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유루와 무루는 유위ㆍ무위와 어떻게 다른지, 다르다면 어떠한 뜻을 지니고 있는 용어인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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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 유무(有無)라는 단어가 들어가니 아마도 비슷한 내용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 쉬운데,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먼저 유루(有漏)와 무루(無漏)의 ‘루’는 번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 밖에도 번뇌를 지칭하는 용어로는 여러 가지가 있다. 혹(惑)ㆍ결(結)ㆍ전(纏)ㆍ폭류(暴流)ㆍ취(取)ㆍ계(繫)ㆍ사(使)ㆍ개(蓋)ㆍ구(垢) 등, 이 모두가 번뇌에 해당하는 용어이지요. 그리고 이 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습니다.
이와 같이 ‘루’가 번뇌이니 유루는 번뇌가 있다는 말이며, 이것을 다른 말로는 유염(有染)ㆍ유쟁(有諍)이라고도 합니다. 이때 염이나 쟁도 번뇌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또한 유루는 잘못된 견해를 만드는 근원이 되기 때문에 일명 견처(見處)라고도 합니다.
우리가 번뇌를 일으키고 키워나가는 것을 유루법이라 하고, 그와 반대의 개념을 무루법이라고 합니다. 부연하면 사성제(四聖諦) 가운데서 미혹의 결과[苦諦]와 원인[集諦]에 해당하는 제법은 유루법이고, 깨달음의 결과[滅諦]나 그 원인[道諦]에 해당하는 제법은 무루법이지요.
세속법을 대상으로 하여 일어나는 모든 범부의 지혜를 유루지(有漏智)라고 하는 반면에, 사성제의 도리를 증득하여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無學道] 성자의 지혜를 무루지(無漏智)라고 합니다.
그뿐 아니라 이것을 선악의 개념으로도 설명하고 있는데, 즉 유루의 선과 유루의 악 그리고 무루의 선과 무루의 악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때에 유루의 선이란, 바로 우리가 보통 일상에서 행하는 선행으로 ‘나는 지금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의식이 있는 선행을 말합니다.
반면에 무루의 선이란 전혀 걸림 없는 선행을 말합니다. 이것은 선행을 행하면서도 한다는 의식이 없는 선행을 말하는 것이지요. 가령 갓난 애기가 천진하게 방실방실 웃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다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즐겁습니다. 그러나 그 어린애는 자신이 좋은 일을 했다는 의식이 전혀 없습니다. 바로 그것이 무루의 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유루의 악은 어떤 것일까요. 말하자면 의식적으로 악을 행하는 것이니까 세간에서 말하는 일체 모든 악행이 바로 이것인 셈입니다. 이것은 최저에 해당하는 악행입니다.
마지막으로 무루의 악이란, 예를 들면 얼굴이 갑자기 따가워서 아무 생각 없이 손으로 볼을 탁 때렸는데 그만 모기가 맞아 죽었습니다. 이런 경우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렇게 미루어 볼 때 자신을 내세우고자 하는 생각이 없이 행해지는 행위일 때만이 무루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