상이자 전통문화

남도산중으로 내려오기 전의 일이다. 서울에서 살 때 MBC라디오의 <여성시대>라는 프로가 있는데, 초대 손님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초파일 전날로 기억된다. 진행자가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는 의미에서 불교에 대한 얘기를 청취자들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했다. 진행자는 인기가수 양희은 씨였는데, 자신은 서강대학교를 나온 기독교 신자지만 불교를 공부하는 자세로 진행하겠다며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나는 라디오 방송을 듣는 대상을 먼저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정한 종교방송이 아니므로 청취자도 다양한 종교를 갖고 있을 터이고, 또한 무종교인 사람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내가 불교의 사성제나 팔정도 등의 교리를 주어진 시간 내내 얘기한다면 청취자 중에서 기독교인들은 듣지 않을 것이 뻔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주제가 우리말이 된 불교용어들이었다. 불교에서 온 우리말이기 때문에 종교가 다르더라도 아무 저항이 없을 것 같았다.

사회학자들의 주장을 빌리자면 수입된 종교가 전통문화나 전통사상으로 자리를 잡으려면 적어도 5백년이 흘러야 된다고 한다. 기독교는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200여 년이 됐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에 기독교는 있어도 기독교문화는 아직 없다. 그런 맥락에서 불교는 한국인들의 피 속에서 전해지는 유전인자와 같이 전통문화가 된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김치나 된장국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음식문화처럼 말이다. 내가 불교를 소재로 해서 글쓰기를 하는 것도 신앙적인 측면도 있지만 우리 역사의 통시적 관점에서다. 나는 우리 사상과 문화가 된 불교를 내 글 속에 용해시키어 세계성과 보편성을 얻고 싶은 것이다. 예를 들자면 법정스님을 소설화한 <소설 무소유>는 ‘고승 법정’을 쓴 것이라기보다는 ‘한국인 법정’을 썼다는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다. 이런 내 관점은 불교를 소재로 글쓰기를 하는 후배들에게 꼭 얘기해 주고 싶은 것 중에 하나다.

방송은 대본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진행자와 초대 손님이 이끌어가는 생방송이었다. 나는 불교에서 온 우리말을 얘기해 보는 것도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해서 불교를 보다 친근하게 여기는 데 도움이 되고 흥미로울 것이라고 먼저 말했다.

‘절반’은 신라불교 융성이, ‘집도 절도 없다’는 백제불교의 한이 서린 말

첫 번째로 ‘돌아가시다’라는 말이 불교의 ‘윤회하다’에서 왔다고 얘기했다. 양희은 씨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뜨면서 “그래요?”라는 표정을 지었다. 생방송이기 때문에 진행자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순간순간 알 수 있는 것이 생방송의 묘미라면 묘미였다. 나는 설명을 더 이어갔다.

“우리말 ‘죽다’가 있는데, ‘죽다’는 숨이 멎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한 생으로 끝나지 않고 다른 모습으로 여러 생이 반복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윤회하다’라고 하는 것이다. 한 생에서 또 다른 생으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돌아가시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한 번의 죽음은 긴 여행을 하는 동안 간이역 하나를 들르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양희은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돌아가시다’가 불교에서 온 말이었군요. 자주 그 말을 하면서도 몰랐어요. 재미있군요. 정말.”

양희은 씨는 내가 얘기할 때마다 눈을 크게 뜨면서 놀랐다.

“우리말에 ‘절반’이란 말이 있지요.”

“그 말도 불교에서 온 말인가요?”

“신라시대 수도 서라벌에는 절이 반, 민가가 반이었습니다. 그래서 ‘절반’이란 말이 나온 겁니다.”

참고로 ‘집도 절도 없다’라는 말은 백제가 망할 때 사비성의 집도 절도 다 불타 없어졌다는 망국의 한을 담고 있는 속담이다.

단 두 단어 얘기에 양희은 씨는 흥미를 느끼며 빠져들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비록 종교는 다르지만 솔직하고 영리한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노래만 잘하는 줄 알았는데, 무엇을 받아들이는 이해력도 만만치 않았다.

나는 ‘누비옷’에 대해서도 말했다.

본래는 스님들이 두타행 중에서 무소유를 실천하기 위해 넝마의 헝겊을 기워서(衲) 만든 옷(衣) 즉 납의를 입고 다녔던바, 그 납의를 소리 나는 대로 ‘나비’라고 했다가 ‘누비’로 변해 누비옷이 된 것으로, 여기서 ‘누비다’라는 바느질 기법이 나왔으며 의미가 발전하여 종횡무진 거침없이 나아간다는 뜻으로 발전하기까지 한 것이다.

‘야단법석(野壇法席)’도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도 불교에서 유래한바, 야외에 법석을 차려놓고 하는 설법을 ‘야단법석’이라고 했던 것이다. 실내 법당에서 설법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 때문에 괘불을 걸어 놓고 야외에서 하게 되니 규모가 성대하고 장소가 시끌벅적하였을 터. 오늘날에는 성대한 설법이라는 의미는 사라지고 ‘소란스럽다’는 뜻만 남아 전해오고 있는 것이다.

‘뒷바라지하다’라는 우리말도 마찬가지다. 바라지란 원래 절에서 재를 지낼 때 재주스님을 도와 염불하거나 게송을 읊는 스님을 일컫는 말인데, 바라지스님이 재주스님의 잔일을 수고스럽게 돕는다고 하여 ‘뒷바라지하다’라는 말이 생겼고, 더 나아가 ‘옥바라지하다’라는 우리말까지 보태진 것이다.

‘이판사판’도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말이다. 스님들을 크게 이판승과 사판승으로 나누는데, 참선공부하는 스님을 이판승이라 하고, 사무나 불사를 담당하는 스님을 사판승이라고 한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이판이나 사판 모두 최하위신분이었으므로 스님이 된다는 것은 신분계급의 끝장이라는 의미에서 ‘막다른 데에 이르러 어쩔 수 없음’을 나타내는 우리말이 된 것이다.

양희은 씨는 내 얘기를 아주 재미있어 했는데, 어느 새 초대 손님인 나에게 주어진 20분이 빠르게 흘러가버렸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자 머리를 꾸벅 숙이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마치 유익한 강의를 들었다는 그런 표정을 지었다. 나 역시 기분이 좋았다. 진행자나 청취자의 반응이 비슷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프로를 담당하는 작가가 복도 끝까지 따라 나와 너무너무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해맞이 인파로 가득한 인도 강가강 가트.

이후, 인도성지순례를 광주 원각사 신도 분들과 함께 간 적이 있다. 주지스님이 법사로 가기로 돼 있었지만 갑자기 스님에게 움직일 수 없는 사정이 생겨 내가 대신 인솔자로 나섰다. 부처님 8대성지를 순례해 본 분들은 알겠지만 장거리를 이동하는 데 대부분 네댓 시간을 버스 안에서 보내야 하므로 무료해지기 일쑤였다. 우리말이 서툰 인도가이드의 성지안내도 한계가 있고, <반야심경>이나 <금강경> 독송도 버스가 출발할 때뿐이지 계속할 수는 없었다.

결국 나라도 나서 지루하지 않게 해야 할 상황이 됐다. 내가 알고 있는 불교적인 지식을 회향하는 것도 자비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꺼내든 얘기가 또 ‘불교에서 온 우리말’이었다. 첫날 버스에 오르자마자 하기 시작했는데, 역시 반응이 좋았다.

“여러분이 사시는 전라도에서는 부엌을 ‘정제’라고 하는데, 사실은 불교의 정지(淨地)에서 온 말입니다. 깨끗한 곳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만들어진 말로 부엌칼을 정제칼이라고 하는 것이죠.”

“우리말 중에 ‘차곡차곡’이란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교가 국교였던 신라시대나 고려시대에 가장 재산이 많았던 곳은 절이었습니다. 절의 창고에는 차와 곡식이 가득했습니다. 차와 곡식이 많은 모습을 ‘차곡차곡’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차곡차곡’이란 우리말은 절의 창고에서 나온 말입니다.”

얘기를 하는 동안 신도들의 눈이 반짝거렸다. 장시간 이동하곤 하여 피곤해 할 텐데도 내 얘기만 나오면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무심코 사용했던 일상용어들이 불교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하니 불교신자로서 감격스러운 모양이었다.

이삼일이 지난 뒤부터는 버스에 오르기만 하면 아예 얘기해 달라고 강권했다. 그래서 나는 수첩에 메모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수첩을 찾아서 보니 깨알 같은 글씨로 다음과 같이 적혀 있는데, 원각사 신도 분들과 인도성지순례를 했던 벅찬 순간이 다시 떠오른다.

건달; 불교의 건달바(乾達婆)에서 온 말이다. 건달바는 수미산 남쪽 금강굴에서 사는데, 그는 밥과 고기 대신 향을 먹으며 허공을 날아다니면서 노래하는 신(神)이다. 이 건달바가 하는 일 없이 노는 것으로만 보여 ‘건달’이란 말이 생겨난 것이다. 건달바가 노래하는 것은 부처님을 즐겁게 하기 위함인데 불교는 신을 섬기지 않고 신에게 섬김을 받는 종교라는 점도 알아야 한다.

점심(點心); 하루 세 끼는 아침, 점심, 저녁이다. 그런데 아침과 저녁은 순 우리말이다. 그러나 선가에서 나온 점심은 한자말 그대로 마음에 점을 찍듯 아주 적게 먹는 음식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순 우리말은 푸짐하게 먹는 밥을 낮밥이라고 했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보면 승리한 병사들에게 낮밥을 먹였다는 얘기가 자주 나온다.

밀어(密語); 선가에서 스승과 제자 사이에 은밀하게 전해지는 말을 ‘밀어’라 하는데, 요즘에는 사랑하는 연인들끼리 주고받는 사랑의 속삭임을 ‘밀어’라고 한다.

장로와 전도; 이 말 역시 불교의 언어인데, 지금은 기독교 언어화 돼버렸다. 부처님 당시에는 오래 수행한 원로 비구스님을 장로라 했고, 원로 비구니스님을 ‘장로니’라고 불렀다. 전도란 말도 불교에서 유래된 말이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루신 첫해에 아라한이 된 제자는 모두 61명이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각자 법을 전하라라고 지시하는 ‘전도 선언’을 하셨다.

“비구들이여, 나는 신과 인간의 굴레에서 해방되었다. 그대들 역시 신과 인간의 굴레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전도를 위해 길을 떠나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세상을 불쌍히 여겨 길을 떠나라. 마을에서 마을로, 두 사람이 같은 길을 가지 말고 혼자서 가라.”

심금(心琴)을 울리다; 부처님 제자 중에 소나가 있었다. 소나는 부유한 장자의 아들이었는데, 출가하여 피가 맺히도록 정진했다. 그래도 깨달음을 이루지 못하자 ‘집으로 갈까, 돌아가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시나 하고 살까.’ 하고 회의를 했다. 그런데 부처님이 소나의 마음을 간파하고 말했다.

“소나여, 그대는 집에서 지낼 때 거문고를 잘 연주했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

“네, 부처님.”

“그대가 거문고를 연주할 때 줄을 너무 팽팽하게 조이면 그 소리가 듣기 좋던가?”

“좋지 않습니다.”

“그럼, 지나치게 줄을 느슨하게 하면 어떠하든가?”

“좋지 않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했다.

“진리의 길을 걷는 것도 마찬가지다. 의욕이 지나치면 초조한 마음이 생기고, 열심히 하려는 뜻이 없으면 태만해진다. 그러니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항상 가운데 길로 걸어가야 한다. 그러면 머지않아 이 속세의 미혹을 벗어나게 될 것이다.”

소나는 이윽고 중도를 체득했다. 부처님의 말씀이 소나에게 ‘마음의 거문고’를 울렸기 때문이었다.

다반사(茶飯事); 선가에서 나온 말로 차를 마시고 밥 먹는 일을 뜻하는데, 극히 일반적이고 당연한 일이라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모호; 아주 작은 숫자를 불교에서는 ‘모호’라고 한다. 이 말이 무언가를 구분하기 힘들 때 ‘애매모호하다’라고 쓰이게 된 것이다.

시달리다; 불교에서 온 말이다. 인도에는 사람이 죽으면 시다림(尸陀林)이라는 숲에 버리는 공동묘지가 있었는데, 수행들은 그곳의 악취와 짐승들의 공격을 견디며 고행했다. 즉 시다림에 들어가는 자체가 고행이었다.

현관(玄關); 선가에서 깊고 묘한 이치에 드는 관문이라 하는데 우리말로는 건물의 입구로 쓰인다.

이밖에도 강당(설법 장소인데 강연을 듣는 장소), 공부(참선에 진력하는 일인데 글을 읽고 외는 일), 면목(참모습인데 얼굴), 단말마(급소가 끊어지는 것인데 최후의 고통), 명복(冥府의 복), 아비규환(아비지옥과 규환지옥인데 심한 고통으로 울부짖음), 아수라장(전쟁터), 찰나(짧은 순간), 겁(긴 시간), 투기(몸을 던져 정진하는 것인데 돈을 투자하여 재산을 증식하는 일) 등이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