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붉은 승려 <9>
금강산으로 가리라
달이 밝았다. 봉선사 경내에도 달빛이 금싸라기처럼 재였다. 태허는 야경을 돌지 않는 밤인데도 주지채 부근에서 서성거렸다. 그러다가도 월초의 기침소리가 나면 몸을 숨겼다. 월초를 만나 자신의 뜻을 고백하려고 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태허는 어깨가 축축해진 것을 느꼈다. 밤이슬이 내리고 있었다. 밤이슬은 야광의 물체처럼 푸르스름한 빛을 냈다. 태허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누웠다. 그러나 잠이 올 리 만무했다.
수행자의 길과 세속인의 길은 엄연히 달랐다. 태허는 1920년 4월 28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출소한 뒤 무산자동맹에 가입해 김사국 등과 활동해 보았지만 봉선사에 몸을 담고 있는 수행자로서 갈등이 왔다. 자신은 철저한 사회운동가도 승려도 아니었다. 이제는 어느 것 하나를 선택해야 할 시점에 도달한 것 같았다. 그러나 자신을 아껴준 월초의 은혜를 저버리고 절을 떠난다는 것도, 의지만 가지고 세상 속으로 뛰어든다는 것도 결코 쉽지는 않은 일이었다.
태허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방문 밖에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부엉이가 날갯짓하며 날아갔거니 하고 다시 누우려고 했지만 머리끝은 여전히 쭈뼛했다. 누군가가 태허의 방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야경 도는 스님이 방에 불이 켜진 것을 보고 주의주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태허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입 바람으로 호롱불을 훅 껐다. 그제야 묵직한 인기척이 났다. 태허는 직감적으로 월초임을 알고 방문을 열고 나가 합장했다.
“주지스님, 무슨 일이십니까?”
“너야말로 무슨 일로 내 방 앞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이냐?”
태허가 대답을 못하자 월초가 말했다.
“며칠 전에 꿈을 꾸었다. 네가 봉선사를 떠나더구나. 내 꿈이 맞는지 말해보아라.”
“주지스님, 비구계 계첩을 받지 않겠습니다. 제가 가야 할 길은 절 밖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절 밖에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냐?”
“독립운동을 하겠습니다. 감옥에서 출소한 뒤부터 깊이 고민해 봤고 마침내 도달한 생각입니다.”
“어리석구나! 부처님도 화택중생(火宅衆生)이라 했거늘 탐진치로 불이 난 네 몸뚱이 화택으로부터 먼저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가 아니겠느냐?”
“저는 세상의 급한 불부터 먼저 끄고 돌아오겠습니다.”
월초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사실 화급한 면으로 친다면 불붙은 화택중생이나 화택세상은 같은 말이었다. 월초가 미소를 짓는다는 것은 허락한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월초는 단서를 달았다.
“내년 봄에 비구계를 받고 떠나거라.”
“무슨 말씀이신지요. 절을 떠나는데 왜 비구계를 받으라 하십니까?”
“계를 받는 공덕이 있지.”
“떠나는 제가 무슨 염치로 그런 공덕을 받겠습니까?”
“계란 나침반과 같아. 길을 잘못 들었을 때 바른 길을 가리켜주는 것이 나침반이 아니더냐. 더구나 네 호주머니에 든 계첩은 부적이 돼 줄 것이다.”
“부적이라뇨?”
“부처님이 호주머니에 계첩을 넣고 다니는 너를 지켜주실 것이다.”
월초 대화상의 모습
태허는 월초의 말에 콧잔등이 시큰했다. 절을 떠나겠다는데 비구계를 받으라고 강요하는 월초의 깊은 속내를 알고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스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내일부터는 대중의 청규를 따르지 말고 네 마음대로 행동해도 좋다.”
“금강산을 한 번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금강산을 한 번 보는 것이 소원입니다.”
“만주로 갈 거면 지금 가지 마라. 떠날 때 아예 금강산으로 가서 머물다 가거라.”
“무슨 말씀이신지요?”
“금강산에서 똑똑한 중이 올 것이다. 그때까지 기다렸다가 그 중에게 금강산 얘기도 듣고 그곳 절에 사는 중들을 소개받고 가야만 편히 머물 수 있을 것이다.”
“네, 그러겠습니다.”
“헌데 너는 왜 금강산을 가려고 하느냐?”
“일찍부터 금강산을 한 번 가보고 싶었고, 두 번째는 만주나 중국 본토로 가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일이 잘못된다면 스님께서 반드시 피해를 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금강산에서 살던 중이라고 신분을 속이려 합니다.”
월초가 얘기한 중은 운허였다. 경송이 월초에게 자신의 상좌 운허를 자랑했던 적이 있는데, 월초는 젊은 그에게 자신의 가풍을 잇게 하고자 유점사에 있는 그를 불렀던 것이다. 운허는 지금 봉선사로 오고 있는 중이었다.
운허 역시 태허와 비슷한 사고를 가지고 있는 승려였다. 소설가 춘원 이광수와 8촌 사이인 운허(李學洙)는 동갑내기였다. 이광수가 생일이 두 달 빨라 형이 되었다. 운허는 평양대성중학교를 다니다가 20세 때 한일합병이 되자 만주 봉천으로 건너가 한인교포학교 동창학교 교원으로 재직하면서 항일단체인 대동청년단에 가입했다. 이후 1914년에는 교포아동학교인 흥동학교와 1917년에는 배달학교를 설립해 운영하다가 3.1운동 직후에는 독립군정기기관지인 한족신보 사장에 취임하여 신문을 발행했으며 1920년에는 광한당을 조직해 독립운동을 했다. 그러다가 국내에 잠입했는데 동지들이 서울에서 체포되어 운허는 홍천의 수타사를 거쳐 유점사 말사인 봉일사로 숨었다. 이름도 이학수에서 박용하(朴龍夏)로 가명을 썼다. 당시 봉일사 주지는 경송이었는데 운허는 유점사로 가서 1921년 5월 경송을 은사로 용하란 법명을 받고 출가했다. 운허의 관심은 오직 독립과 교육이었다. 출가한 뒤 하나가 더 추가되었던바 그 일은 역경(譯經)이었다. 한자로 된 불경을 우리말로 번역하지 않으면 결국 조선 사람들에게는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 걱정은 하지 마라. 이유가 어찌 됐든 금강산을 보겠다고 한 것은 잘한 일이다. 금강산은 법기보살(法起菩薩)이 상주하는 명산이다. 법기보살이란 부처님 법을 일으키는 보살인즉 중국에도, 일본에도 없는 우리나라 금강산에만 계시는 보살이니라.”
태허는 월초가 방을 나간 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새벽녘에는 영천 은해사에서 온 객승 차응준이 부는 대금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태허는 무상함을 절감케 하는 대금의 흐느끼는 소리에 빠져들었다. 차응준은 도량석을 돌 때나 고향생각이 나 기분이 울적해지면 대금을 꺼내 서산대사의 회심곡(回心曲)을 불곤 했다. 잠이 달아나버리자 온갖 상념들이 머릿속을 오락가락 했다. 가는 길을 바꾼다고 생각하니 지난 일들이 산자락 저편 절골 마을의 불빛처럼 명멸했다. 서대문형무소로 면회를 왔는데 만나주지 않았던 속가아내 정씨도 떠올랐다. 한 점 혈육인 숙녀도 아련히 그리웠다. 자신의 진로를 바꿀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만나줄 걸 하고 후회도 했다. 정씨 부인이 맡기고 간 누비장삼과 벙거지를 입고 출소한 날 마음속으로는 이기적인 자신을 탓하기도 했던 것이다.
며칠 후.
태허의 동생 성호가 봉선사에 나타났다. 성호는 머리만 길었지 승려나 다름없었다. 농한기 에는 집에 가지 않고 부목처럼 수국사나 용문사, 봉선사 객방에서 살았던 것이다. 작년에는 모내고 김매는 농번기에도 절에서 살려고 해서 아내가 용문사까지 쫓아와 큰소리로 언쟁한 일도 있었다.
태허가 출소한 뒤 성호가 봉선사를 찾아온 것은 처음이었다. 태허는 헛기침을 하며 성호가 든 객방으로 들어갔다. 성호는 태허를 형님이라 하지 않고 꼭 스님이라고 불렀다. 성호가 태허에게 작심한 듯 말했다.
“스님, 저도 머리 깎게 해주세요.”
“중이 되겠다는 것이냐?”
태허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자신은 절을 떠나려고 하는데 동생은 절에 들어오겠다고 하니 길이 교차하는 느낌이었다. 말문을 막히게 하는 기막힌 운명이었다. 성호는 속가의 형인 태허가 망설이지 않고 승낙할 줄 알았는데 입을 다물어버리자 당황했다. 잠시 후 태허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부모님은 어떠하시더냐?”
“제 뜻대로 하라 했습니다.”
“그래도 너마저 출가하겠다니 식구들의 상심이 클 것이다. 더구나 나는 머잖아 중국으로 떠난다.”
“스님이 중국으로 갈 것이라는 소문은 수국사까지 다 퍼져 있습니다.”
“사실이니 구차하게 변명하지는 않겠다. 나는 그렇다고 하지만 너마저 출가한다면 식구들은 누구를 의지하겠느냐?”
“아닙니다. 속가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형수님이 집안의 대들보처럼 워낙 살림을 잘하십니다.”
성호는 태허의 속가아내였던 정씨 부인을 집안의 대들보라고 부르곤 했다. 사실 정씨 부인이 수국사 부근으로 이사를 와서부터는 성호 아내를 데리고 농사는 물론이고 집안의 대소사를 맡아서 치르곤 했던 것이다.
“네 뜻이 그러하다면 어찌할 수 없구나.”
“오늘 봉선사에 온 까닭입니다. 월초 주지스님에게 출가하려고 왔습니다.”
“이왕 그렇다면 큰스님 회상에서 공부하는 것이 좋겠지.”
“주지스님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주지채에 계실 것이다. 네가 가서 직접 여쭈어라.”
성호는 지체하지 않고 바로 일어섰다. 출가의지가 모나지 않은 성격과 달리 급하고 강했다. 태허는 자신이 설득하기에는 늦었다고 생각했다. 성호에게는 이미 중물이 들어 있었다. 성호가 방문을 나서다 말고 돌아섰다.
“스님, 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형수님 부탁입니다.”
“나더러 속가를 들르라는 말이냐?”
“형수님은 대가 끊길까 근심이 크십니다.”
“그런 이유로 중이 속가를 들락거려도 된다는 말이냐?”
“스님이 절을 떠나 중국으로 간다는 소문은 속가 식구들도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월초스님의 허락을 받았다는 소문까지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속가를 들르지 않겠다는 스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태허는 대답을 못했다. 며칠 사이에 월초를 만나 자신의 심중을 고백했던 얘기가 수국사까지 퍼져 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이미 사실이 돼버린 일을 두고 부정할 수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금강산을 거쳐 중국으로 함께 가기로 한 김규하에게 미리 얘기했는데 그 내용이 소문으로 돌았는지도 몰랐다. 경상도 사투리가 유난히 심한 의성 출신인 김규하는 서울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조금 하다가 지금은 봉선사에 머물고 있었다. 김규하와 함께 객방을 쓰던 차응준도 언변이 좋은 김규하에게 설득을 당해 덩달아 중국으로 가려고 결심했다. 그들은 태허가 금강산으로 떠날 날만을 기다렸다.
성호가 금세 월초를 만나고 돌아왔다.
“주지스님께서 봉선사에는 대중이 많으니 용문사로 가 풍곡스님에게 머리를 깎으라고 합니다.”
“마음이 모질지 못한 넌 풍곡스님 밑에서 공부하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나의 은사이신 풍곡스님은 호연지기가 대단하신 분이다.”
다음날 성호는 바로 용문사로 떠났다. 비로소 성호는 스스로 머리를 깎고 구면인 풍곡의 상좌가 되어 법명을 능허(凌虛)라고 받았다. 태허와는 속가나 불가나 허(虛)자 돌림의 동생이 되는 셈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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