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년 11월 말.

금강산 유점사에서 온 19세의 청년은 땔나무를 하고 요사 아궁이에 군불을 지피는 일을 했다. 지난 봄날 승려가 되겠다고 용문사로 왔지만 한 해가 다 지나가는데도 주지스님은 여전히 잡일만 시켰다. 게다가 가을이 깊어지면서 북풍이 불기 시작하자 하나의 일이 더 추가되었다. 절 마당을 노랗게 물들이는 은행나무 낙엽을 쓰는 일이었다. 보름 전 수도산 봉은사로 가서 승려자격증인 도첩(度牒)까지 받았지만 지금까지 해온 허드렛일은 바뀌지 않았다. 도첩에는 자신의 이름이 성암(星巖)으로 바뀌어 있었다. 법명이었다.

출가 전 모습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외모였다. 법명을 받으러 가는 날 아침에 머리를 삭발했고, 잿빛 승복으로 갈아입었던 것이다. 낙엽은 바람을 따라 종각을 넘어 대웅전과 요사 마당에 가득 쌓였다. 청년이 아침저녁으로 빗자루를 들고 마당에서 살지만 마당은 금세 노랗게 변해 있곤 했다. 천년도 넘은 은행나무는 절로 들어오는 산길과 돌계단까지도 청년 사미승을 희롱하듯 낙엽을 쏟아 부었다.

청년 사미승에게 낙엽을 쓸라고 지시한 사람은 풍곡 주지스님이었다.

“정식 비구가 됐다고 착각하지 마라. 법명을 받았으니 이제 겨우 넌 사미승이 된 것이다.” 승려가 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승복만 입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이는 엇비슷하지만 자신보다 4년 먼저 머리를 깎은 사형의 위치에 도달하려면 아득했다. 얼굴이 호랑이처럼 무섭게 생긴 사형이 하는 절일이란 아침저녁으로 목탁과 요령을 들고 근엄한 표정으로 집전하는 예불뿐이었다. 예불한 뒤에는 어두컴컴한 요사 골방으로 들어가 밤낮으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기만 했다. 그래도 주지 풍곡은 사형에게 아무런 지시나 간섭을 하지 않았다.

청년 사미승이 철산 고향집을 나선 지는 어느 새 7개월이 지나고 있었다. 원래는 항일투사를 육성하는 봉천 신흥무관학교에 입교하려고 했지만 초파일 무렵에 원산을 지나다가 풍곡을 만나 금강산 유점사를 거쳐 용문사로 내려와 버렸던 것이다. 청년 사미승은 총 대신 빗자루를 들고 있는 자신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낯설었다. 그러나 풍곡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며칠 전 출타하려는 풍곡을 붙들고 얘기했다가 오히려 야단만 맞았다.

“스님, 이젠 불경을 읽게 해주십시오.”

“이놈아, 온갖 망상으로 들끓는 네 머릿속으로 부처님 말씀이 들어갈 수가 있겠느냐! 속가의 일은 다 잊어버려야 해. 결혼한 속가의 처자도 식구도 다 잊어버려야 중이 될 수 있어. 절 울타리 밖의 일은 모두 잊어버려야 진짜 중이 될 수 있는 것이야.”

“스님, 무슨 방법으로 잊어버릴 수 있겠습니까?”

“내가 네게 속았구나. 석왕사 가는 길에서 처음 만났을 때는 쓸 만한 중이 되겠다 싶어 데리고 왔다만 지금 보니 아주 어리석은 놈이구나.”

“제가 감히 스님을 속였다니요. 저는 스님을 속인 일이 없습니다.”

“허허허. 나는 네 놈에게 바깥의 일을 잊어버릴 수 있는 방법을 다 가르쳐주었는데도 왜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스님, 한번만 더 가르쳐주시면 다시는 묻지 않겠습니다.”

“알겠다. 네가 원하니 가르쳐주마.”

청년 사미승은 합장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풍곡이 빗자루를 하나 들고 와 말했다.

사진= 문화재청 제공


“이 빗자루가 너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할 것이다. 중으로 만들기도 하고 중 옷을 벗기기도 할 것이다. 용문사 빗자루는 마당만 쓸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제야 청년 사미승은 풍곡의 말을 이해했다. 빗자루로 마당에 쌓인 낙엽뿐만 아니라 머릿속의 망상까지도 다 쓸어버리라는 것이 은사 풍곡의 가르침이었다.

그해 겨울은 눈이 자주 와 용문산 산자락을 덮곤 했다. 청년 사미승은 마당으로 나가 하루 종일 눈을 쓸었고, 사형은 골방에 꼼짝 않고 가부좌를 틀었다. 그런가 하면 바람처럼 활달한 풍곡은 절에만 있지 않고 장삼자락을 휘날리며 만행을 나갔다가 돌아오곤 했다. 청년 사미승은 사형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골방 안에서 좌선만 하고 자신은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눈 치우는 일만 해도 이제는 섭섭하지 않았다. 풍곡에게 한 마디 법문을 들은 뒤로는 무심코 쌓인 눈을 쓸기만 했다.

그런데 동안거가 끝나는 정월 보름날이었다. 갑자기 풍곡이 두 사람을 부르더니 해오던 서로의 일과를 바꾸었다.

“오늘부터는 서로의 일을 바꾸어라. 너는 이제 비질을 그만 하고 골방에 들앉아 좌선만 해라. 알겠느냐?”

“예.”

청년 사미승은 사형이 하던 좌선을 자신이 뺏는 듯한 기분이 들어 미안해했다. 그러나 풍곡은 사형을 크게 나무랐다.

“보아 하니 너는 깨닫겠다는 생각에 빠져 있는 것 같다. 그것을 우리 불가에서는 법집(法執)이라 하느니라. 그걸 버려야 깨달을 수 있다. 그러니 너는 오늘부터 나무 하고 마당 쓰는 일로 돌아가거라.”

청년 사미승은 조석예불 때 그동안 귀동냥한 깜냥으로 서툴게나마 목탁 치고 요령 흔들며 집전했다. 변화는 그뿐이었다. 사형은 전혀 흔들림 없이 무엇에 집중한 골똘한 태도로 군불을 지피거나 비질을 했다. 그러면서도 혼잣말로 ‘무(無)라, 무(無)라’ 하고 다녔다.

청년 사미승이 사형과 밤새 얘기를 나눈 것은 딱 한 번뿐이었다. 서울 마포에서 풍곡을 찾아온 노파가 폭설이 내려 절을 내려가지 못한 날이었다. 사형은 노파와 구면이었다. 노파가 폭설 때문에 오도 가도 못하자 자신의 골방을 비워주고 청년 사미승 방으로 건너왔다.

좀체 말을 걸지 않던 사형이 입을 열자 의외로 양순하게 보였다.

“사제, 보살님이 자고 간다고 하니까 오늘은 이 방에서 자야 할 것 같소.”

“제가 공양간 골방으로 갈까요?”

“함께 자면 돼요. 냉골 방으로 갈 필요가 없어요.”

“대단한 신도인 것 같습니다.”

“마포에서 용문사까지 걸어와 불공을 올리는 것을 보면 신심이 장하신 노파지요.”

공양간 골방이란 부엌 옆에 딸린 방으로 윗목에는 창고처럼 고구마를 쌓아두어 비좁기 짝이 없었다. 작년까지는 공양주보살이 사용했던 방이지만 지금은 비어 있었다. 사형이 노파를 그 방으로 보내지 않는 것은 은사 풍곡이 어렵게 여기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달빛이 창호에 어렸다. 사형과 사제가 되는 두 사람은 밤늦도록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청년 사미승은 오줌이 마려워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갔다. 오후 늦게까지 내리던 눈은 어느 새 그쳐 있었고, 눈구름이 사라진 허공에는 둥그런 달이 나타나 달빛을 뿌리고 있었다. 툇마루에 흩뿌려진 눈이 달빛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였다.

대웅전에는 호롱불이 켜져 있었다. 아마도 마포에서 온 노파가 기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산 능선 쪽에서 노루가 목쉰 소리로 울었다. 정랑에서 나온 청년 사미승은 진저리를 쳤다. 체온이 오줌으로 빠져나간 듯 추위가 뼛속으로 파고들었다. 청년 사미승은 다시 방으로 들어와서야 눈을 감았다. 그러나 사형이 엎치락뒤치락 하는 소리에 잠이 달아났다. 한참 만에 청년 사미승이 말했다.

“사형, 잡니까?”

“아니오. 사제는 무슨 인연으로 출가했을까 하고 헤아리고 있었소.”

“군사훈련을 시킨다는 봉천 신흥무관학교를 가려고 석왕사 부근을 지나다가 위풍당당하게 걸으시는 주지스님 모습에 반해서 이리로 따라 왔지요.”

“기회가 되면 떠날 것이오?”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왕 출가했으니 불교 교리를 배워 부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싶소.”

“우리 노장님은 불학보다는 참선을 중히 여기는 분이오. 정말 불학을 배우고 싶다면 봉선사로 가 월초화상 밑에서 공부함이 좋을 것이오.”

“저는 은사님의 말씀만 따르겠습니다.”

“은사님은 법호처럼 바람 풍(風), 계곡 곡(谷)자와 같이 계곡에서 불어가는 바람인양 거침없이 사시는 분이지요. 올 초파일만 해도 나한테 절을 맡겨두고 석왕사를 다녀오셨으니까요. 초파일 연등 값이나 계산하는 그런 옹졸한 분이 아니지요.”

“그런데 보살님은 왜 밤을 새워 기도합니까?”

“아마도 비뚤어진 아들이 있는가봅니다. 그 아들 잘 되라고 기도할 겁니다.”

비로소 사형이 노파 아들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풍곡이 양주 회암사 주지로 있을 때였다. 서울의 젊은 유생들이 경치 좋은 곳을 유람 다니다가 돈이 떨어지면 만만한 절로 들어가 주지를 협박하여 유람경비를 뜯곤 했다. 자신들은 양반이니 천민인 승려를 괴롭혀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파락호들이었다. 어찌 보면 도적떼나 다름없었다.

야심한 밤이었다. 도적떼 같은 청년들이 들어와 스님들을 절 기둥에 묶어놓고는 주지채로 들어가 풍곡마저 밖으로 끌어냈다. 도포 차림의 힘센 사내가 풍곡을 기둥 쪽으로 밀치며 묶으려 했다. 그러자 풍곡이 소리쳤다.

“야! 이놈들아 묶으려면 바르게 묶어야지 왜 거꾸로 묶느냐.”

풍곡의 호통에 힘센 사내가 어리둥절해하더니 잠시 후 풍곡의 멱살을 잡아 힘으로 밀치며 말했다.

“이 중놈이, 거꾸로 묶다니 양반집 가문의 나를 현혹하는구나.”

“양반집 가문이라고 말하는 네 입이 부끄럽지 않느냐! 내가 도둑인 너를 묶어야지 어찌 도둑인 네가 거꾸로 나를 묶는단 말이냐.”

사내가 풍곡의 멱살을 놓더니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도적떼로 변한 일행에게 다른 스님들을 풀어 주라고 말했다.

“스님들을 풀어주세.”

사내가 풍곡 앞에 엎드려 잘못을 빌었다.

“대사님, 저희들의 장난이 지나쳤으니 용서해 주십시오.”

그제야 풍곡이 겁을 먹은 채 떨고 있는 스님들에게 나직하게 말했다.

“이놈들아, 뭐하고 있느냐. 야심한 밤에 회암사 올라오느라 허기져 있을 텐데 따뜻한 밥이나 해서 먹이지 않고.”

그러나 도적떼로 변한 유생들은 곧 산을 도망치듯 내려가 버렸다. 풍곡의 한 마디에 감히 방으로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도포 차림의 사내 뒤를 따라 흑단 같은 어둠 속으로 흔적 없이 사라졌다.

사형이 노파의 얘기를 다 하고는 곧 코를 골았다. 지금 대웅전에서 기도하고 있는 노파는 바로 그 사내의 어머니였다. 사내는 몇 대째 벼슬하지 못하다가 잔반(殘班)으로 내려앉은 집안의 장손이었고, 노파는 사대문 안의 모든 가게에 새우젓을 공급하는 도매상 갑부였다. 사형과 사제 간인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새벽녘에 같이 일어나 빗자루를 하나씩 들고 절 마당과 일주문 너머 산길까지 눈을 쓸었다. 절 주변의 산자락은 굳이 비질할 필요가 없었다. 설경에 손을 댄다는 것은 바보짓이었다. 참나무 나목들 사이로 쌓인 눈은 맑고 고요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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