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과 도시는 물과 밀접하다. 인류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다. 앙코르제국이 씨엠리업 지역에 터를 잡은 것은 똔레삽 호수가 있기 때문이다. 똔레삽은 씨엠리업 도심에서 남서쪽으로 15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 있다. 전지 크기로 된 4천만분의 1 세계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을만큼 동양 최대의 담수호다. ‘똔레’가 이 나라 말로 호수라는 뜻이니 ‘삽 호수’쯤 되겠다. 우리에겐 ‘똔레삽 호수’라는 말이 익숙해져버려서 이상한 꼴이 되어버렸다.

똔레삽은 사람과 물류 수송의 중요 통로다. 쾌속선을 타면 프놈펜까지 5시간 걸린다. 대형 화물선은 이틀 걸린다. 앙코르제국 건설과 유지에 필요한 물자들이 이 호수를 통해 조달되었다. 앙코르제국의 번성기에는 100만 명이 살았다니 똔레삽은 제국의 대동맥이요 혈액이었을 것이다. 홍수 조절기능과 어업과 농업의 보물창고다. 지금도 캄보디아 인구의 절반인 약 450만 명이 이 호수에 매달려 산다.

보트를 타고 수로를 따라 똔레삽의 가슴으로 나아가는 길목에는 수상가옥이 즐비하다. 가히 수상 도시라 할만하다. 수생식물이 이룬 수상 숲과 물, 수상 가옥과 배들이 연출해내는 풍경화가 일품이다. 물 위에 사는 이곳에도 있을 것은 다 있다. 학교, 경찰서, 공연장, 교회까지 있다.

수상가옥의 모습은 다양하다. 좁은 난간에 화단을 조성해 놓은 집, 지붕에 TV 안테나가 있는 집, 우리를 만들어 돼지를 키우는 집도 있다. 사공 소년은 불어식 영어 발음으로 부지런히 설명을 해대지만 요란한 발동기 소리와 피차 익숙하지 않은 언어인지라 드문드문 알아들을 뿐이다.

배는 똔레삽의 가슴팎을 향해 나아간다. 허리까지 물에 잠긴 물속 숲을 보며 바다 같은 호수 가운데로 간다. 일몰을 보려는 배들이 집어등 켤 시간을 기다리는 오징어잡이 배처럼 군데군데 떠서 일렁거린다. 이곳의 일몰 역시 장관이다. 베트남 난민들의 수상마을을 배경으로, 수평선 아래로 잠기는 불덩이는 잠시 감격을 선사한다.

태양이 서서히 수평선을 향해 다가간다. 소년 선장도 수평선 쪽을 바라본다. 매일 반복되는 자연현상이지만 낯선 이역의 호수에서 맞는 일몰은 뭉클하도록 장엄하다. 태양이 알몸으로 함지로 들어갔다. 내일 또다시 맑게 씻은 알몸으로 솟아오를 것이다.

주변이 금방 어둑어둑, 컴컴해진다. 선장 소년은 시동을 건다. 다시 뭍을 향해 다가간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서야 할 것이다. (*)

이우상<소설가 asdfsa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