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초에 수도권 직할사찰의 한 주지스님으로부터 한 달에 한번 군 법회를 하시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몇 차례 스님께 정기법회를 맡아 주시기를 청했지만 늘 거절하셨던 터라 참으로 반가웠지요. 그런데 나중에 안 얘기지만 조계종단의 직할사찰 주지 인사고과제도 시행에 따라 경력 쌓기가 필요하셨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님들도 세간과 다를 바가 없구나’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어찌됐던 법회를 잘하고 계시니 잘된 일이 아닙니까? 또, 그래서 종단에서도 이런 제도를 시행하는 것일 테고.
최근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스님들의 품계와 공직진출의 잣대가 되었던 수선안거 경력에 경학이나 염불 등의 수행경력도 포함시키는 것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총림에 염불원과 삼장원을 두고 거기서 수행한 이력을 선원 안거와 동일하게 인정하겠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제도도 스님들의 수도경력을 다양하게 인정하겠다는 취지일 뿐, 승려의 본분사를 평가하는 기준은 못됩니다.
수계식 장면. 이 사진의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이 없음. 사진=미디어붓다 자료사진
조계종 종헌 제9조에는 “승려는 구족계와 보살계를 수지하고 수도 또는 교화에 전력하는 출가 독신자라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승려의 공직진출이나 품계를 정하는 요건에는 수도경력만 중하지 교화경력은 따지지도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스님들이 수선안거나 할뿐, 중생제도는 늘 뒷전인 것이지요.
송구스러운 말씀이지만 한국불교가 지향하는 대승불교에서 가장 이상적인 인격이 보살이고, 또 그 서원은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이 아닙니까? 여기서 상과 하는 고저(高低)나 선후(先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수도와 교화가 똑 같이 중요하다는 뜻이라고 배웠습니다. 자기를 교화하는 것이 상구보리고, 남을 교화하는 것이 하화중생이니, 나와 남이 둘이 아님을 실천하는 불교에서 수도와 교화에 선후와 경중이 있을 리가 없겠지요.
그런데 지금 종단은 수도만을 중시하고 교화는 제쳐두고 있으니 우리 불교가 쇠퇴일로에 있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더구나 안거경력이 왜 자랑거리인지 필자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속히 화두타파하고 바랑 걸어두던가 교화를 해야지 선방에서 오래 앉아 있었다는 것은 오히려 창피한 경력이 아닙니까?
재가가 출가의 일을 입에 담는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승려의 이력을 평가할 때는 수도경력뿐만 아니라 교화경력도 살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종사, 대종사가 되려면, 또 본말사 주지나 공직에 나가려면 수선안거만이 아니라 교화경력도 평가의 잣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군, 교도소, 어린이, 청소년 포교에 임한 경력은 수도경력과 동일한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 군승이 없는 군 사찰에 상주하시면서 주지 소임을 맡아 장병을 돌보시는 몇 안 되는 비구니 스님들이 계시지만, 종단에서는 그 분들에게 주지경력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참으로 잘못된 처사입니다. 군종교구가 이런 일도 하나 챙기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군승이 없는 군 사찰이 3백 곳이 넘습니다. 이들을 돌보면서 장병들에게 부처님 말씀도 들려주고 때로는 신앙이나 인생 상담을 해줄 스님이 절실히 필요함에도 우리 불가에는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없습니다.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일념으로 인천(人天)의 스승이 되기 위해 출가하신 스님들이 기꺼이 포교현장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합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