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강에 비친 달 3회

불속에 핀 연꽃

신미는 조종천의 물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산모퉁이에서 오른편 산길로 들어섰다. 걸음이 저절로 빨라졌다. 해지기 전에 현등사에 도착해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 마음이 급해지면 입안에 침이 마르고 목이 타는 법이었다. 신미는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기 위해 개울로 내려갔다. 두 손을 개울물에 담그려는 순간 궁상맞은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 처용무를 출 때 얼굴을 가리는 둥근 탈바가지 같았다. 복천암 수각에 비친 달을 보고 있던 그에게 주지스님이 “신미야, 중은 저 달 같아야 한다”라고 했던 한 마디가 떠올랐다. 주지스님은 불학(佛學)이 깊지는 않았지만 남송시대의 선승 야보 도천(冶父道川)의 시만은 곧잘 멋들어지게 읊조렸다.

대나무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 하나 움직이지 않고
달빛이 연못을 깊이 뚫어도
물에는 흔적 하나 없네.

竹影掃階塵不動
月穿潭底水無痕

섬돌에 미련을 두지 않는 대나무 그림자나 연못에 자신의 흔적을 새기려 하지 않는 달빛이야말로 시비와 집착을 초월하여 속리산 깊은 산중을 떠나지 않겠다는 주지스님의 마음이었다. 풋중 신미도 주지스님이 염불하듯 외던 시가 가슴을 적시어 그때 단 한 번 들었는데도 잊히지 않았다.

신미는 다시 잰걸음으로 달리다시피 걸었다. 산중의 어둠은 물러서는 날빛을 야금야금 삼켰다. 땅거미가 지는 순간부터 먹물 같은 어둠이 한 자락 한 자락 포개졌다. 그때 신미는 본능적으로 억새풀 숲에 몸을 숨겼다. 지근거리에서 수군거리는 사람 소리가 났다. 누리끼리한 무명 두루마기를 입은 서너 명의 사내들이 산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산중에서는 짐승보다 낯선 산인(山人)과 마주치는 일이 더 고약했다. 도적떼나 산적을 만나 목숨을 잃는 경우도 더러 있어왔던 것이다. 신미는 사내들이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엎드려 있다가 일어났다. 거친 억새풀잎에 베인 손바닥에서 피가 났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을 스쳤다. 좀 전에 만났던 노인들 말로는 현등사가 지척이라고 했는데 여태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었다.

‘산길을 잘못 든 것은 아닐까?’

그래도 신미는 다시 마을로 되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은 시간을 낭비하는 뒷걸음질 치는 일이었다. 산길을 잘못 들었다면 나무 아래나 바위 밑에서 노숙하고 앞으로 나아갈 요량이었다. 어둠이 밀물처럼 시나브로 차오르고 있었지만 산죽 사이로 난 산길은 아직 또렷했다. 계곡물에는 사람의 정성이 느껴지는 동글동글한 징검다리가 놓여 있었다. 산길이 끝나는 어딘가에 마을이나 절이 있다는 증거였다. 완만한 능선을 하나 넘자, 바위들이 병풍처럼 둘러선 산자락 하나가 드러났다. 그런데 뜻밖에도 산자락이 동틀 무렵처럼 훤했다. 바위를 등진 집이 불타고 있었다. 분명 산불은 아니었다. 산자락으로 번지지 않은 채 불길만 활활 치솟았다. 회전민이 사는 오두막은 아니었다. 밭뙈기나 다랑이논 같은 경작지가 들어설 터도 아니었다. 산길을 좀 더 오르고 나서야 신미는 절이 불타고 있음을 알았다. 붓처럼 뾰쪽한 입석에는 만(卍)가 크게 새겨져 있었다.

‘현등사가 불타고 있다니 이 일을 어찌하나!’

신미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함허가 주석하고 있는 현등사가 화마에 휩싸여 있다니 눈앞이 캄캄했다. 신미는 다리가 후들거려 잠시 비틀거렸다. 그러나 낙심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스승이 될 함허를 구해야 했다. 신미는 가팔라지는 산길이었지만 후닥닥 뛰었다. 걸망이 돌덩어리를 넣은 듯 무거웠다. 걸망을 산길에 벗어놓고 달렸다. 불길 때문에 산문 초입이 훤했다. 산발한 노파가 주저앉아서 통곡하고 있었다.

“스님! 스님!”

절의 승려가 불길 속에서 미처 나오지 못한 모양이었다. 노파가 신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스님도 불길 속으로 가시려고요. 안 됩니다. 우리 주지스님이 불속에 계십니다. 스님, 어서 주지스님을 꺼내주시오.”

“함허스님께서 저기 계신다는 말입니까?”

노파는 실성한 듯 대답하지 않고 도리질만 했다. 이미 넋이 나간 듯했다. 신미는 노파를 붙들고 흔들었다.

“보살님, 보살님.”

노파는 신미가 중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바로 혼절했다. 신미는 노파를 엎고 돌담 옆 느티나무 등걸에 뉘였다. 화마가 돌담을 넘어오지는 못할 터였다. 불타고 있는 건물은 법당이었다. 불길은 기세등등했다. 신미는 뜨거운 열기 때문에 다가서지 못하고 지켜보기만 했다. 불길은 문짝들을 내팽개치며 타올랐다. 잠시 후에는 굉음이 들려왔다. 기왓장이 와르르 무너지고 있었다. 지붕 한쪽이 힘없이 주저앉아버렸다. 거칠 것 없이 치솟던 불길은 기세가 조금 꺾였다. 지붕의 기왓장과 흙더미가 불길을 눌러버린 것이었다.

가평 운악산 현등사에 모셔져 있는 함허득통선사의 부도탑과 그 앞의 석등


비로소 신미는 법당으로 오르는 돌계단까지 다가갔다. 그러나 대들보와 기둥들은 숯이 되어 벌건 잉걸불을 달고 있었다. 불속에 있는 주지스님을 찾으려고 했지만 턱도 없는 일이었다. 불상도 화마에 녹아버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신미는 한 걸음 더 다가섰다가 잉걸불이 내뿜는 열기로 화상을 입을 것 같았으므로 물러서고 말았다.

주지스님이 되살아나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신미는 얼굴에 눈물콧물 범벅이 된 노파가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어쩌면 노파는 주지스님의 어머니인 줄도 몰랐다. 출가한 승려가 오갈 데 없는 속가의 어머니와 함께 사는 일이 오래 전부터 있어왔던 것이다. 이윽고 노파가 정신이 드는지 혼자서 웅얼거렸다.

‘스님, 스님.’

신미는 불속에서 죽은 스님이 함허는 아니라고 단정했다. 함허가 속가 어머니를 절에 불러들여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제야 신미는 산길을 잘못 탔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신미는 운악산으로 가는 산길을 놓친 채 봉우리를 마주보고 있는 명성산으로 들어와 있었다. 노파가 신미를 보더니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했다.

“스님, 우리 스님이 불쌍합니다. 우리 스님을 살려주시오.”

“보살님, 절에 불 지른 도적은 어디로 갔습니까?”

“가평향교 교생들이 불을 놓고 내려갔어요.”

신미는 아까 보았던 사내들이 떠올랐다. 산중에서 본 사람은 그들뿐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가평향교 교생이고 방화 용의자들이었다.

“보살님, 향교 교생들이 분명합니까?”

“우리 스님에게 여러 해 전부터 행패를 부렸어요.”

“가평에도 현감이 계신데 이렇게 무법천지란 말입니까?”

“스님, 한통속인데 고발하면 뭐합니까? 교생을 모함했다며 곤장이나 맞지 않고 돌아오면 다행이지요.”

노파는 신미에게 억울함을 토했다. 수년 전부터 가평향교 교생들이 그들에게 절을 내놓지 않으면 불을 지르겠다고 협박해왔다는 것이었다. 향교 교생들의 행패는 극악무도한 짓이나 다름없었다. 불공올리고 재지내면 죽어서 극락에 간다며 아녀자들을 끊임없이 절로 끌어들이는 데다,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무위도식하는 승려들이 활개치고 있으니 그들을 모두 환속시켜야 한다는 것이 향교 교생들의 주장이었다.

그런데 이곳 주지스님은 가평향교 교생들의 협박에 굴하지 않고 절을 지켜 왔던 것이 틀림없었다. 급기야 오늘 낮에는 향교 교생 몇 명이 몰려와 주지스님에게 절을 불태우겠다고 겁박하다가 끝내 불을 붙이자, 법당에 뛰어들어 불단의 부처님을 업고 나오다가 목숨을 잃은 모양이었다.

산중 절이나 암자를 불태운 사건은 비단 가평만이 아니었다. 방화는 성리학을 추종하는 지방 벼슬아치들의 묵인 아래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어났다. 세종이 왕실의 대군, 공주들과 더불어 불교를 드러내놓고 감싸고 있는데도 왕명을 비웃듯 방화사건이 해를 거듭하며 터졌다. 전라도 능성의 교생 양회(梁淮) 등이 능성현령 최추(崔湫)에게 보고한 뒤 현에 산재한 암자 11곳을 불태워버린 사건이 대표적이었다. 세종은 승지의 보고를 받자마자 늦은 밤인 3경(更)이었지만 의금부 부진무(副賑撫) 강맹경(姜孟卿)을 불러 능성으로 내려가 방화 연루자들을 모두 잡아들여 국문하라고 명했다. 세종은 유생들이 왕권에 도전하는 심각한 상황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궐내에서 숙직하던 벼슬아치들은 군사적인 화급한 일이 아닌데도 임금이 한밤중에 명을 내린다며 모두가 의아해했다.

돈의문(敦義門)을 나선 의금부 강맹경은 능성으로 내려가 방화사건을 조사하고 방화범들을 하옥시킨 뒤 1달 달포 만에 궁으로 돌아와 세종에게 보고했다. 결국 세종은 그들에게 참형 아래의 형량인 중형으로 처벌했다. 사람이 사는 집을 고의로 불 지른 자는 율에 참형의 벌을 내린다고 했지만 세종은 최추와 양회 등 9인에게 1등을 감하여 곤장 1백대를 치고 3천리 밖으로 유배를 보냈던 것이다.

“우리 주지스님은 불속에서 부처님을 업고 나오다가 변을 당했습니다.”

“보살님, 주지스님은 소신공양하여 부처님과 하나가 되셨으니 성불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스님, 정말입니까? 스님이 성불하셨다면 이 늙은 것이 더 바랄 게 뭐 있겠습니까?”

신미는 어금니를 물었다. 노파를 위로하기 위해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분심이 솟구쳐 치가 떨렸다.

“스님, 좀 더 일찍 뵙지 못한 것이 한이 됩니다.”

“아닙니다. 저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풋중일 뿐입니다.”

“무식한 늙은 것이 어찌 우리 주지스님의 성불을 보았겠습니까? 그것도 모르고 늙은 것은 밤낮으로 애통해 하며 살아갈 뻔했습니다.”

“사미시절에 화중생련(火中生蓮)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부처님을 업은 주지스님의 마음이야말로 불속에서 피어난 연꽃입니다.”

노파는 신미에게 합장하더니 엎드렸다.

“스님, 이제야 이 늙은 것이 소원을 풀었습니다.”

“보살님의 원은 무엇이었습니까?”

“출가한 아들이 성불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신미가 노파에게 엎드려 절을 했다.

“보살님, 감사합니다. 보살님의 아드님이기도 한 주지스님께서 부처님을 어떻게 받들어야 하는지를 오늘 저에게 보여주시었습니다. 부처님을 위해서라면 불구덩이 속이라도 뛰어드는 신심 없이 어찌 부처님의 진실한 제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고맙습니다. 스님은 어느 절에 계십니까?”

“현등사로 가려다 산길을 잘못 들었습니다. 하지만 산길을 잘못 들어 보살님을 뵌 것도 큰 인연입니다.”

“현등사는 여기서 한 나절 거리도 못 됩니다.”

“눈앞이 길이라 했는데 장님처럼 찾지 못했습니다.”

“스님, 지금 산길을 내려가시겠습니까?”

“아닙니다. 날이 밝으면 주지스님의 유골을 수습한 뒤 염불하고 떠나겠습니다.”

명성산 골짜기를 타고 밤바람이 불자 열기가 돌담 너머까지 끼쳐왔다. 불길은 잦아들었지만 이따금 숯덩이가 된 기둥들이 땅바닥에 나뒹굴면서 불티들이 어둠 속에서 명멸했다. 시커멓게 숯덩이로 변한 법당은 불교의 참혹한 현실을 절감케 했다. 유생들은 여기저기의 절에 방화를 하고 승려들은 비명을 지르며 절에서 쫓겨나는 시절이었다. 신미는 중으로서 자기들 세상이 왔다며 날뛰는 유생들의 만행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임금의 왕명까지 비웃는 유생들의 패악질에 어떻게 대처하며 중노릇해야 할지 길이 보이지 않았다. 선배 승려들로부터 중생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중노릇의 으뜸이라는 얘기를 들어왔지만 당장 자신의 발등에 떨어진 현실과 마음속의 분노를 다스리는 일이 시급했다.

‘지금 당장 나에게는 부처님을 안고 죽을 신심도 없고, 시비와 악행을 일삼는 유생들을 제도할 힘도 없다. 함허스님께서는 속 시원하게 알고 계시겠지. 그래, 함허스님께 엎드려 길을 묻자. 지혜를 구하자.’

신미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정찬주 작가의 장편소설 '천강에 비친 달'은 한글창제의 주역 신미대사가 한양에 올라왔을 때 자주 주석했던 고찰, 정릉 흥천사가 협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