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놀라운 상태를 불가사의(不可思議)라 한다. 《화엄경》에 이르기를 ‘부처의 지혜는 허공처럼 끝이 없이 그 법(法)인 몸은 불가사의하다’라고 했다. 불가사의 라는 말의 어원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앙코르 와트로 대표되는 앙코르 유적에 대해 호사가들은 ‘세계7대 불가사의’라고 규정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정글에 그린 만다라, 지상에 구현한 화엄세계를 보면서 그런 말놀음에 동조하지 않을 수 없다.
서구적 잣대로 쓰여진 교과서와 참고서에는 앙코르에 대한 언급이 미미하다. 그래서 동양문화에 대한 열등성을 황색인의 숙명으로 여기며 자랐다. 그것을 부정하는 명백한 증거가 앙코르다. 비록 지금은 빈곤과 남루가 캄보디아에 자욱하지만 거대한 만다라를 구현한 앙코르제국의 역사와 유적이 시퍼렇게 살아있다.
까무잡잡한 캄보디아 사람들, 황색인의 외양뿐만 아니라 식민지였다는 역사적 운명, 불국토를 향한 염원 등 우리와 참 많이 닮았다. 앙코르에 다가가게 하는 힘은 사랑과 연민이다. 자비와 하심이다. 그 힘에 이끌려 수년 동안 틈만 나면 앙코르에 파고들었다. 2003년부터 10여 차례 방문했다. 직항로가 개설되기 이전에는 방콕에서 12시간 동안 트럭에 실려 가기도 했다. 그래도 여전히 그곳은 가슴이 뛰고 불가사의하다.
그곳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장엄한 문명의 실체, 상징의 경이로움, 오만이 아닌 우울, 황홀보다는 아픔을 보았다. 앞으로도 시간과 자금을 알뜰히 축적해두었다가 앙코르의 문을 두드리려고 한다. 앙코르의 껍질과 속내를 바라보고 쓰다듬고 무수히 숨겨진 상징과 암호를 해독하고 싶다. 그래서 숙연한 감동까지 내편으로 만들고 싶다. 끝내 불법의 불가사의를 해독할 수 없음을 알지만 소걸음으로 다가가 깨달음의 끝단이라도 잡고 싶다.
앙코르 방문객 수 1위가 한국인이다. 연간 30만 명을 넘었다. 그 중 성지순례에 의미를 둔 불자가 상당수이다. 직항 비행기로 6시간이면 별천지 같은 불가사의를 목격할 수 있으니 접근성이 좋다. 캄보디아는 전국민(약1,200만명)의 95%가 불교도(소승불교)이다. 베트남전쟁, 내전 등 30여 년 동안 전란을 겪었지만 그들의 표정은 온화하다. 크메르루주, 킬링필드가 그들의 대명사가 아니다. 세계 여러 나라를 빨치산 전사처럼 다녀보았지만 앙코르 사람들이 가장 좋다. 가장 정겹다. 그들 조상이 일군 앙코르문명의 풍광이 이웃집 잔치처럼 환희심으로 다가온다.
앙코르제국의 역사를 한국사에 대비시키면 대략 통일신라 말에서 조선초까지다. 왕권과 문화가 흐지부지했던 초기와 말기를 빼면 한반도의 고려시대 역사와 같다. 앙코르제국이 장엄한 앙코르 유적을 남겼다면 고려가 남긴 것은 찬란한 불교문화의 정수 팔만대장경이 아닐까. 모두 섬세하고 치열한 장인들의 유물이다.
앙코르의 신비를 배가시키는 것은 500년 동안 잊혀지고 묻혔다가 어느 날 갑자기 발견된 점이다. 13~14세기 왕조의 몰락과 함께 수도를 프놈펜으로 옮겼다. 불가사의한 앙코르는 밀림 속에 묻힌다. 감당 못하게 자란 정글의 수목들이 거대한 문어처럼 혹은 외계에서 내려온 파충류처럼 앙코르를 휘감고 비틀고 누른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폐허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제국의 후예들조차 그곳을 가리켜 ‘유령이 돌아다니는 저주가 내린 곳’이라고 두려워했다. 500여 년 동안 밀림에 묻혀 잊혀진 역사였다. 세상에 다시 알려진 것은 프랑스의 박물학자이자 탐험가인 ‘앙리 무오’에 의해서이다. 1860년 때 일이다.
우리는 곧잘 앙코르 유적군 전체를 앙코르 와트라고 부른다. 정확하게 말하면 앙코르 와트는 단일 사원의 이름이다. 복원상태, 건축미학, 벽화 부조, 구현된 상징물 등이 가장 우수한 사원이다. 앙코르 유적들은 광범위하게 산재되어 있다. 앙코르 중심부, 동부 앙코르, 동 바라이 지역, 북부 앙코르, 서 바라이 지역, 룰루오스 지역, 북동부 앙코르 등이다. 대부분 접근성이 좋다. 이집트 유적처럼 가는 곳마다 입장료를 받지도 않는다. 전체 입장권을 끊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되도록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 답사하길 권한다. 주마간산에 익숙한 습관을 버리고, 쫓기듯이 화다닥 둘러보는 한국식 전통을 버리자. 이제는 소걸음으로, 코끼리 걸음으로 여행할 때도 되었다. 생각하면서 걷기, 걸으며 생각하기, 보고 또 보고, 이럴 때도 되었다.
깨달음에 이르고자 하는 불법에는 국경이 없다. 불교 정신을 형상화하고자 하는 뜻이 앙코르 돌덩이 곳곳에 스며 있다. 무가치한 여행은 없다. 문 밖을 나서면 산천초목, 우수마발(牛溲馬勃)이 죄다 스승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랑을 꾸린다. 길을 나설 여건이 못 되면 꿈을 꾼다. 그곳에 다가가길 염원하며 생각의 끝을 벼린다. 다가가길 원하는 곳의 끝은 어디일까? 지구를 몇 바퀴 돌아, 하늘까지 닿길 원하는 염원의 끝은 우주가 아닐까. 앙코르는 현실과 관념이 일궈낸 추상이자 현실의 우주다. 불교에서는 그것을 만다라라는 그럴듯한 그림으로 구체화시켜 제시한다.
내 안에 부처가 있다. 우주 역시 내 속에 있다. 잊고 있고,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미혹하고 하찮은 존재가 인간이라는 허무주의에 빠질 일이 아니다. 단출한 바랑을 메고 길을 나서면 훌륭한 스승을 만나고 반가운 도반을 만난다. 땀 흘리고 목마른 것이 여행이지만 자신의 존재가 하찮은 것이 아니라고 깨닫는 것이 여행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