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 무렵부터 관광객들이 슬슬 몰려든다. 눈치 빠른 배낭 여행족은 일치감치 산을 오른다. 다섯 시 무렵이면 대형 버스, 택시, 오토바이, 마차 등으로 북새통을 이룬다. 새벽 번개시장처럼 단시간에 반짝 붐비는 곳이 프놈바켕이다. 이곳은 일몰이 장관이라 그걸 보러 시간 맞춰 몰려든다.

앙코르 유적은 대부분 평지에 있다. 프놈바켕은 산 위에 있다. 프놈은 산이란 뜻이니 바켕산이란 말이다. 프놈펜, 프놈끄롬, 프놈복 등도 산 이름이다. 프놈바켕을 산이라고 부르기엔 낯간지럽지만 평평한 밀림에서 지상 67미터에 불과한 언덕도 산이다. 그곳에 오르면 앙코르 유적군 일대를 사방으로 조망할 수 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프놈바켕은 앙코르 지역의 중심지로 상징성이 크다. 앙코르 사람들은 집요하게 상징에 매달렸던 위인들이다. 상징은 고등정신기능이다. 앙코르제국의 본격적인 중심잡기는 인드라바르만의 계승자 야소바르만 1세에 의해 이루어졌다. 초ㆍ중기 앙코르 왕조는 완전한 중앙집권체제를 갖추지 못했다. 비교적 강성한 지방세력이 왕조의 대표주자가 된다. 야소바르만 1세는 지방 호족 출신으로 여러 차례 이민족 정벌 원정에서 전과를 올린 후 중앙정치무대에 진출하여 권력을 장악했다.

서기 899년 야소바르만 1세가 즉위한 뒤, ‘야소하프라라’라는 도시를 롤루우스 북쪽 프놈바켕 지역에 도읍을 건설하고 바켕산 위에 사원을 건설했다. 앙코르 와트 북쪽 1,300미터, 앙코르 톰 남쪽 400미터 지점 언덕 위에 위치해 있다. 이 신도시가 지금의 앙코르 지역이기 때문에 이것이 처음 지어진 앙코르 유적이다. 제왕들이 다투어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거대 사원을 축조하기 시작하는 출발점이다. 민중들은 본격적으로 노역에 시달리기 시작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야소바르만 1세는 이곳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상징성을 부여하고 왕권을 강화해나갔다. 그는 용맹스런 장수 출신이다. 단칼에 청동블럭을 세 동강 냈다고 한다.

야소바르만 1세는, 도읍의 사방에 4킬로미터의 성벽을 쌓고 주변국을 평정해나갔다. 그의 업적을 기리는 비문이 캄보디아 남부, 라오스와 태국의 서부 지역 등에서 발견되어 그의 치세가 융성했음을 알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은 그를 앙코르제국의 건국자로 규정하기도 하나 제국의 기반을 견고하게 구축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의 사후에 앙코르제국은 부족장들 간에 분란이 50여년 간 계속되다가 그의 후손이 아닌 다른 부족장의 후예인 라젠드바르만에 의해 통합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프놈바켕 건축물은 세월의 풍화가 심하다. 정교한 조각물도 날카로움을 잃어간다. 앙코르 유적 중 상층부에 5개의 신전을 지은 것은 이곳이 최초다. 이러한 설계는 이후 다른 건축물에 많이 적용되었다. 기단, 중간 5개층, 최상에 5개의 탑이 배치된 정사각형-만다라 구도다.

이곳의 일몰이 멋지다는 사전 정보를 지니고 사람들이 헉헉거리며 언덕을 오른다. 사람이 붐비면 저마다 괜히 바빠진다. 지금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라 여기는지 들뜨고 간절한 분위기다. 지평선 너머로 떨어지는 태양이 뭐 그리 희귀하고 대수이겠는가만 스스로 장엄함을 가슴에 담고 싶은 소망이 있다.

산정에 오르니 평지에 사원이 우뚝하다. 기단부의 가로, 세로가 각각76미터, 높이 13미터, 만만찮은 규모다. 기단의 4면에는 경사 70도의 가파른 계단이 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올라가야 하다. 아예 네 발로 기어오르는 것이 안전하다. 앙코르 유적들은 인간 중심의 구조물이 아님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중앙탑을 중심으로 서쪽을 향해 자리를 잡는다. 낙조를 감상하기 좋은 자리를 잡고는 담소를 나누고 사색에 잠긴다. 불어, 영어 못지않게 한국어도 부산하게 들려온다. 멀리 시야에 들어오는 앙코르 와트의 5개 탑이 부옇게 나타난 신기루 같다. 서쪽 아득한 곳에 광활한 인공호수 ‘서 바라이’가 오아시스처럼 보인다. 그 위에 황금 쟁반 같은 태양이 느린 속도로 지평선을 향해 침강하고 있다.

일몰이 절정에 이르자 주위가 조용하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제국의 영화를 생각하고, 제국의 몰락을 생각한다. 그리고 각자 살아온 날들, 살아갈 날들을 사색한다.

참 멀리까지 온 사람들이다. 특히 프랑스 사람들은 지구 반바퀴를 날아왔다. 그들의 조상인 앙리 무오가 발견하고 힘센 그들의 조상이 식민지로 삼았던 이곳에서 무슨 상념에 잠길까. 막대한 경제 지원을 퍼붓고 있는 일본, 덕분에 죽은 앙코르가 하나 둘 생명을 찾아 벌떡벌떡 일어서는 것을 보고 일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황색인인 나는 천년 동안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는 탑 사이로 지는 장엄한 열대 태양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17시 55분. 태양이 함지로 쏙 들어가버린다. 일몰이 완료되자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함성을 지른다. 장엄함에 대한 경탄과 감사다. 단체 관광객인 듯한 한 무리의 서양인들이 그들 노래를 합창한다. 감격에 겨워 터진 오열 같은 노래다. (*)

<이우상-소설가 asdfsa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