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방문객들에겐 암묵적인 합의가 있다. 여러 유적지 중에 마지막으로 앙코르 와트를 찾는다. 맛있는 부위는 아껴두었다가 나중에 먹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까. 규모의 장엄함, 건축물과 벽화의 빼어난 예술성, 복원의 완전성, 현재에도 법회가 열리는 살아 있는 사원이다. 그래서 우리는 곧잘 앙코르 유적군 전체를 ‘앙코르 와트’라고 잘못 말하기도 한다. 앙코르 와트는 수백 개 사원 중 하나의 명칭이다.

앙코르 와트는 12세기 초반(1113~1150) 수리야바르만 2세 때 건축되었다. 단일 건축물로서는 건축학적, 미학적 가치와 종교적 상징성이 세계 최고 걸작이다. 노틀담 사원과 비슷한 시기에 건축되었고 높이도 비슷하다. 미학적으로는 인도의 타지마할과 서로 자리를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석조 건축물로 만들어진 우주의 축소판으로 지상에 구현한 우주의 모형이다. 사원 중심에 솟은 중앙탑을 중심으로 4개의 탑이 배치되어 있다. 중앙탑은 우주의 중심인 메루산(수미산)을 상징하며 나머지 탑은 메루산 주변의 큰 봉우리를 나타낸다.

성벽은 세상의 끝을 둘러싼 산맥을 뜻하고 이를 둘러싼 해자는 우주의 바다를 상징한다. 탑의 모양은 남방지역에 자생하는 뾰족한 연꽃 봉오리 모습이다. 동서 1,500m, 남북 1,300m 부지에 폭 250미터의 해자를 파고 성벽을 쌓은 후 내부에 사원을 지었다.

전체 부지가 약 60만 평이다. 사원 자체가 거대하여 내부를 돌아다니면 건물에 들어온 느낌이라기보다 작은 도시에 들어선 느낌이다. ‘앙코르 와트’는 도시 사원이란 뜻이다. 앙코르 와트의 시민이 되어 천천히, 여러 번 방문하는 것이 좋다.

우주를 이해하고 천상계, 인간계, 미물계를 상징화한다는 것은 대단한 지적 능력이다. 앙코르 와트는 그런 고등정신기능을 가시적 물체로 정글 위에 구현했다. 인간과 우주를 기하학적으로 도식화한 만다라를 입체적 건축물로 창조한 것이 앙코르 와트다.

매일 2만5천 명이 동원되어 37년이나 걸려서 이룩한 위업이다. 그것을 보려고 사람들은 겁 없이 그 속으로 파고든다. 수리야바르만은 ‘태양이 보호하는 왕’이란 뜻이다. 그는 집권기 내내 앙코르 와트 건설에 매달렸다. 우주, 천체, 신화, 전설, 역사, 종교, 여인 그리고 인류의 미래까지 깡그리 여기에 담고자 했다.

앙코르 와트는 그의 힌두친화적인 종교관을 드러내는 앙코르 시대 가장 신비한 걸작이다. 수만 명의 인부들은 뜨거운 태양 아래 혹사당했지만 그의 불호령 앞에는 맥을 추지 못했다. 그러나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다. 앙코르 제국의 패망은 앙코르 와트의 건설과 관련이 있다. 국력의 쇠잔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천 년이 지난 제국의 후손들은 지금 이곳을 중심으로 열심히 일하며 먹고 산다. 멀리서 온 방문객들은 입장료를 아까와 하지 않는다. <소설가 이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