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 당시에 중국에 불교가 있었던가.’

이것도 일종의 직업병인지, <미이라3: 황제의 무덤>을 보는데 갑자기 이런 의문이 떠올랐다.

매번 곱게 자고 있는 미이라들을 깨워놓고선 총 쏘고 부수고 온갖 난리법석을 떠는 영화 <미이라>가 이번에는 진시황과 병마용들을 건드렸다.

천하를 제패하고 물과 불, 흙까지 다스릴 수 있는 힘을 갖게 된 진시황(이연걸)은 불로장생을 얻고자 한다. 그래서 자신의 심복인 밍 장군을 시켜 그 비법을 알아오라고 지시한다. 밍 장군이 찾아간 사람은 한 마을에 살고 있는 도교 여사제(양자경). 그녀를 본 진시황은 한눈에 그녀를 마음에 들어하고, 밍 장군과 여사제가 불로장생의 비법을 찾아나서기 직전 밍 장군에게 저 여자는 내꺼다라고 찜을 해둔다. 하지만 밍 장군과 여사제는 함께 비법을 찾으러 가던 중 사랑에 빠져버린다. 불로장생의 비법을 찾아내 황제에게 돌아오자 눈치빠른 진시황은 두사람이 연인이 되었음을 알아챈다. 진시황은 밍 장군의 사지를 달리는 말에 묶어놓고, 여사제에게 그를 죽일 것인지 내 수청을 받들 것인지 양자택일하라고 한다. 그녀가 진시황을 밀쳐내자 진시황은 밍 장군을 여섯조각으로 찢어 잔혹하게 죽여버린다.

곧이어 여사제의 저주를 받은 진시황은 검은 눈물을 흘리며 온몸이 진흙으로 굳어갔고, 진시황의 병사들 또한 진흙으로 굳어갔다. 그것이 바로 진시황의 무덤에 안치된 병마용들이라는 것이 이 영화의 플롯이다.

진시황(이연걸)의 수청을 거부하고 서쪽으로 도망친 도교 여사제(양자경). 도교의 양생술을 터득한 그녀는 진시황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2000년간 목숨을 이어오고 있다.

그런데 그녀가 머무르는 석굴에는 커다란 석가모니 와불과 호법신장들이 안치돼 있는 것이 아닌가.

픽션과 논픽션을 짬뽕 해놓은 이 영화는 중국 무협영화의 거대한 스케일과 헐리우드 영화의 코믹함을 섞어 다소 해괴망칙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혹자는 ‘양자경, 이연걸 같은 대배우가 왜 저런 영화에 출연했을까’ 라는 원망을 털어놓기도 하지만, 필자는 저 양코배기 주인공들만 빼면 영화가 한결 업그레이드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볼거리는 서양인 주인공들이 아니라 이연걸과 양자경이 펼치는 무술대결, 그들의 진지한 표정연기에 있으니 말이다.

사실상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힘은 릭과 에블린이 아니라 진시황과 도교의 여사제로 등장하는 이연걸과 양자경에게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리스마는 말할 것도 없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진시황 당시 중국에 불교가 있었던가.

정답은 'NO'이다. 진시황 당시에는 아직 불교가 유입되지 않았다. 불교가 중국에 유입된 것은 기원 전후이고, 진시황은 BC 259년에서 BC 210년 사이에 살았던 인물이다. 따라서 진시황이 죽고 약 200여년이 흐른 뒤 불교는 중국에 첫 발을 내딛었다.

그렇다면 무녀는 왜 불상을 모시고 살았을까.

제멋대로 해석을 해보자면, 여사제는 2000년간 진나라를 피해 서쪽으로 멀리 도망을 가서 살았고, 그후 수백년뒤 비단길을 통해 유입된 불교를 만났으며, 도교와 혼합된 격의불교를 받아들이다가, 끝내 불교로 개종한 듯 하다.

2000년 사이에 산천도 수백번 변했거늘 도교의 여사제가 불교신자로 개종하지 말라는 법 또한 없을 터.

진시황 당시 중국에 불교가 전파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불교, 그 중에서도 티베트불교의 이미지를 과감하게 도입했다. 도교를 이미지화하는 것보다는 서양인들에게 보다 친숙한 티베트불교를 이미지로 만드는 것이 동양의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살리는데 훨씬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듯 하다.

영화 곳곳에서는 감독이 중국불교의 이미지를 그리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진시황이 병마용들을 되살리기 위해 다이아몬드(일명 샹그리라의 눈물)를 들고 달려간 곳은 금빛 지붕으로 장식된 티베트사원이었으며, 진시황이 다이아몬드를 꽂은 곳은 낡은 룽다들이 걸려있는 하얀 스투파였다. 또 사원의 내부에는 금빛으로 장엄한 티베트식 불상들이 곳곳에 안치돼 있다.

감독은 서양인들이 생각하는 티베트불교, 히말라야의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함으로써 오리엔탈리즘을 한껏 이용하려고 했다.

여사제가 2000여년간 살아온 마을이름이 샹그리라인 것도, 난데없이 히말랴야 설인들이 등장해 주인공들을 구출하는 것도 그 연장선이라 할 수 있다.

샹그리라는 원래 제임스 힐튼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서 지상낙원으로 묘사된 마을이다. 샹그리라라는 이름은 장족어로 마음의 해와 달이라는 의미이다. 일설에는 티베트 불교에서 피안과 불국정토를 뜻하는 ‘샹바라’(香巴拉)가 ‘샹그리라’의 어원이 되었다는 해석도 있다.

어쨌든 제임스 힐튼의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샹그리라는 이샹향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후 소설속의 샹그리라와 비슷한 곳에 위치한 마을들이 여러 근거를 들며 자신의 고장이 샹그리라라고 주장하였는데, 중국 정부는 2002년 관광객 유치를 위해 중국 윈난성(雲南省) 디칭(迪慶)의 장족(藏族)자치주의 정식 행정명칭을 '샹그리라'현(縣)으로 바꾸었다.

미이라3는 재미는 있지만 깊이있는 사색의 흔적은 좀체 찾아보기 힘든 영화다.

특히 이와 비슷한 소재를 다룬 영화 <영웅>과 비교할 때 미이라의 철학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이런 아쉬움이 계속 느껴지는건 이 영화의 소재가 약간의 노력만으로도 대박을 얻을 수 있을 만큼 좋은 재료들이기 때문이다. 선과 악을 넘어선 욕망과 욕망의 충돌로 스토리를 풀어냈다면 영화는 한결 흥미진진하게 전개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발굴의 주체인 서양인 고고학자들을 주인공으로 부각시키기 위해 그들의 약탈대상이 되는 무덤의 주인들은 악랄하고 추악한 인물로 묘사했고, 미이라 진압대를 善, 황제의 부활을 꿈꾸는 중국군부를(얼핏 보기에는 공산당 같기도 한) 惡으로 삼음으로서 영화는 선악의 대결로 이어진다.

그러나 역사적 인물로서의 진시황은 '악의 축'으로만 평가내리기에는 아쉬움이 남는 복잡다단한 인물이다. 천하통일이라는 대의를 위해 자신에 반대하는 수많은 인물을 처단하고, 그들을 생매장시키기까지 한 무자비한 인물인 동시에 중국최초의 통일을 이루어내고 하나의 질서를 이룩해낸 천하의 주인이기도 했다. 하나의 질서는 때때로 수많은 혼란을 잠재우는 수단이기도 하다.

영화에서도 진시황의 욕망을 다시 되살려낸 것은 다름아닌 서양 고고학자들의 명예욕과 재물욕이었다.

서양인 고고학자들의 발굴은 미지의 세계를 향한 순수한 열정이고, 진시황의 천하통일, 불로장생을 향한 집념은 더러운 욕망에 불과한 것이다? 영화 <미이라3>의 한계는 바로 여기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영화에서 단 한가지 괜찮은 부분을 찾아낸다면, 맨 마지막에 병마용들이 모두 모래먼지로 변해 사라지는 장면이다. 모든 스러져가는 것들은 슬프고 아름다운 것은 아마 그것이 곧 자연이자 진리의 일부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불교캐릭터를 찾아내는 것보다 철학을 찾아내는 일이 훨씬 더 어렵다. 특히나 더 견디기 어려운 일은 이연걸의 피눈물을 지켜봐야 한다는 점이다.

30대에 접어든 한국의 여인네들이 10대시절부터 우상으로 섬겨온 이연걸. 지금까지도 수많은 한-중-일의 여인네들이 이연걸 같은 남자를 기다리느라 시집도 못가고 있건만 우리의 비홍이 오빠를 짐승으로 변신시키다니. ㅠㅠ

황비홍. 당신의 대머리는 참을 수 있었지만, 당신의 청아한 눈에서 떨어지는 피눈물은 정말 참기가 힘들었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