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안거 해제를 하고 한 달쯤 지났을 때였다. 활엽수들 중에서 가장 빠르게 움이 트는 오리나무에 푸른 기운이 돌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매화나무와 서로 다투며 꽃을 피우는 생강나무는 벌써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청년 사미승은 생강나무 꽃향기를 맡으며 풍곡을 따라 봉선사로 갔다. 강원에 입학하기 위해서였다. 봉선사 강원 이름은 전문창화강원 (專門彰華講院)이었고 전통적인 과목 이외에 신학문과 일어까지 가르치려고 하는 강원이었다. 이는 개명한 세상이 되었으니 조선의 승가교육도 바뀌어야 한다는 봉선사 주지 월초의 강력한 뜻이었다.

월초는 불교중앙학림의 전신인 명진학교(明進學校)를 1906년에 개교시켰을 때도 우리나라 최초 수학교사 이명칠(李明七)을 초빙하여 서양수학을, 어윤중(魚允中) 윤치호(尹致昊) 서광범(徐光範) 등에게 불교 이외의 과목을, 일본인 이노우에 겐신(井上玄眞)에게는 일본어를 가르치도록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명진학교의 전통은 불교중앙학림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전국에서 모인 젊은 승려들에게 조선 제일의 강백 박한영(朴漢永)이 불교학을, 이명칠이 수학과 미술을, 이지광(李智光)이 역사와 지리를, 송헌석(宋憲奭)이 국어를, 일본 하야카와 케이조(早川敬藏)가 일어와 물리를 가르쳤던 것이다.

청년 사미승은 봉선사 요사 뒷방에 바랑을 풀었다. 초저녁쯤 풍곡이 방으로 들어와 한 마디 했다.

“은사님이 중앙학림에서 볼일을 보시고 밤중에 오신다고 한다. 그러니 인사는 내일 아침에 드리는 것이 좋겠다.”

풍곡은 비좁은 뒷방에 큰 대(大)자로 누었다. 그러더니 청년 사미승더러 깊이 새겨들으라는 듯 은사인 월초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우리 스님 속가 집안에 궁궐로 들어간 홍 상궁이 있었던 모양이야. 홍 상궁이 우리 스님을 얘기한 까닭에 고종 황제께서 우리 스님과 인연을 맺으신 게지. 어느 날 황태자께서 중병에 걸려 용한 의원들이 다 궁궐에 입실해 황태자를 치료해 보았지만 효험이 없었다고 그래. 마지막 수단으로 고종 황제께서 우리 스님에게 불살님께 기도해 달라고 홍상궁을 보냈던 모양이야. 그래서 우리 스님이 청도 운문사 사리굴로 올라가 나반존자님께 100일 기도해 황태자 병세가 호전됐다고 그래. 황태자가 병마를 떨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고종 황제께서 크게 기뻐하며 우리 스님을 각별히 신임하셨던 게지.”

풍곡이 큰 대자로 누워 있는 탓에 청년 사미승은 윗목에 무릎을 꿇고 앉아야 했다. 그래도 불편하지는 않았다. 청년 사미승은 은사가 하는 얘기에 신심이 솟구쳤다. 월초가 고종의 신임을 얻게 된 얘기가 흥미진진했다. 더구나 풍곡은 입맛을 쩝쩝 다셔가며 얘기를 구성지게 했다.

월초는 15세에 양주 봉인사 부도암으로 출가한 뒤 15년간 불학을 공부하고 1892년에는 예조판서의 명으로 전시에는 승군대장이 되는 남한산성팔도도총섭(南漢山城八道都摠攝)에 올랐고, 1900년에는 고양 은평면 산자락에 고종의 지원을 받아 수국사(守國寺)를 창건했다. 수국사는 명성왕후가 일인의 자객에게 시해당한 지 5년 만에 조선왕조를 지키겠다는 비원을 담아 창건한 사찰이었는데, 황실과 백성이 혼연일체가 되어 거국적으로 힘을 모은 대작불사(大作佛事)였다. 당시 황실에서 25만 냥, 영의정 심순택(沈舜澤) 이하 조정 신하 59명과 상궁 13명 등이 1만 9천 냥을 흔쾌히 시주하였고, 왕명으로 전국의 도편수를 모으고 최상의 목재를 가져와 절을 지었던 것이다.

“우리 스님 가풍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불교학교인 명진학교를 세우신 뜻만 봐도 알겠지만 우리 불도들이 개명한 세상에 뒤처지지 않도록 교육하고 더불어 인재불사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삼각산에 수국사를 창건하신 바와 같이 나라를 지켰던 서산대사님처럼 호국정신을 이어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명진학교는 승려 인재를 키워내는데 한몫을 했다. 한용운(韓龍雲)은 명진학교 제 1회 졸업생이고, 훗날 독립운동을 하다가 망명하거나 옥고를 치렀던 신상완(申尙玩) 백성욱(白性郁) 김법린(金法麟) 김대용(金大鎔) 이종욱(李鍾郁) 등은 명진학교와 그 후신인 불교중앙학림 출신이었던 것이다.

한참 동안 큰소리로 얘기하던 풍곡이 어느 새 코를 골고 있었다. 청년 사미승은 조심스럽게 다리를 뻗고 누었다. 그러나 잠은 저만큼 달아나버렸다. 풍곡이 간헐적으로 대포를 쏘듯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았다. 청년 사미승은 마지못해 귀를 막고 돌아누웠다. 그러나 풍곡의 코고는 소리는 청년 사미승의 고막을 찢을 듯이 들려왔다. 결국 청년 사미승은 자는 둥 마는 둥 뒤척이다가 날밤을 샜다.

운암 김성숙 스님의 계첩


다음날.

청년 사미승은 풍곡을 따라 월초가 주석하는 주지채로 올라갔다. 월초는 방 안쪽에 단정히 앉아 있었다. 마치 돌부처 하나가 놓여 있는 것 같았다. 두상이 크고 어깨가 넓으며 초로(初老)의 나이답지 않게 허리를 곧추세운 풍채는 장중하기까지 했다. 짙은 눈썹과 두꺼운 입술은 청년 사미승을 기죽게 했다. 청년 사미승은 풍곡이 하는 대로 절하고 물러앉았지만 눈 둘 데를 찾지 못했다.

“성암(星巖)이라는 사밉니다.”

“성암이라고?”

“작년에 철산에서 온 사밉니다.”

“얼굴을 보니 태허(太虛)가 좋겠다.”

월초는 밑도 끝도 없이 한 마디 내뱉고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아마도 자신에게 손자뻘이 되는 제자들은 허(虛)자 돌림이 좋겠다는 뜻인 듯했다. 청년 사미승은 왜 태허인지 감히 묻지 못했다. 풍곡도 따지지 않았다. 되물을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윗사람이 제자에게 호(號)를 지어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풍곡이 제자를 대신해서 말했다.

“스님, 사미가 강원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하니 허락해 주십시오.”

“내가 호까지 주지 않았는가.”

청년 사미승은 월초가 강원 입학을 허락하는지 반대하는지 판단을 못했다. 처음으로 고개를 들고 월초의 표정을 살폈다. 월초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시선을 방문 밖에 던지고 있었다. 이제 볼 일을 봤으면 방문 밖으로 나가라는 시선이었다. 풍곡이 알아차리고 양반자세를 풀자 월초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가시게.”

그제야 풍곡은 자신이 한 발 늦었다고 생각했다. 은사 월초는 한순간도 시간을 지체하거나 낭비하지 않는 스님이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월초는 신도를 대할 때도 미주알고주알 얘기하며 시간을 끌지 않았다. 특히 안부를 묻는 신도에게는 한두 마디만 할 뿐 시간을 아꼈다. 방에 들어온 신도가 “큰스님 친견하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그동안 별고 없으신지요?” 하고 인사하면, 잠시 침묵하고 있다가 신도가 불편해 하면 그제야 “나는 안녕하오. 나를 다 보았으면 어서 가보시오.”라고 하며 신도를 돌려보냈던 것이다.

“스님, 저는 용문사로 돌아가겠습니다.”

풍곡은 방문 밖에서 큰소리로 인사하고는 봉선사를 떠나버렸다. 청년 사미승은 곧 바랑을 맨 풍곡의 뒷모습을 지웠다. 이제부터 모든 일은 혼자 결정하고 해결해나가야 했다. 청년 사미승은 호미를 하나 들고 밭으로 나갔다. 강원에 입학하려고 봉선사 말사에서 온 사미승들이 밭을 일구고 있었던 것이다. 채소 씨앗을 뿌리기 위해 밭두둑을 만드는 울력이었다.

그런데 사미승들 중에는 벌써 월초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강원 과목을 비난하고 있었다. 절 밖의 일을 제법 소상하게 알고 있는 사미승이 말했다.

“나는 봉선사 강원을 떠나 다른 절 강원으로 가겠소. 우리가 왜 일어를 주절거린단 말이오? 이는 총독부에서 내린 지령이 분명하오. 우리가 왜 명성황후를 시해한 왜놈 말을 배워 깨끗한 입을 더럽힌단 말이오.”

한 사미승이 투덜거리자 여러 사미승들이 맞장구쳤다.

“우리가 왜 총독부 지령대로 일어를 배우고 조선불교를 왜놈들 종파인 조동종에게 팔아넘긴 이회광(李晦光)이 뒤를 따라간단 말이오.”

사미승들의 분위기는 심상찮았다. 개강하는 날쯤에는 모두 봉선사를 떠나버릴 듯했다. 그러나 막상 개강하는 날이 되자, 앞에 나서 주장하던 사미승만 떠났고 나머지 10여 명은 월초의 훈계를 뼈아프게 들었다. 월초는 사미승들의 소란을 전해 들었는지 모처럼 서울 종로 토박이 말씨로 길게 얘기했다. 결국 강원 큰방에 빙 둘러앉은 사미승들을 제압해버렸다.

“이 홍월초가 화계사에 머물 때 일본 정토종 중을 만나고 나서 봉원사 이보담(李寶潭) 스님과 원흥사 안에 불교연구회를 설립한 이유가 있소. 일본 정토종의 근대화된 포교 전도를 타산지석으로 배우고자 함이었지 정토종 중이 되자는 속셈은 아니었소. 조동종 중들이 우리 조선 절에 들어와 살아도 된다고 허락한 이회광의 매종(賣宗)과 이 홍월초가 가는 길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하오. 나는 명진학교 때부터 일인을 초빙하여 일어를 가르치게 했소. 왜냐, 지피지기(知彼知己) 해야만 우리 조선불교가 살아남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오. 그런데 여러분은 왜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살아남는다는 이치를 아직도 모르는 것이오!”

불교연구회가 정토종 종무원의 자금을 지원받고 정토종 종지(宗旨)인 ‘정토(淨土)’를 지향하는 모임이었다고는 하지만 그 근본 취지는 조선불교보다 앞서가는 포교 전도를 연구하는 데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모임의 인물 중에는 정토종 배지를 자랑스럽게 달고 다니거나 이회광처럼 친일을 염두에 둔 승려도 있었으므로 오해받을 만한 소지가 없지는 않았지만 월초만은 조선불교에 생기를 불어넣어 보자는 순수한 입장이었던 것이다. 총독부의 조선불교 말살 지령에 격렬하게 반발했던 한용운과 김법린, 그리고 천도교 교주 손병희가 봉선사를 자주 찾아와 월초를 만나고 가는 것은 바로 그런, 월초의 속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청년 사미승은 10여 명의 강원 학인들 중에서 일어 실력만큼은 가장 앞섰다. 강원생활 4개월 만에 일어원서를 읽고 학인들 앞에서 일어로 연설할 정도였다. 월초가 강원 졸업 며칠 전 일어 특별시간을 마련해 자신과 구면이자 불교중앙학림 강사인 하야카와 케이조(早川敬藏)를 부른 적이 있는데, 그때 그 역시도 발군인 청년 사미승의 일어 실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1917년 7월 15일. 월초는 강원 사미과 제 1회 졸업식날 밤 아무도 모르게 그를 주지채로 불렀다. 월초는 정식으로 사미과를 마친 그의 손을 잡아끌면서 말했다.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 나는 너를 사미라 부르지 않고 태허라 부르겠다. 태허란 허공이다. 너는 허공처럼 대장부로 살아야 한다.”

태허는 벌떡 일어나 월초에게 삼배를 했다. 그러나 월초는 태허를 처음 대면했을 때와 같이 고개를 한 번 끄덕했을 뿐 돌부처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는 할 말을 다했으니 이제 너의 일을 보라는 식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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