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에 죽는다면 나는 어디로 가게 될까. 예수를 믿었더라면 천국으로 곧장 갈텐데(?), 이생에서 불교를 믿었으니 염라대왕이 지키고 서있는 곳에 가서 업경대 앞에 내 전생을 비추어 보겠지.(^^;)’

불교를 믿든, 기독교를 믿든, 아니면 돈만 내면 천국의 관직을 보장해준다는 이름도 얄궂은 신흥종교를 믿든, 죽고 난 후 사후세계는 인간의 가장 큰 호기심이자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래서 많은 영화와 소설, 만화들이 죽음 이후의 세계를 다룬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타나토노트, 센과 치히로가 행방불명, 데미무어가 도자기를 빚는 사랑과 영혼, 천사같은 글로리아 입이 아수라로 등장하는 공작왕,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공포영화 링에 이르기까지. 1991년에 헐리우드에서 제작된 영화는 ‘영혼의 사랑’(원제 Defending your life) 또한 죽음 이후의 세계를 묘사한 코믹영화이다.

이 영화는 불교에 관한 캐릭터가 전혀 등장하지 않음에도 단연 불교영화로 꼽히는 작품이다. 이유인즉 불교의 사후 세계를 이 영화보다 더 그럴듯하게 영상화한 영화가 없기 때문이라는 평론가들의 설명이다.

영화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30대 중반의 이혼남 다니엘 밀런은 LA의 한 광고회사 중견간부이다. 서른여섯 살 생일날 기념으로 뽑은 BMW 오픈카를 신나게 몰고가다 차 바닥에 떨어진 CD를 집다가 앞에서 달려오는 트럭과 충돌한다.

다니엘이 실려간 곳은 병원이 아니라 ‘심판의 도시’라는 지구밖의 어느 별이었다. 미국 서부의 한 도시처럼 꾸며진 심판의 도시는 죽은 사람이 다음 세계로 가기 전 잠시 머무는 곳이다.

그곳에 도착한 사람들은 5일에서 10일가량 머물면서 다음 생을 결정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판사 2명, 지난 삶을 추궁하는 검사 1명, 변호사 1명이 매일 그의 삶을 추궁하고 변호하고 지켜본다. 이들이 모인 재판장에는 커다란 대형화면이 켜지고 꺼지기를 반복하는데, 이 모니터에는 다니엘의 삶의 중요한 순간순간이 등장한다.

이 화면에 등장하는 다니엘은 측은하기 그지없다. 어린 시절 자기보다 몸집이 작은 불량소년이 골려도 한 대 칠 줄도 모르고, 청년시절에는 일본제 시계는 믿을 수 없다며 세계적인 시계회사 카시오 대신 젖소에 투자했다 1만 달러를 홀라당 날리고, 광고회사 입사 당시 연봉협상에서는 상사가 제시한 턱없이 낮은 임금을 두말없이 냉큼 받아들인다.

이 같은 모습을 지켜보면서 판사들은 다니엘을 지구보다 더 나은 별로 보낼 것인지, 아니면 지구로 다시 돌려보낼 것인지를 결정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점은 그것을 결정하는 기준이 바로 ‘두려움’이라는 점이다. 그가 자신의 삶에 닥쳐오는 두려움을 해결하지 못했다면 그는 지구로 되돌아가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곳에서 다니엘은 아름다운 여인 줄리아(메릴 스트립)를 만나게 된다. 심판의 도시 안에 있는 코미디극장에서 만난 그녀는 ‘우리 서로 알고 있는 사람 아니냐’며 친근하고 매력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함께 산책을 하고,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함께 하고, 도시에서 가장 핫도그를 먹으러 다니며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죽은 영혼끼리 말이다.

비겁하고 나약한 삶을 추궁을 해대는 검사에게 지쳐 ‘나 지구로 돌아갈래’라고 외치던 다니엘은 줄리아의 낙천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며 무슨 일이 있어도 줄리아가 가는 별로 함께 떠나고 싶다는 바람을 품게 된다.

줄리아는 살아 생전 불이 훨훨 타고 있는 집안에서 자신의 두 아이와 애완용 고양이를 구해낼 정도로 용감하고, 다니엘에 대한 사랑을 솔직하게 자신있게 표현하는 유쾌발랄한 여인이었다. 한마디로 관세음보살의 화신이다.

두 사람의 심판이 끝나는 전날 밤. 서로를 향한 뜨겁고 간절한 마음을 확인한 줄리아는 다니엘에게 함께 밤을 보내자고 한다. 하지만 다니엘은 그녀의 청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안 돼.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왜냐하면 지금이 내가 해본 어떤 사랑 행위보다 훨씬 좋고 이 관계를 망치기 싫어. 최고의 순간을 갖더라도 그 다음은 어떡하지. 같은 곳으로 못갈 것 같은데 계속 그리워하며 살까?”

이 말을 남기고 그날 밤 자신의 호텔로 돌아간 다니엘은 줄리아에게 전화를 걸지만 그녀는 받지 않는다. “진심으로 사랑했노라”고 메시지를 남기지만 그 고백을 줄리아가 전해 받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드디어 다니엘의 심판의 순간. 검사는 어쩔 수 없는 겁쟁이임을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겠다며 결정적인 증거로 전날 줄리아에게 보인 우유부단함을 제시한다.

다니엘은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사려 깊은 행동이었다고 항변하지만, 재판관들은 그에게 지구로 돌아가라는 판결을 내린다. 피박에 광박까지 한번에 뒤집어쓴 것이다.

이윽고 장면이 바뀌고, 정거장에는 일곱 대의 차가 기다리고 있다. 그 중 다섯 대는 지구행, 두 대는 지구보다 더 나은 별로 떠나는 차량들이 있다. 지구행 버스에 올라탄 다니엘은 멀리 다른 별로 떠다는 버스를 타고 있는 줄리아를 발견한다. 달리는 차량 문을 열고 바깥으로 탈출한 다니엘은 줄리아가 탄 버스에 올라타 문을 열어달라고, 줄리아와 함께 갈 것이라고 외친다. 이 모습을 화상으로 지켜보던 재판관과 검사는 그에게 문을 열어줄 것을 명령한다.

이 영화에는 천국과 지옥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더 나은 세계로의 전진이냐, 현 단계의 반복이냐 두 가지만이 존재한다.

전진과 반복을 결정하는 기준이 ‘두려움’이라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불교에서 두려움은 무명의 소산이다. 무명에서 비롯된 탐진치 삼독으로 인해 우리는 윤회를 거듭할 수밖에 없고, 무명에서 벗어나려는 순수한 열정에 의해 우리는 붓다가 된다.

다니엘의 변호사 다이몬의 이야기는 흡사 반야심경의 한 구절을 연상시킨다.

“두려움이란 커다란 안개처럼 두뇌에 침투해 오는 걸 막죠. 진실된 느낌, 행복, 즐거움 등이 안개를 헤치고 못 나와요. 당신은 그곳을 떠나왔고 새로운 인생이 기다리고 있죠.”

<반야심경>에서 마음에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 잘못된 망상을 떠나 마침내 열반에 이른다(心無罫碍 無罫碍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고 이야기하는 구절과 일맥상통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마치 육도윤회를 연상시킨다. 일곱 대의 버스 중 두 대의 버스는 천상세계로 가는 길이요, 다섯 대의 버스는 인간계 혹은 축생계나 아귀계 혹은 지옥계로 떠나는 길이다. 지구로 돌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업을 해결해야할 의무가 주어지고,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는 인간은 다음번에도 또다시 지구로 돌아가야 한다.

지구행 버스에 탄 다니엘은 전기가 퍽퍽 튀는, 달리는 차에서 사자처럼 뛰쳐나와 사랑하는 줄리엣을 향해 달려간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가 저리 용맹할 것이며, 무소의 뿔이 저보다 거침 없으랴.

또 한번의 생을 통해 거쳐야 할 전진의 단계를 그는 단 한순간의 일심(一心)으로 뛰어넘어 버린다. <화엄경>에서 아무 것에도 걸림이 없는 자는 한길로 생사를 뛰어넘는다더니⋯여기선 한술 더 떠서 버스 한 대 뛰어넘고 생을 바꿔버린다.

자신을 구해준 관세음보살 줄리엣을 만나 키스를 퍼붓는 그의 모습은 사랑하는 여인을 포획한 시티헌터의 모습이 아니라, 순수한 열정과 두려움 없는 용기를 쏟아내는 선재동자의 그것이다.

이 영화가 불교영화인 이유의 팔할은 바로 그 마지막 키스에 담겨있다고 하면 너무 야사시한 해석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