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각은 세분의 성현을 모셨다는 전각이다. 이곳에는 산신, 칠성, 독성(나반존자)가 함께한다.
그런데 나는 이 삼성각에 대해 두 가지 이해 못할 부분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왜 산신과 칠성과 나반존자를 함께 모셔 놓았냐는 것이고, 또 하나는 어째서 산신이나 칠성이 성현이냐는 것이다.
먼저 산신 칠성 나반존자를 같은 선상에 두고 모시는 것에 대해 몹시 의아스럽다. 산신은 어떤 존재이고 칠성은 어떤 존재인가? 불교에는 많은 신들이 있고 이들에게도 저마다 서열이 있다. 욕계천상의 신들이 있고 색계천상의 신들이 있으며 하계 지상의 신들이 있다.
신들도 상계 중계 하계로 나누는데 신들 중에 가장 높은 상계의 신은 색계천의 제석천신이고 중계의 신은 욕계의 자재천왕이나 범천왕등이다. 하계의 신은 지상(地上) 신들로 지신(地神), 목신(木神), 도량신(道場神), 용왕(龍王), 산신(山神) 등이다. 이처럼 산신은 신들 중에서도 서열이 매우 낮은 존재에 해당된다.

칠성(七星)은 사실 불교의 신이라기보다는 도교(道敎)의 신들이다. 도교에서는 하늘에 떠있는 일월성신을 신격화시키고 이들이 인간 세상의 길흉화복을 주관한다고 믿는다. 한국불교는 화엄사상과 이를 결부시켜 불교신앙으로 발전시켰다. 칠성 불공문에 나오는 치성광여래불이나 일광변재소재보살, 월광변재식재보살은 불교의 신앙 대상들이고 북두대성이나 칠원성군, 삼태육성, 태상노군 등은 도교의 신앙 대상들이다. 칠성신앙은 이렇게 도교를 불교화시킨 신앙형태인 것이다.
그렇다면 나반존자는 어떤 존재인가? 나반존자는 그 성격이 저 산신이나 칠성과는 성격이 사뭇 다르다. 이 분은 신이 아닌 아라한(阿羅漢)이다. 나반존자가 어떤 인물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일설에는 16아라한 중 제일 빈두라 존자를 지칭한다고 하지만 경에 나오는 인물이 아니다. 내 견해로는 나반존자 예문을 근거로 할 때에 그 성격이 부처님 당시의 제자 마하가섭과 너무도 흡사하므로 가섭존자가 중국으로 건너와 숭배의 대상이 되었지 않나 싶다. 아무튼 나반존자의 유래야 어찌 되었든 나반존자가 아라한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아라한은 신들과는 그 위상에 있어 엄청난 차이가 있다.(혹자는 일체가 평등한데 무슨 차별을 짓느냐, 모두가 둘이 아니지 않느냐며 힐난을 할지 모르나) 신들은 아무리 높아도 중생이다. 생멸을 면치 못할뿐더러 번뇌를 끊지 못한 존재이다. 하늘의 제석 천신이건 범천이건 무상을 면치 못하고 괴로움을 피하지 못한다. 여기에 산신 칠성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이에 반해 아라한은 생멸을 벗어난 존재로 인간은 물론 모든 신들로부터 공양을 받고 예배를 받는다. 경전에 의하면 성인은 수다원의 과위 이상을 성취해야만 성인이라 이름 할 수 있으며 이때부터는 천상에서 제일 높은 제석천신도 예배를 한다고 기록 되어 있다. 수다원도 하물며 이렇거늘 아라한은 어떻겠는가?
부처님도 자신을 가리켜 대아라한이라 호칭했을 만큼 아라한은 위대한 존재이다. 그런데 이 같은 위치에 서 있는 나반존자를 한국불교는 하급신이며 천체신인 산신·칠성 과 나란히 모시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아래 위도 모르고 성인과 범부도 모르는 무지(無知)의 소산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 더욱 웃기는 일은 저러한 산신과 칠성에 대해 공공연히 불공이라는 용어를 쓰고 지심귀명례라는 표현을 쓴다는 사실이다.
산신불공이라니 산신이 부처인가? 지심귀명례는 목숨 바쳐 귀의한다는 의미이다. 어디 목숨 바쳐 귀의할 곳이 없어 산신 칠성에 귀의 한단 말인가? 불자가 지심귀명 할 곳은 불 법 승 삼보뿐이다. 그런데도 절에서는 산신과 칠성, 용왕 등 신들에게 오체를 투지하며 지심귀명례를 외친다. 안타까운 일은 이 같은 신앙 형태가 매우 잘 못 되었음에도 천육백년 동안 그대로 전승되어 왔다는 점이다. 바르지 못한 전통은 그게 아무리 오래 되고 관습화 되었다 해도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한국불교는 신을 중심으로 하는 다른 종교와 대치 상태에 놓여 있다. 불교는 신을 귀의시키는 종교이지 신을 숭배하는 종교가 아니다. 신의 정체를 바로 보고 부처의 위대성을 드높여도 모자라는 이때에 아직까지도 삼성각 같은 곳에 산신칠성이 성인의 대접을 받고 있다는 현실이 개탄스러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