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팬더 한 마리가 전세계를 열광시키고 있다. 영화 ‘쿵푸팬더’.
160킬로의 거구에 자기 발가락도 볼 수 없는 수미산 같은 배. 이런 판~타스틱한 몸매의 팬더가 쿵푸를 한다고?
영화는 이 발상을 역이용했다. “누구도 고수가 될 수 있다. 열정만 있다면.”
동물들이 의인화된 캐릭터로 등장하는 이 영화에는 육안으로 알아볼 수 있는 글씨가 단 한 글자 나온다.
禪.
학권의 달인 크레인이 서예를 쓰다가 팬더 포오의 비명소리에 삐긋나는 이 글씨는 이 영화를 관통하는 정신이 바로 불교의 선임을 암시하고 있다. 영화는, 약간 뻥을 보태자면, 첫 장면부터 끝 장면까지 모두 불교교리로 해석할 수 있을 정도로 곳곳에 불교철학이 넘쳐난다.
쿵푸를 너무도 좋아하는 팬더 포오. 그러나 그의 몸은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몸이 아니다. 짧은 다리, 터질 듯한 배, 어깨 위에 쩍~붙은 커다란 머리. 아침에 깨어나 몸을 일으키기 힘겨울 정도로 고르게 분포된 살들. 팬더는 역시 태생적으로 쿵푸 체질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용의 전사를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는 부랴부랴 제이궁으로 달려간다. 물론, 토너먼트에 참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용의 전사를 직접 만나고 싶어서.
하지만 짧은 다리로 허겁지겁 산꼭대기의 제이궁에 도착했을 때 이미 경기장 문은 닫혔다. 아무리 문을 열어달라고 함성을 질러도 경기장에서 울리는 북소리에 묻혀버리자, 결국 포오는 의자에다 화약을 붙여서 자신을 로케트 미사일로 삼아 경기장 잠입을 시도한다.
그 순간 대사부 우그웨이는 용의 전사가 가까이 왔음을 감지했다. 누가 용의 전사인지를 선택할려는 찰라, 갑자기 하늘에서 폭죽과 함께 떨어진 거구의 팬더 한 마리가 우그웨이의 손가락 바로 앞에 딱 떨어졌다.
그래서 뚱보 팬더는 ‘용의 전사’가 되었다.

너무도 기가 막힌 작은 사부 시푸는 우연일 뿐이었다고, 그는 용의 전사가 아니라고 대사부에게 항의한다. 하지만 우그웨이는 말한다.
“우연은 없어.(There are no accidents)”
하지만 시푸는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무에서 복숭아가 떨어질 때, 그리고 그 씨를 심음으로써 재탄생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이때 우그웨이는 말한다.
“그 씨를 심는다고 해서 복숭아가 아닌 다른 과실이 맺히지는 않잖냐”고.
우그웨이가 말하는 복숭아 씨앗은 팬더나 표범 같은 ‘종(種)’을 의미하는 것도, 포오라는 특정 인물을 지칭하는 것도 아니다. 그 씨앗은 순수하고 선한 열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그웨이가 포오에게서 감지한 향기는 바로 쿵푸에 대한 열정과 순수한 마음이었던 것이다.

“우연은 없다.”
영화를 관통하는 이 말은 불교의 인드라망 개념과 일치한다. 중중무진의 인연으로 둘러싸인 우주 속에서 모든 원인은 그 결과와 정확하게 일치한다는 사실. 우그웨이는 그 비밀을 알고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쿵푸팬더는 기존의 디즈니 애니메이션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원래부터 착한 주인공과 원래부터 사악했던 악당의 대결구도는 쿵푸팬더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원래부터 예쁘지도 않고(백설공주와 달리), 원래부터 싸움을 잘하는 것도 아닌(헤라클레스와 달리), 원래부터 용감무쌍하지도 않은(타잔보다는 오히려 치타에 가까운) 포오가 용의 전사로 지목된 것은 바로 쿵푸에 대한 열망과 의지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 영화의 유일한 악당 타이렁 또한 태생적으로 악한 존재는 아니었다. 그의 뛰어난 재주 때문에 시푸가 너무도 자랑스러워하고 사랑했고, 그로 인해 타이렁은 교만하고 포악한, 그리고 ‘용의 전사’라는 대상에 집착하는 인물로 성장했다.
그의 탐진치를 감지한 우그웨이는 타이렁을 용의 전사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타이렁은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대사부에게 반발해 용의 문서를 훔치려 했고, 결국 20년간 감옥에 갇혀 있었다.
선한 종자를 심은 곳에 선한 결과가 생기고, 악한 종자를 심은 곳에 악한 결과가 생긴다는 인연론을 우그웨이는 복숭아에 비유했던 것이다.
인과가 분명하면 이 세상에는 좋은 것도 없고 나쁜 것도 없어지게 된다.
시푸가 우그웨이에게 사부님, 아주 나쁜 소식이 있습니다라며 타이렁이 탈출했다는 소식을 전하자 우그웨이는 시푸, 그냥 소식이 있을 뿐일세, 좋고 나쁜 것이란 없어라고 말한다.
결국 모든 것은 공일 뿐 세상에 고정된 관념도 고정된 상황도 없음을 우그웨이는 이야기한 것이다.
우그웨이는 순수한 열정이 믿음이라는 토대가 있어야만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우그웨이는 시푸의 독설에, 동료들의 따돌림에 절망하고 있던 포우에게 너는 어떤 존재가 돼야 하고 어떻게 해야하는지 너무 신경쓰고 있어라며 다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제는 지나간 history이고, 내일은 미스터리이지. 하지만 현재는 선물이야. 그래서 present라고 부른다네.
이 말에 감화를 입은 포오는 자신이 용의 전사가 될 수 있음을 믿기 시작한다.
그는 또 시푸에게도 믿음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거듭 강조한다.
“나와 약속해주게, 시푸, 그를 믿겠다고. 자네는 그를 믿어야 해.”
아무런 기본기도 안된, 적어도 몸무게 160킬로 중 80킬로는 빼야 뭘 해도 할 것 같은 팬더를 무조건 믿으라고 우그웨이는 말한다.
하지만 시푸는 이를 부정한다. 그리고 “너는 부적격자”라고 하면서 포오를 내치기 위해 고심한다. 무적 5인방 또한 포오를 왕따시키고. 불쌍한 포오~.

그러던 어느날 시푸는 우연히 3m가 넘는 벽장에 올라가 완벽하게 다리찟기를 한 채 몽키의 비스켓을 훔쳐 먹고 있는 포오를 발견한다.
“너 거기에 어떻게 올라갔냐?”
“이건 우연이에요”
“아니, 우연은 없어.”

그제서야 우그웨이의 말을 이해하기 시작한 시푸는 포오를 쿵푸 고수로 연마시키기 시작한다. 하지만 판타스틱한 몸매의 팬더를 교육시키기에 기존의 교육법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그는 포오에게 새로운 교육법을 적용해 연마시키기 시작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치사하게 음식으로 약올리기’.



제이궁에는 예로부터 전해져오는 쿵푸의 비밀이 담긴 '용의 문서'가 전해져오고 있었다.
그 문서는 용의 전사만이 열람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그 문서를 읽는 사람은 나비날개권을 얻게 된다고 알려져 있었다.
수련을 마친 포오는 드디어 용의 문서를 얻게 되었다. 문서를 펼치는 순간, 놀랍게도 용의 문서에는 아무런 이야기도 적혀 있지 않았다. 이 세상에 비밀은 없음을, 삼라만상의 비밀은 바로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현실 속에 존재함을 우그웨이는 이같은 방식으로 전했던 것이다.
그러나 악당 타이렁은 바로 목전에 와있고, 시푸와 포오는 절망에 사로잡힌다.
마을로 내려간 포오. 한껏 풀이 죽어 집으로 돌아간 그에게 대대로 국수집을 이어온 아버지는 국물의 비밀을 전수해주겠다고 한다.
“국물 재료에 특별한 비밀은 없어. 그냥 특별하다고 믿으면 되는 거야.”
순간, 포오는 우그웨이 대사부가 가르쳐준 그 진리를 깨닫는다.
그 길로 그는 다시 뒤뚱뒤뚱 제이성으로 걸음을 옮긴다.
이 영화는 선을 표방해온 기존의 헐리우드 영화와는 상당히 차별성을 띠고 있다.
그동안 헐리우드는 고요하고 정적인 불교를 선, 내지 젠스타일(zen style)이라고 파악해왔다. 그것은 사실 선이라기보다는 일본불교에서 전승돼온 무사도에 가까운 것이었다.
스즈끼 선사를 통해 선을 접한 서양인들은 지금까지 선의 본래 의미보다는 일본 젠스타일의 이미지가 투영된 작품들을 표현해왔다.
그런 측면에서 이 영화는 기존의 한계를 상당 부분 극복했다고 판단된다.
안과 밖이 다르지 않으며 선과 악이 구분되지 않는, 경계가 허물어진 경지가 바로 선이라면, 이 영화는 선의 본질을 가장 잘 표현한 영화의 하나로 꼽힐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의 최고 명장면은 복숭아 꽃잎이 되어 날아간 스승 우그웨이의 모습. “자네 스스로 믿음을 가지게나”라는 말을 남기고 그는 마지막 순간 우주의 일부가 되어 허공 속으로 사라진다. 너무도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