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로 변신한 가수 비가 낮고 길다란 만트라 속에서 위빠사나 수행서에나 등장할 법한 나레이션을 읊는다.

최근 붉은 승려들 속에서 카메라를 부여잡고 있는 비의 모습이 광고의 한 장면으로 등장했다. 이 잘생기고 쭉빠진 총각은 1000여년된 역사물의 위엄 속에서도, 붉은 가사를 걸친 승려들의 행렬 속에도 군계일학(群鷄一鶴)이다.

비가 니콘카메라의 광고모델로 등장한 현장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어쩌면 비는 앙코르와트를 배경으로 하는 마지막 광고모델이 될 지도 모른다. 2009년부터 유네스코가 직접 앙코르와트를 관리하게 되면서 관광 및 광고 촬영이 어려워질 전망이다.

앙코르와트는 12세기 중반 크메르왕조에 의해 건립된 거대한 사원으로, 앙코르는 ‘왕도(王都)’를, 와트는 ‘사원’을 뜻한다.

현재 캄보디아의 국민 98%가 불교를 신앙하고 있고, 앙코르와트 또한 바간, 보로부두르와 함께 상좌부불교의 3대 유적으로 꼽히고 있어 이곳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부터 이곳이 불교유적이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하지만 12세기 중반 크메르족이 사원을 건축할 당시 이 건축물은 힌두교 사원으로 지어졌다.

크메르족은 왕이나 유명한 왕족이 죽으면 그가 믿던 신(神)과 합일(合一)한다는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왕은 자기와 합일하게 될 신의 사원을 건립하는 풍습이 있었다. 앙코르왕조의 전성기를 이룬 수리아바르만 2세는 바라문교(婆羅門敎) 주신(主神)의 하나인 비슈누와 합일하기를 원했고, 이를 위하여 건립한 바라문교 사원이 바로 앙코르와트이다.

그러나 후대에 이르러 캄보디아에 불교가 유입되면서 이곳 또한 불교사원으로 바뀌었다. 불교도들이 바라문교의 신상(神像)을 파괴하고 불상을 모신 것이다.

앙코르의 최고 하이라이트는 사원을 뒤엎고 있는 거대한 고목들의 뿌리이다. 앙코르왕조는 13세기 말부터 쇠망하기 시작하여 15세기경에는 완전히 멸망함에 따라 앙코르와트도 정글 속에 묻혀버린 것이다.

앙코르가 세상 밖으로 다시 나온 것은 1861년 표본채집을 위해 정글에 들른 프랑스 박물학자가 이곳을 발견하면서부터였다. 하지만 캄보디아 내전이 발발하면서 이곳은 낮이면 베트남군이, 밤에는 크메르루지의 게릴라가 번갈아 장악, 전화(戰禍)와 약탈로 훼손되어 수많은 불상이 조각난 채 나뒹구는 폐허가 되었다. 또한 이 전란 기간 동안 상당수 중요 유물들이 외국으로 유출되었다. 그래서 현재로서는 완전한 복구가 불가능하다.

1980년대에 이르러 유네스코가 앙코르와트를 복원할 당시, 처음에는 사원을 칭칭 감고있는 나무뿌리들을 제거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무뿌리를 제거할 경우에는 아예 사원자체가 붕괴될 우려가 있다는 진단이 나오자 뿌리 제거작업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결국 앙코르와트는 인간의 피조물과 자연이 어우러진 상태로 유지될 수밖에 없는 유적인 것이다.

거대한 나무의 뿌리가 사원과 붓다, 힌두의 신들을 칭칭 감고있는 절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과 인간, 신과 피조물, 그리고 시간과 영원에 대한 많은 단상을 불러 일으킨다.

그래서 어떤 한 영국 여인은 평생토록 앙코르를 보기를 갈망했다가, 앙코르에 도착한 순간 심장마비로 숨져버렸다고 한다. 죽을 만치 숨막힐 듯한 절경에 놀란 나머지 그녀의 심장이 멎어버린 것이다.

가수 비가 니콘의 모델이 되어 리얼리티를 찾으러 떠난 앙코르와트. 그 유적의 진실 내지 실상은 정녕 무엇일까.

처음 앙코르와트가 건립될 당시에는 자연을 파괴한 장본인이 바로 그 건축물이었다. 이후 그 건축물을 파괴한 것은 그곳에 묻혀있던 나무의 홀씨들이었다. 비를 맞고 자양분을 듬뿍 흡수한 나무들은 인간의 피조물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곳을 자신의 뿌리로 뒤엎어버렸고, 이후 정글로 변모했다.

그리고 1000여년이 지난 뒤, 한국이 낳은 슈퍼스타 비는 일제 카메라를 들고 그곳을 찾았다. 자연의 일부인 한 인간이 인공물인 카메라를 들고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도구를 통해 리얼리티를 연출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들 속에서 하나가 되고, 그들이 의식하지 않는 일부가 되는 것. 이방인이자, 카메라를 든 방해자일 수밖에 없는 존재 또한 앙코르와트의 일부임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히는 앙코르와트, 아무도 진실을 알 수 없는 현장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진실이라는 역설을 ‘비’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전달하고 있다. 역시 완소남은 무엇을 해도 멋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