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붉은 승려<16>

조선의열단

김원봉은 자신보다 나이 어린 단원들에게 먼저 말을 거는 법이 없었다. 무뚝뚝하게 보일 정도로 과묵했다. 웃는 일도 없었다. 새로 가입한 단원들은 그에게 농담을 걸지 못했다. 서울 중앙학교에서 유학한 학력이 전부인 그는 그들 앞에서 무심하게 책을 읽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에게 하는 얘기란 늘 한결같았다.

“우리 단이 노리는 곳은 동경과 서울이다. 서울에 조선 총독이 부임해 올 때마다 대여섯 명 죽이게 되면 조선 총독으로 오려는 자가 없어질 것이다. 또 동경 시민을 매년 두 차례 정도 놀라게 하면 폭탄을 터뜨리며 죽는 우리의 결의를 알게 되어 그들 사이에 조선 통치를 포기하자는 여론이 생길 것이다. 이는 명약관화하다.”

그런데 김원봉은 의열단 선전부장 김성숙에게는 얘기를 많이 했다. 의열단 활동의 성공과 실패를 열정적으로 얘기했다. 의열단의 모든 정보를 한 점 의심 없이 다 말했다. 김성숙이 의열단을 홍보하는 선전부장이기 때문이었다.

1925년 봄이 되자, 김원봉은 김성숙에게 정양문(正陽門) 부근에 있는 의열단의 비밀거처까지 알려주었다. 김성숙은 가끔 누구도 접근하기 힘든 비밀거처로 가서 김원봉과 얘기를 나눴다. 비밀거처 담벼락 밑에는 노란 수선화 여남은 송이가 피어 향기를 날리고 있었다. 활짝 핀 수선화 덕분에 담벼락 밑은 햇살이 내린 것처럼 환했다.

“선전부장 동지, 어서 오이소.”

“의백 동지, 어제도 왔지만 만나지 못하고 갔소.”

“왜놈들이 현상금 걸고 날 잡으려고 혈안이 됐다 아입니꺼. 그래서 어느 장소라도 2시간 이상은 머물지 않십니더.”

“잠도 2시간 이상 못 잔다는 것이오?”

“요즘 내 신세가 고약합니더.”

“하긴 언제 우리가 다리 쭉 펴고 편하게 한 번 자봤습니까?”

비밀거처는 정양문 양쪽으로 형성된 민가들 속에 있었다. 비밀거처 역시 중국인의 민가였다. 입구는 하나이나 담을 넘으면 골목길이 여러 개나 되어 도피가 용이한 집이었다. 민가의 주인인 노파는 비밀거처를 드나드는 조선인들에 대해서 무관심했다. 중국말에 능통한 단원도 있었으므로 오래 전에 중국으로 이주한 조선인이거나 그의 친구쯤으로 알고 있을 뿐이었다.

김원봉이 단원 중에서 가장 기대했던 사람은 서울 출신의 김익상(金益相)이었다. 그는 기계를 다루는 재주가 있었으므로 비행기 조종사가 되기 위해 광동으로 갔다가 여의치 못해 북경으로 와 김원봉을 만난 뒤 의열단원이 된 사람이었다. 나이는 김원봉보다 3살 많았고 서울에는 결혼한 아내 송씨가 있었다.

김익상이 북경의 비밀거처를 떠난 때는 1921년 9월 10일이었다.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의열단 단원 최수봉을 인명피해가 없는데도 사형을 집행한 지 두 달만이었다. 사형을 집행함으로써 의열단의 사기를 저하시키려고 했지만 오히려 불을 지른 셈이었다. 더구나 김익상은 조선침략의 심장부인 총독부를 폭파하라는 임무를 띠고 ‘일주일 만에 돌아오겠다.’며 폭탄 2개를 가지고 떠났다. 김익상은 열차로 북경에서 봉천까지 갔다가, 다시 봉천에서 압록강을 건너 서울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서울로 가는 열차를 탔을 때 옆자리에는 일본 여인이 앉아 있었다. 일어를 잘하는 그는 자신을 학생 미다카미(三田神)라고 속였다. 일경이 검문을 할 때마다 김익상은 여인의 아이를 안고서 일어로 얘기했다. 그때마다 일경은 일본인 부부로 여기고 지나치곤 했다.

남대문역(현 서울역)에서 내린 김익상은 이태원에 사는 동생 김준상(金俊相) 집으로 곧장 가 소식을 듣고 달려온 아내 송씨와 하룻밤을 보냈다. 김익상은 아내와 마지막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아내와 유쾌하게 떠들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도 그는 경직되지 않고 휘파람을 불면서 명랑한 기분으로 전기회사 공원을 가장하여 남산 총독부를 찾아갔다. 남산 총독부는 사람들이 왜성대(倭城臺)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총독부 정문의 위병은 능청맞은 그를 보고는 제지하지 않았다. 김익상은 정문 위병소 옆에 있는 구내식당으로 가 맥주 한 병을 시켜 마셨다. 차가운 맥주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짜릿함을 만끽한 그는 총독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위병이 “누구냐?”고 물었다. 이에 김익상은 “전기를 고치러 왔다”고 대답했다. 그의 말투가 너무나 태연했으므로 위병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그를 통과시켜주었다.

김익상은 바로 비서관실로 들어가 인사계실에 폭탄 한 개를 던졌다. 총독 집무실로 들어가려면 비서관실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던진 폭탄은 일인 비서 스즈키(鈴木)의 뺨을 스친 뒤 책상 위에 떨어져 불발탄이 돼버렸다. 할 수 없이 김익상은 옆의 회계과장실에 남은 폭탄을 던졌다. 폭탄이 폭발하자 비서관실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유리창이 깨지고 책상 위의 서류들은 이리 저리 흩어졌으며 마룻바닥은 큰 구멍이 났다. 즉시 김익상은 비서관실을 유유히 빠져나왔다. 그때 김익상은 아래층에서 뛰어 올라오는 헌병과 경찰에게 일본말로 “위험하니 올라가면 안 된다”고 소리쳤다.

총독부를 무사히 빠져나온 김익상은 황금정(현 을지로)으로 내려가 전기공사의 공구들을 버리고 일본인 가게에서 일본인 옷을 사서 바꿔 입고는 평양행 야간열차를 타고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의열단 단원들에게 공언한 대로 일주일 만에 북경으로 돌아와 김원봉을 놀라게 했다.

'사형을 언도받은 김익상'이라고 보도된 동아일보 보도

그러나 김익상은 총독부 안으로 들어가 폭탄을 터뜨리긴 했지만 아무도 죽이지 못한 것을 두고 자책했다. 그는 김원봉을 만날 때마다 또 다른 일을 달라고 요청했다. 비밀거처에서 하는 일 없이 소일하는 것도 지겨웠던 것이다. 그렇게 지낸 지 6개월 만에 또 기회가 왔다.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가 싱가포르, 홍콩을 거쳐 상해에 온다는 정보를 입수했던 것이다. 1922년 3월 초 김원봉과 의열단 단원들은 상해로 갔다. 비밀장소인 프랑스인 거주지 주가교(朱家橋) 부근의 중국인 이발소 2층에서 모이기로 했다. 약속한 시간이 되자 단원들이 하나 둘 이발소 2층으로 올라왔다. 김원봉, 이종암(李鍾岩), 오성륜(吳成崙), 김익상, 서상락(徐相洛), 강세우(姜世宇) 등이었다. 작전회의 끝에 다나카를 이종암, 오성륜, 김익상이 저격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런데 서로가 1선에서 저격하겠다고 자청하여 제비뽑기를 했다. 이윽고 오성륜이 1선에서 권총으로 저격하고, 실패하면 2선에서 김익상이 권총과 폭탄으로, 이마저 실패하면 다나카가 자동차에 오르기 전에 이종암이 한 번 더 폭탄을 투척하기로 작전을 짰다.

1922년 3월 29일 단원들이 입수한 정보대로 다나카가 상해 황포탄 부두에 도착했다. 오성륜은 적장 다나카를 기다렸다. 다나카는 마중 나온 인사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걸었다. 오성륜은 바로 그때 권총을 발사했다. 그러나 다나카 앞에 있던 영국 여인 스나이더가 총탄에 쓰러졌다. 적중했다고 ‘독립만세’까지 외쳤던 오성륜의 공격은 실패로 끝났다. 이번에는 2선 공격의 김익상이 도망치는 다나카에게 권총을 발사했지만 모자만 뚫고 말았다. 이어서 폭탄을 던졌는데도 불발탄이 됐다. 마지막 3선에 있던 이종암이 또 다시 폭탄을 던졌지만 미국인 해병이 발로 차 바다에 빠뜨렸다.

저격에 실패한 김익상과 오성륜은 일본 헌병들에게 쫓겼고, 이종암은 입고 있던 외투를 벗은 뒤 우왕자왕하는 군중 속으로 뛰어들어 몸을 숨겼다. 김익상과 오성륜은 달려오는 일인헌병들을 향해 권총을 쏘면서 사천로까지 도주했지만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 체포되고 말았다. 두 사람은 상해 일본영사관으로 연행되어 가혹한 고문을 받았다. 조사를 받으면서 조선총독부에 폭탄을 투척한 인물이 바로 김익상임이 밝혀져 일인 형사와 헌병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크게 도리질을 했다. 그런데 그들을 또 다시 경악케 한 의열단원은 오성륜이었다. 그해 5월 2일 오성륜이 상해 일본영사관 감옥 문을 부수고 탈출하여 그의 행방이 묘연해졌기 때문이었다.

“의백 동지, 김익상 동지 소식은 들었습니까?”

“나가사키 감옥에서 고생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십니더. 사형을 받았다가 무기로 감형됐다고 하니 아마도 죽지 못해 살아 있을 낍니더.”

상해에서 의열단에 합류한 오성륜은 지금까지 오리무중이었다. 공산주의자가 됐다는 소문만 무성했다. 만주로 갔다가 독일을 거쳐 소련으로 가 동방노력자대학에 입학했다는 믿을 만한 정보가 간간이 들려올 뿐이었다.

“내 솔직한 심정을 고백해도 되겠십니꺼?”

김원봉은 김익상이 아직도 나가사키 감옥에 있다는 것이 괴로운 모양이었다. 다나카 육군대장 저격작전을 자신이 주도했기 때문이었다. 진정한 의열단원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생사를 초월한 선승의 경지와 다름없었다. 테러리스트가 기쁘게 죽는 것은 선승이 도(道)를 얻는 행위와 흡사했다. 의열단원으로서 적에게 사형을 당하든 스스로 자폭하든 확실하게 최후를 맞이한다면 비로소 자기를 극복한 성공한 단원이라고 할 수 있는데, 불행하게도 적에게 고문을 받는다거나 자유를 잃고 수감돼 있다는 것은 명예롭지 못한 일이었다. 김원봉은 바로 그 점 때문에 고민하고 갈등했다.

“차라리 부산경찰서에서 폭탄을 던져 하시모토(橋本秀平) 서장을 죽이고 체포돼 굶어죽은 박재혁 동지나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사형당한 최수봉 동지의 삶은 거룩하다, 아입니꺼.”

“감옥에 있는 동지들 때문에 괴롭다는 것입니까?”

“그렇십니더. 김성숙 동지도 잘 알다시피 곽재기, 윤세주, 이성우(李成宇), 황상규, 이낙준, 김기득, 김병환 동지들이 지금 왜놈들 감옥에서 고통 받고 있십니더.”

의열단 단원들이 중국에서 천신만고 끝에 들여온 폭탄 중에서 3개가 밀정의 고발로 밀양 김병환 집에서 발견되어 일경에 압수되고, 남은 13개의 폭탄으로 거사하기 위해 윤세주, 이성우, 황상규, 이낙준, 김기득, 김병환 등이 1920년 6월 16일 서울 인사동의 한 중국음식점에서 비밀회의를 하다가 체포되어 중형을 선고받고 지금까지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이었다.

김성숙은 갈등하는 김원봉에게 용기를 내서 자신의 속마음을 꺼내 얘기했다. 김성숙은 최근에 상해를 다녀온 장지락과 의견을 나눈 바 있는, 단원들의 투쟁방법을 바꿔야 한다는 얘기를 그대로 했다.

“의백 동지, 투쟁을 조직적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소. 동지들의 희생이 소중하고 찬탄할 만한 일이기는 하지만 성과는 그들이 희생한 것에 비해 크지 않소. 개인이 폭탄 한두 개를 투척하는 것보다 단원들을 체계적으로 훈련시켜 인민대중과 함께 투쟁할 때 성과가 크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겠소?”

“나도 동감입니더. 동지들의 투쟁이 실패할 때마다 심장이 찢어지는 것 같았십니더. 허나 하루아침에 방향을 바꾼다는 것이 쉬운 일입니꺼.”

“먼저 광주로 가는 것이 좋을 겁니다. 북경은 우리 동지들이 활동하기에 점점 위험한 곳으로 변하고 있지 않습니까?”

실제로 1925년이 되자마자, 중국동북지역과 북경을 장악하고 있던 장작림(長作霖) 군벌정권이 조선 항일단체가 북벌을 준비 중인 광동의 손문(孫文) 정권을 지지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추방령을 내리려 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았다. 뿐만 아니라 조만간 북경의 군벌정권과 일제 사이에 정치적으로 협약(協約)을 체결할 거라는 첩보가 김성숙의 귀에도 들어왔던 것이다.

그날 이후, 결국 김원봉은 정세를 판단하여 조언하는 김성숙의 의견을 따랐다. 의열단의 본부를 신변이 안전한 광동의 광주로 옮기기로 결심하고 단원들에게 선언했던 것이다. 예견한 대로 단원들 중에는 영혼이 자유로운 테러리스트로서 김원봉이 변절했다고 항의하며 의열단을 탈퇴한 뒤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무정부주의자라기보다는 민족주의자인 대부분의 단원들은 의백 김원봉과 함께 했다.

한 달 뒤, 6월 늦봄이었다. 첩보대로 북경 장작림 군벌정권과 일제 사이에 미쓰야협약(三矢協約)이 체결됐고, 군벌정권은 일제에 협력하여 김성숙 등이 결성한 창일당 당원들에게 북경을 즉시 떠나라는 추방령을 내렸다. 더불어 잡지 <혁명>도 폐간명령이 떨어졌다. 마침내 김성숙도 뒤따라오겠다는 장지락을 남겨두고 북경을 떠날 준비를 했다. 하필이면 김성숙이 동생처럼 정든 장지락과 헤어지는 날 아침부터 천둥 번개가 치더니 눈앞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장대비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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