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절을 가게 되면 건물마다 벽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가운데 대웅전 벽화를 보게 되면 가장 많이 그려져 있는 그림이 팔상도이다.
알다시피 팔상도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여덟 가지를 그린 그림으로, 도솔천에서 내려오는 도솔래의상, 어머니로부터 태어나는 비람강생상, 네 개의 문을 통해 세상을 보는 사문유관상, 왕궁을 버리고 출가를 하는 유성출가상, 도를 깨닫기 위해 고행을 하는 설산수도상, 보리수 아래에서 마군을 항복 받는 수하항마상, 도를 깨닫고 최초로 녹야원에서 설법을 하는 녹원전법상, 구시나가라에서 입멸에 드시는 쌍림열반상이 그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 바로 도를 깨닫기 위해 고행을 하는 설산 수도상 부분이다. 왜냐하면 부처님은 한 번도 설산(雪山)에 들어간 역사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부처님이 설산에 들어가 수행을 했다고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을 보면 부처님이 고행을 하는 모습 뒤에 설산이 그려져 있다. 설산이란 두말할 나위도 없이 그 유명한 히말라야산을 가리킨다. 부처님은 카필라 성을 떠나 마가다국에 있는 고행림이라는 숲속에 들어가 고행을 하셨지 히말라야산 근처에는 가신적도 없다. 무려 고행림과 히말라야산의 거리는 수백 킬로미터가 떨어져 있다. 경전에 기록도 없는 이 같은 그림이 언제 어디부터 그려져 내려왔는지 모를 일이다. 다만 추측컨대 설산이 부처님의 수행과 연결 된 이유는 부처님 전생담에 나오는 설산동자 이야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전생에 설산에서 도를 닦던 부처님이 나찰귀로 변한 제석천신의 시험을 받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사건이 부처님의 설산수도상을 만들어 냈다고 보인다.
아무튼 이와 같은 잘못 그려진 벽화의 영향으로 많은 이들이 석가는 히말라야산에들어가 수행을 했다고 착각을 하고 있다. 실제로 필자가 법회를 하면서 부처님이 어디서 고행을 하셨냐고 묻는 질문에 약 80 퍼센트나 되는 신도들이 설산이라고 대답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불자들이 이런 정도이니 일반인들의 인식은 말할 것도 없다. 외국 관광객들을 안내하는 여행 가이드들이 사찰을 소개하면서 벽화를 설명 할 때 역시 부처님이 설산에서 고행을 했다고 말하는 것을 본 일도 있다. 자칫 국제적 망신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현실은 모두 불교가 제대로 된 교육을 시키지 않은 결과이기도 하고 잘못 된 전통을 잘못인줄 모르고 그대로 방치해온 결과이기도 하다.
사실 이런 일이 아니더라도 현재 한국불교 속에는 왜곡 되고 굴절 된 신행 형태들이 판을 치고 있다. 한국불교는 부처님의 일생을 소개하는 설산수도상에 대해서조차도 긴 역사동안 한 차례도 그 옳고 그름을 되돌아 보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혹자는 무슨 저런 일이 큰일이라고 왈가불가 하느냐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은 일 하나하나가 모여 큰 일이 생기듯 저런 잘못 된 신행 형태들이 하나하나 모여 불교의 흐름이 완전히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제 부터라도 팔상도의 그림은 달리 그려야 한다. 설산수도상이 아니라 ‘고행림수도상’, 혹은 ‘**수도상’으로 그 이름을 바꾸고 그림의 형태도 그에 걸 맞는 모습으로 제대로 그려야 한다.
이는 부처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도 하려니와 부처님의 제자가 된 이로서 마땅히 바로잡아야 할 의무와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