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국가 스리랑카에 갔을 때에 본 일이다.
동남아 불교국가 대부분이 그러하듯 국민들의 많은 교육이 사찰에서 이루어진다.
스리랑카도 예외는 아니다. 점심때가 지나 가까운 사찰을 방문하였는데 그 날도 스님들로부터 교육을 받고 많은 사람들이 강당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그들의 손에 들려 있는 책 한권이 눈에 띠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출가 스님들이 지켜야할 계율서인 율장이었다. 의아스러운 생각이 들어 그 중 한 신도에게 당신은 출가한 스님이 아닌데 왜 율장을 손에 들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신도의 대답이 ‘스님들이 어떤 존재인지 잘 알기 위해서이다. 스님은 우리의 귀의 대상이다. 율장에는 스님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자세히 적혀있다. 율장을 공부함으로 인해 우리는 스님을 잘 모실 수 있게 된다’고 하였다.
이 같은 대답을 듣고 나는 우리나라 불교 현실을 떠올리게 되었다. 과거에 불교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전 스님들이 지켜야 할 계율들이 적혀 있는 책 한 권을 손에 넣은 적이 있었을 때의 일이다.
그 때에 책을 읽기 위해 책을 펼치는 순간 표지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써져 있었다.
“이 책은 스님들만 보는 책이니 신도들은 읽지 마시오.”
참으로 대조적이었다. 똑같이 부처님을 믿으면서도 외국의 불교와 우리나라 불교 간에 스님들을 이해하는 시각차가 이렇게 다른 것이다.
남방 스님들은 계율을 생명으로 삼는다. 스님이 스님일 수 있는 것은 단순히 머리를 깎고 독신 생활만을 하기 때문이 아니라 철저히 율장에 근거한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율장에 근거해서 생활하는 존재가 스님이라는 사실을 신도들 또한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신도들은 스님들을 공경하고 스님들이 계율을 깨뜨리지 않도록 방지 해주는 역할을 해준다.
남방에서는 여성 신도가 스님과 동행을 하거나 영화 구경을 시켜주거나 주례를 부탁하거나 사주 관상을 봐달라고 하지 않는다. 즉 스님들만이 계율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신도들 역시 스님들이 계율에 위배 되는 행을 하지 않도록 행동을 한다.
스님은 계율이 생명이다. 아무리 머리를 깎고 가사를 걸쳤어도 계를 깨뜨린다면 그는 속인이지 스님은 아닌 것이다.
불교가 바로 서려면 스님들이 바로 서야 한다. 스님이 바로 서려면 스님들의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바로 스님을 공양하는 신도들의 스님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어야한다. 그러려면 신도들 또한 스님들의 행동 지침서인 율장을 공부해야 한다.
승보를 승보답게 모시려면 반드시 신도들도 율장을 읽어 보아야만 된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