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12연기설(緣起說)은 무명으로부터 시작하여 늙음과 죽음이 있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무명은 어디에서 생겨나는 건가요?

<답> 불교의 모든 교리는 부처님이 깨달으신 연기설을 근저로 하여 성립되었습니다. 12연기설(緣起說)은 우리들의 생존이 12가지 조건에 의하여 성립되는 과정을 설명한 것입니다.

모든 사물(事物)과 현상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면서 존재하고 있다는 상호의존관계를 설명한 불교의 근본교리이지요. 이 세상 어떠한 존재도 다른 사물이나 사상과 연관관계가 없이, 그 자체만으로 홀로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뜻입니다.

연기설을 우리 인간의 나고 죽음에 비유하여 설한 십이연기의 첫 번째가 바로 무명(無明)입니다. 이때의 무명은 진리에 대한 무지(無知)로 인하여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어리석음입니다. 동시에 갈애(渴愛)와는 표리의 관계이기도 하지요.

이 근본적인 무지인 무명으로 말미암아 그 다음의 잠재적 형성력인 행(行)이 생기고, 다시 행으로 말미암아 식(識, 식별작용)…명색(名色, 이름과 형태)…육입(六入, 여섯 가지 감각기관)…촉(觸, 느낌)…수(受, 감수작용)…애(愛, 맹목적인 망집)…취(取, 집착)…유(有, 존재)…생(生, 태어남)…결국 노사(老死, 늙어 죽는 무상한 모습)가 있게 됩니다. 이때 앞의 것은 뒤의 것을 성립시키는 조건이 되므로, 앞의 것이 없어지면 차례로 뒤의 것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노사의 극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무명의 척결이 요구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십이연기의 시작인 무명은 왜 생기는 것일까요? 이런 의문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할 것일 겁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무명에는 그 어떠한 원인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무명은 어둠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 한번 생각해 볼까요. 어둠 그 자체에 어떤 원인이 있습니까? 어둠은 단지 빛이 결여된 상태를 가리킬 뿐입니다. 즉 빛만 나타나게 되면 그 순간 어둠은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어둠에는 어떤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빛이 없는 상태일 뿐입니다. 따라서 지혜만 있다면 무명은 자연히 사라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혜가 없으니까 무명이 있고, 그 무명은 바로 지혜가 결여된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혜를 닦기 위하여 수행 정진하는 당위성도 바로 이런 것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지혜만 생기면 무명은 저절로 없어지고, 또한 무명 때문에 행이 생겼으니 그 무명이 없어지면 행도 없고, 이어서 식…명색…육입…촉…수…애…취…유…생…노사라는 고(苦)도 결국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