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앙코르 유적 중 충격적 장면을 보여주는 곳이 따 쁘롬이다. 거대한 나무들이 연체동물처럼 사원을 휘감아, 쥐어짜고 있다. 왕조가 망해서 사람들이 사원을 버리고 사라질 무렵에 작은 풀포기에 불과했던 나무들이 이렇게 자랐다. 우람한 석조 건물이 나무줄기에 휘감겨 숨을 헐떡이고 있다. 승천하는 용처럼 사원의 담장을 밟고 있다. 나뭇가지를 쳐내고 사원의 모습을 복원할 엄두를 못내고 있다.
“고고학자들의 노력과 일반 관광객의 기대는 사뭇 상충된다. 관광객들은 좋은 그림만 원한다. 20세기에 살고 있는 그들은 온갖 문명의 이기를 동원하여 편안하고 한가하게 앙코르까지 여행 와서, 1860년 앙리무오가 느꼈을 감탄과 경이로움을 체험코자 한다. 그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낭만적인 풍경, 거대한 나무뿌리가 유적을 반쯤 삼키고 있는 폐허다.”
완전 해체 복원을 주장했던 고고학자 모리스 글레즈의 연설문 중 일부다. 그래서, 신비를 찾아온 관광객의 취향과 앙코르의 본 모습을 재현하고자 하는 학자들의 의지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절묘한 절충안을 도출해냈다.

대부분의 유적들을 과학적 방식에 따라 복원작업을 하되, 폐허와 나무뿌리가 뒤엉켜 신비하고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몇몇 사원은 복원을 포기하고 그냥 두기로 했다. 정글과 유적이 발견 당시의 모습으로 존재한다. 따 쁘롬사원이 그 중 하나다.
따 쁘롬 입구에 들어서면 <인디아나 존스>의 존스박사가 된 기분이 든다. 높이 3~40𝑚나 되는 거대한 벵골보리수(이 나라말로는 스펑)들이 문어처럼 사원을 휘감고 있다. 무너진 잔해 사이로 엉금엉금 기어 사원 안으로 들어간다. 금방이라도 저편 구석에서 칼을 빼든 12세기 앙코르 무사가 튀어나올 것 같다. ‘웬 놈인데 함부로 들어왔는냐?’고 고함치면서 말이다. 무너진 담벼락 너머에서 호랑이가 훌쩍 뛰어 넘어 올 것 같다. 폐허 속에 갇혀 미아가 되는 것이 아닐까, 두렵다. 그러나 눈은 즐겁다. 아무렇게 셔터를 눌러도 명품 사진이 나온다.
따 쁘롬은 ‘브라흐마의 조상’이란 뜻이다. 12세기 중반~13세기 초 앙코르제국의 최대군주인 자야바르만 7세가 그의 어머니를 위해 세운 사원이다. 아버지를 위해서는 또 다른 곳에 쁘리아 칸이란 사원을 세웠다. 사원 전체에 벵골보리수, 무화과나무, 판야나무가 일제히 사원을 습격하여 점령했다. 신발끈 단단히 조이고 구석구석 헤치고 다니면 탐험가가 된 착각을 누린다.
제국 전성기에는 7만9,365명이 사원을 관리했고 18명의 고승, 2,740명의 관리, 2,202명의 인부들, 615명의 무희들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따 쁘롬을 점령한 나무들의 반란과 폐허의 현장은 인간의 오만과 자연의 힘에 대해 사색하기에 좋다.
앙코르는 철저한 인공도시, 계획도시다. 자연과의 조화에 대해서는 안중에 없다. 앙코르제국은 씨엡리업을 중심으로 반경 64킬로미터에 수도를 세웠다. 불도저도 굴착기도 없던 시절에 밀림을 뭉개고 거대한 왕궁과 사원을 지었다. 절대권력 앞에 밀림은 사정없이 뭉개졌다. 권력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에는 인간의 재주가 찬란하게 빛났지만 권력이 무너지고 인간이 도망쳐 버리니 풀과 나무가 다시 돌아왔다.

딱딱한 돌 틈에 뿌리를 내린 어린 싹들이 수백 년 지난 지금 거목이 되어 인간이 꾸민 영화를 짓뭉개듯이 휘감고 있다. 그것을 생생히 보여주려고 복원을 하지 않는다. 따 쁘롬의 나무 중 대표선수가 있다. 관광객들이 다투어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광각렌즈가 아니면 나무 전체를 사진에 담을 수 없다. 그래서 전문가 흉내를 내며 바닥에 누워 겨우 전신을 렌즈에 담았다.
따 쁘롬의 신비 속에 사색에 젖기에는 나를 포함한 관광객이 너무 많다. 으스스한 적막을 누리려면 인적 드문 시간대를 택해야 한다. 이른 아침이나 점심시간이 좋다. 석양과 사원이 어우러지는 풍경을 기대한다면 저녁 어스름녘도 좋다. 이땐 동행이 없으면 무섭다. 그러나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서문에서 동문까지 일직선이다.

동문으로 나가는 숲길에 악사들이 앉아 있다. 여섯 명의 중년 사내들이 악단을 이루어 합주를 한다. 실로폰처럼 생긴 것, 해금처럼 생긴 것 등 그들 전통악기로 연주를 한다. 한국 관광객이 다가오면 재빨리 아리랑을 연주한다. 뜨거운 이국땅에서 듣는 아리랑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악단 구성원들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다. 그들은 모두 장애인이다. 다리가 잘리고 눈이 파이고 팔 하나가 없다. 까마득한 12세기를 어슬렁거리다가 갑자기 21세기에 떨어진 느낌이다. 어느 편이었든, 그들은 내전의 희생자들이다. 아직도 수천만 개가 묻혀 있는 지뢰의 피해자들이다.

앙코르의 조상들은 거대한 유적을 남겼지만 20세기를 산 후손들은 전쟁과 학살을 남겼다. 200만인지 300만인지 통계도 부정확한 사망자와 수십만 명의 장애인을 남겼다. 하늘을 찌르는 창창한 열대 수목과 늙고 낡은 전쟁 피해자가 공존하는 곳이 앙코르다.
<이우상<span style="font-family: 바탕">∙소설가 /asdfsa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