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모두 버려야 하거늘 저승 갈 때 갖고 갈 것이 있나요? 친정은 불교 집안인데 저는 종교를 가지지 않은 남편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어느 날 시어머님께 조심스럽게 절에 같이 가시자고 권해 보았습니다. 그러자 시어머님께서는 당신이 가진 것조차도 다 버리고 가야 하는데 무얼 더 이상 가질 필요가 있느냐고 하시며 완곡하게 거절하셨습니다. 혼자 절에 가면서 자신에게 반문해 보았습니다. 나는 저승 갈 때 과연 무엇을 가지고 갈 수 있을까? 라고요.

<답> 누구나 죽을 때 가지고 가는 것은 업입니다.

보살님의 의문을 살펴보면서 내 마음에 적합한 환경을 구하지 않고, 오히려 내 마음을 환경에 맞추고자 노력하는 마음 자세가 참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비록 종교는 믿지 않으시지만 시어머님의 성품 또한 남달리 초연하신 분 같군요. 그러나 좋든 싫든 임종을 맞이했을 때 가지고 가는 것이 있음을 모른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잡아함경(雜阿含經)󰡕에 나오는 비유 한 편 볼까요.

옛날 네 명의 아내와 함께 살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첫째 부인을 각별히 사랑했는데, 그녀와는 침식을 늘 함께하고 단 한 번도 말다툼을 한 일이 없었다. 그리고 둘째 부인도 깨어 있을 때에는 잠시도 곁을 떠날 수 없을 만큼 아꼈다. 그러나 셋째 부인은 이따금씩 생각날 때마다 찾아가는 사이였고, 마지막 넷째 부인은 늘 남편의 시중을 들며 열심히 일을 하였지만 남편으로부터는 조금도 사랑받지 못했다.

어느 날 남편은 먼 길을 떠나게 되어서 첫째 부인에게 동행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매몰차게 거절하였다. 둘째 부인은 당신이 제일 사랑한 첫째 부인도 마다하는 길을 왜 내가 따라가야 하느냐고 반문하면서 역시 뿌리쳤다. 그는 할 수 없이 셋째 부인을 찾아가서 부탁을 하였다. 한평생 신세를 진 몸이니 마을 어귀까지만 이라도 전송을 하겠단다. 그래서 그는 정말 면목 없는 얼굴로 넷째 부인에게 어렵게 운을 뗀다. “어디든지 당신이 가는 곳이라면 따라가 드려야지요” 하며 쾌히 승낙하였다.

자, 여기서 ‘먼 길’이란 과연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그것만 알게 되면 의문은 쉽게 풀릴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먼 길이란 바로 ‘죽음’의 길을 뜻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첫째 부인이란 우리들이 가장 아끼는 자신의 육신을 말합니다. 단 한 번만이라도 육신의 소원을 거절한 적이 있나요? 그런데도 육신은 결코 마지막 길을 동반해 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둘째 부인은 돈, 재신, 명예를 가리킵니다. 이것들 역시 항상 아끼고 소중히 하였지만 매정하기는 마찬가지지요. 우리가 이것들을 위해 온갖 짓을 다하면서 살아온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허무함을 느낄 뿐입니다.

셋째 부인은 일가친척과 친구들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죽으면 그들은 장례식에 참석하고 화장터까지는 배웅해 주지요. 그러나 그것으로 그만입니다.

마지막 넷째 부인의 역할은 과연 무엇일까요. 바로 ‘업(業)’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같이 행하는 착한 행위(선행)와 나쁜 행위(악업)를 말합니다. 결국 평소에 자신이 만든 업만은 우리들의 죽음의 길까지 따라간다는 의미이지요.

그런데도 우리는 언제나 업에 대한 인식을 소홀히 하고 첫째 부인과 둘째 부인에 해당하는 것만을 아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마지막 길에 무엇을 얼마나 가지고 갈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행위에 달렸다는 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