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붉은 승려<3>

화장하지 말라

신문과 방송이 운암의 안타까운 별세 소식을 전하자, 독립운동가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을 질타하는 여론이 일었다. 특히 D일보가 관심을 갖고 운암 사후 3번의 톱기사를 연속적으로 내보냈다. 그제야 정부 총무처에서 운암 장례식을 사회장(社會葬)으로 치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사상적으로 좌우를 초월했던 운암에게 좌파라는 잘못된 낙인이 찍혀 장례식 치를 장소가 쉽게 정해지지 못했다. 서울시청은 광장을 선뜻 내놓지 않았다. 간부들이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고 소극적이었다. 그렇다고 덕수궁이나 창경궁 등 고궁 담 안에서 치르는 것도 모양새가 어색했다. 운암은 왕족이 아닐 뿐더러 백성들에게 고통을 주었던 궁궐은 그의 생애와 어울리지 않았다. 장소가 결정되지 못하자 가장 애가 탄 사람은 운허였다.

운허는 생각다 못해 역경위원들의 아침회의를 취소하고 동국대 역경원장실을 나섰다. 운허는 1964년부터 대장경을 한글로 번역하는 동국역경원 원장을 맡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남산 자락에 있는 동국대를 내려온 운허는 빠른 걸음으로 퇴계로와 을지로를 지나 종로 견지동과 안국동 사이에 자리한 조계사를 찾아갔다. 조계사 일주문을 들어선 운허는 대웅전으로 들어가 삼배했다. 나이 탓인지 숨이 턱에 찼지만 더 늦출 수 없는 일이었다.

때마침 총무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요사에는 영암 총무원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77세의 노승 운허를 본 62세의 영암이 합장하며 달려 나왔다.

“노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오차 한 잔 주시오.”

총무원장실에 놓인 다탁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은 운허가 숨을 골랐다. 남산 자락에서 종로까지 한달음에 걸어왔으니 숨이 찰만도 했다. 잠시 후 사미승이 오차 대신 물을 한 컵 가져와 운허 앞에 놓았다.

“역경 일 보시는데 제가 많이 지원해 드리지 못해서 오신 것입니까?”

영암도 총무원 차원에서 운허의 역경사업을 도우려고 애쓰는 스님 중 한 명이었다. 봉은사로 운허를 찾아갔을 때 ‘부처님께서 50년 설하신 법문을 내 50년 승랍에 반도 듣지 못했고, 그 반도 알지 못했으니 내생에 다시 사람의 몸 받아서 태어난다면 또 경을 읽고 역경을 하겠소.’라고 들었던 운허의 절절한 서원을 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전국의 절들이 몇 군데 빼고는 곤궁하였으므로 영암의 마음과 달리 지원은 지지부진한 편이었다. 숨을 고른 운허가 영암의 장삼에 달린 호주머니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영암의 호주머니는 승려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 있었는데, 한쪽은 공금 호주머니이고 다른 쪽은 개인 돈을 넣는 호주머니로 공과 사를 엄격하게 구별하고 사는 스님이었던 것이다.

“오늘은 다른 일로 왔어요.”

“무슨 일인지 말씀하시지요, 노장님.”

운허는 대답대신 눈가에 잔주름을 만들었다. 잠시 후에는 덧니를 드러내며 미소 짓더니 겸연쩍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조계사 마당을 빌리러 왔어요.”

“스님, 조계사 마당을 무엇에 쓰시려고 그럽니까?”

“운암 선생이 입적하셨는데 장례식장으로 쓰려고 그래요.”

“아이고, 노장님. 전화를 주시지 그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영암은 흔쾌하게 허락했다. 영암은 운암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승려 신분이었을 때 그의 출가본사는 봉선사이고 법명은 태허(太虛)이며, 항일운동을 하기 위해 승복을 벗었고 호는 운암이라는 것까지 잘 알고 있었다.

운허는 총무원장실을 나서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영암은 공사가 분명하여 버스 탈 일이 있어도 개인 돈을 넣는 호주머니가 비면 공금을 손대지 않고 먼 길도 걸어 다니는 지독한 승려였던 것이다. 그러니 조계사 마당을 승려가 아닌 환속한 사람의 장례식장으로 빌려주지 않겠다고 주장했다면 할 말이 궁색해졌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운허는 운암보다 나이는 6살 위였지만 승려가 된 순서는 운암이 운허보다 5년 빨랐다. 운암은 1916년에 양평 용문사에서 풍곡(楓谷)을, 운허는 1921년 금강산 유점사에서 경송(慶松)을 스승 삼아 출가했던 것이다. 그런데 풍곡과 경송은 모두 봉선사 주지 월초(月初)의 제자들이었으므로 운암이나 운허는 허(虛)자 돌림의 형제가 되는 셈이었다. 운암도 법명이 태허로서 봉선사 월초 문하의 6허(虛)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운허가 운암에게 늘 애틋한 정을 가지고 있었던 까닭은 봉선사라는 문중의식 말고도 속가의 고향이 모두 평안북도라는 사실도 컸다. 운암은 철산, 운허는 정주로서 모두 서해를 낀 땅으로 거친 바닷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해송처럼 기질마저 닮은 데가 많았던 것이다.

조화들이 새벽부터 하나 둘 대웅전 어간에 늘어나고 있었다. 만장들은 토방 축대를 따라 세워두고 있었다. 아침 9시가 되자 두건을 쓴 상주와 장례를 주최하는 검은 양복차림의 사람들이 왔고, 조계사 옆에 위치한 중동고등학교 학생 30여 명이 와서 의자를 나르는 등 장례식장을 정리했다. 학생들은 아직 검정색 동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들 중에는 독립운동을 했다는 분이 광화문이나 시청광장이 있는데 왜 옹색한 절 마당에서 장례식을 치르는지 의아해했다.

강남 봉은사에 방을 둔 운허도 나룻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와 이미 조계사 요사에 와 있었다. 총무원과 합의를 보지 못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었다. 운허가 유족들과 매장할 것을 이미 합의했고 파주 조리면 장탄리로 매장할 장소까지 정했는데, 총무원 일부 간부들이 뒤늦게 운암이 한때 승려였고 장례식도 불교식으로 집전하고 있으니 다비식을 치러야 한다고 맞섰던 것이다.

“노장님, 불교식으로 치르는 장례라면 화장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화장을 해야 이치에 맞는 일이네.”

“그런데 노장님께서는 왜 매장하자고 주장하시는 것입니까?”

“운암이 지금은 비록 이름 없는 산자락에 묻히지만 세상 사람들이 반드시 운암을 귀하게 여길 때가 올 것이네.”

“운암 선생을 다시 평가할 때가 온다는 말입니까?”

“그렇다네. 지금 화장하여 한 줌 재로 흩어버린다면 그때 가서 운암을 어디서 무엇으로 찾을 것인가?”

결국 총무원의 젊은 스님들이 물러섰다. 운허는 운암이 언젠가 그의 삶을 재평가 받을 것으로 굳게 믿었다. 그 날을 대비해서 운암의 유해라도 남겨두자는 것이 운허의 생각이었다. 젊은 스님들의 주장을 묵묵히 듣고 있던 영암이 한 마디 했다.

“노장님 안목에 거듭 놀랄 뿐입니다. 스님들 주장대로 불교식 장례가 아닌 것은 맞지만 노장님께서는 앞날을 다 보시고 방편으로 하신 말씀이니 따라야 합니다.”

운암의 장례식은 정확하게 10시에 시작했다. 9시 30분쯤이 되자 조객들은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일주문을 들어서는 사람은 기도하러 온 조계사 신도들과 구경꾼들이 발꿈치를 세우고 기웃거릴 뿐이었다. 학생들이 정돈한 의자는 300여 개였지만 군데군데 비었다. 정부에서 비용을 대는 사회장치고는 초라했다. 정계에서는 국회부의장, 신민당 총재, 정부에서는 총무처 장관 등이 왔을 뿐 여당의 실세 정객들은 보이지 않았다. 행사 내내 만장을 들고 있던 학생들은 조객 대표들이 차례대로 읽는 조사(弔辭)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짧은 행사인데도 지루해 했다.

다만, 노산이 추도사를 애끓게 읽을 때는 유족과 일부 조객들이 오열했다. 그뿐이었다. 스님의 목탁소리를 끝으로 장례식의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자 모두들 의자에서 후닥닥 일어나 일주문을 빠져나갔다. 의자 위에 버리고 간 행사인쇄물이 뒹굴 뿐, 조계사 마당은 순식간에 출렁이던 썰물이 자취를 감춘 듯했다. 가사장삼 차림으로 행사에 참여했던 총무원 스님들도 총총히 요사로 들어가 버렸다. 노산은 잠시 선 채로 한 스님이 흔들었던 요령 소리의 여운을 허공에서 쫓다가 조객들이 하나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가슴에 찬 조화를 뗐다.

조계사 일주문 밖에 대기한 장의차는 영정을 태운 승용차와 운암의 유택까지 따라갈 버스 한 대뿐이었다.

1년 후.

1970년 4월이었으니 꼭 1년 만이었다. 피우정을 짓는데 모금을 냈던 동지들이 다시 운암의 파주 조리면 장탄리 유택 앞에 모였다. 묘역을 정갈하게 정비하고 묘비를 세우는 날이었다. 기단의 검은 돌에 새긴 묘비명도 추도시, 추도사와 같이 노산이 지었다.

〈조국 광복을 위해 일본제국주의에 항쟁하고, 정의와 대중복리를 위해 모든 사회악과 싸우며 한평생 가시밭길에서 오직 이상과 지조로써 살고 간 이가 계셨으니 운암 김성숙 선생이시다.

1898년 평북 철산(鐵山) 농가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강개한 성격을 가졌더니 기미년에 옥고를 치른 뒤 사회운동에 가담했다가 마침내 26세에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중국 중산대(中山大) 정치학과를 마치고 북경, 광동, 상해 등지에서 혁명단체의 기관지들을 편집했으며 광복운동의 일선에 나서서 혁명동지들을 규합, 조선민족해방운동을 조직하기도 하고 뒤에 중일전쟁이 벌어지자 여러 혁명 단체들을 임정으로 총 단결하여 국무위원이 되어 해방을 맞으니 48세였다.

귀국한 뒤에도 민족통일을 위해 사상분열을 막기에 애썼으며 최후에 이르기까지 20여 년, 정치인으로 사상인으로 온갖 파한을 겪으면서도 부정과 불의에는 추호도 굽힘없이 살다가 1969년 4월 12일 71세로 별세하자 동지들이 울며 여기 장례 지냈다.〉

그런데 이로부터 35년 만에 놀라운 시절인연이 왔다. 2004년 7월 28일의 일이었다. 세상 사람들이 때가 되면 운암을 귀하게 여길 터이니 운암의 유해를 태우지 말라던 운허의 안목이 빛을 발하던 날이었다. 1982년에야 운암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더니 파주 유택에 있던 운암의 유해가 마침내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로 안장됐던 것이다. 뿐만 아니었다. 운허의 부탁으로 운암에게 조계사 마당을 내주었던 영암은 그 인연의 메아리인 듯 1987년 강남 봉은사에서 입적했지만 유해는 운암의 출가본사인 남양주 봉선사로 옮기어져 그곳의 다비장에서 스님들의 독경소리를 들으며 천화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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