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남도 평원군 신성리
고구려초기 창건, 17세기 중건
법흥사는 평안남도 평원군 신성리의 강룡산 기슭에 있는 사찰이다. 일제시대 31교구본산 중 하나로 평양의 영명사와 함께 평안남도 지역을 대표하는 거찰이었다. 법흥사는 특히 임진왜란 당시에 서산대사가 전국에 걸쳐 승병을 모집하고 이곳에서 1500여명의 승군을 조직한 호국사찰로 유명하다. 법흥사에 집결한 승군은 명나라 군대와 힘을 합쳐 평양성을 탈환하는 데 공을 세웠다고 한다.

평원군 지역은 낮은 산야 주위로 곡창지대가 형성된 곳이다. 법흥사가 자리한 강룡산은 해발 445미터의 그리 높지 않은 산으로 법홍산이라고도 부른다. 법흥이라는 승려가 이 절을 지어 법흥사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있다. 법흥사는 고구려 시기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나 그 창건 연대는 분명치 않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인용한 김부식의 글에 법흥사는 터만 남은 절로 묘사되어 한동안 폐사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법흥사는 폐사되었다가 1123~1125년 사이에 크게 중축되었고, 다시 1759년에 중건되었던 것이다.
법흥사가 다시 중수된 것은 묘청의 난 때문이라고 한다. 평양을 근거지로 일어난 묘청의 난을 진압하면서 법흥사 터 주변에서 많은 군사들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고려 인종은 전사한 군사들의 혼백을 위로하라며 이 절을 중건하도록 했고, 징오(澄悟)라는 승려가 김부식, 정습명의 후원을 받아 원래의 절터에서 북쪽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 새로 크게 지었다고 한다. 인종은 1125년에 법흥사가 낙성되자 글과 향문을 보내 낙성 잔치를 열도록 했다고 한다.

법흥사에는 현재 극락전, 삼화상각, 장경각, 요사채 등이 남아있다. 절 주변에는 부도와 부도비들도 있다. 법흥사 현존 건물 중에 연대가 가장 오래된 것은 장경각이며, 나머지 불전들은 조선 후기에 지은 익공식 건물들이다.
장경각은 정면3칸, 측면 1칸으로 불경을 보관하기 위해 지은 전각이다. 건물은 다포계 팔작집으로 처마는 부연을 갖춘 겹처마이다. 장경각 대들보에 기록된 상량문에 의하면 이 건물은 1401년에 지은 것이다. 건물은 그 후 여러 번 고쳐지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17세기경의 것으로 여겨진다. 극락전은 법흥사의 주불전으로 장대석 기단 위에 지어진 정면 3칸, 측면2칸의 익공계 팔작집이다. 삼화상각은 나옹 ․ 무학 ․ 지공의 진영을 봉안한 건물로 익공계 맞배집이다. 건물은 18세기 초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법흥사는 한국 전쟁 때 일부 불탔으나 전쟁 끝난 후 복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