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남사는 안성에서 진천으로 넘어가는 차령산맥 안쪽 서운산(瑞雲山) 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신라 문무왕 20년(680)에 고승 석선(奭善)이 창건하였고, 고려 광종의 아들인 혜거국사(慧炬國師)가 중건했다는 안성 지역의 주요 사찰이다. 절에서 나와 계곡을 따라 소나무가 우거진 숲길을 500미터 정도 오르면, 길 왼편으로 10미터 높이의 바위가 솟아 있다. 표지판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산중을 헤매였을까. 무심코 오르면 자칫 지나칠 수도 있는 한적한 곳에 산중의 부처가 서 있었던 것이다. 그런 부처의 첫 인상은 그 어려운 길을 찾아왔느냐며 소리 없는 미소로 반겨주는 듯하였다.

마애불의 미소에 한참 빠져 있을 때, 늙은 처사가 비를 들고 올라왔다. 나뭇잎 쓰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자니, 첫인상과는 달리 마애불은 누구를 위로하거나 무엇인가를 가르치기 위한 겉도는 교훈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스님들이 부처에게 올리는 백팔배·삼천배가 불상에 의지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불성을 깨달아가는 숙연한 수도의 과정인 것처럼, 그 처사는 매일 부처님 앞에서 비질을 하는 동안 자신의 마음을 가다듬게 될 것이다. 구도자의 모습 그대로였다. 이런 생각을 절로 나게 하니, 분명 이 마애불은 야외에 만들어진 또 하나의 법당이다. 자연 속에서 작은 풀꽃, 지는 나뭇잎 하나에도 애정어린 손길을 주며 정갈하게 삶을 사는 부단한 수도의 길에서야 제대로 만날 수 있는 분이라 여겨졌다.

마애불은 꽤 큼직한 편으로 균형이 잘 잡혀 있다. 그러나 산중 부처의 이미지를 살리려는 탓인지 거칠고 거뭇한 바위를 선택하였다. 불상 또한 매끄럽게 다듬어지지 못하고 약간은 거칠게 돌출된 느낌이 없지 않다. 세 줄의 원형 두광과 신광으로 불상을 에워싼 구도는 단정하고, 불상 크기에 맞춰 널찍한 빛너울을 이루고 있다. 좌우 어깨를 덮는 통견의 법의는 양쪽 무릎 아래로 대칭의 타원형을 그리며 흘러내렸다. 옷주름의 묘사가 겹겹의 주름인 점은 도식적이지만, 그 가운데 섬세한 손가락, 약한 미풍에 금세라도 날릴 듯한 옷자락의 양끝 처리는 일품이다. 그에 비해 발가락은 나무막대를 뚝뚝 끊어 일렬로 세워놓은 듯한데, 어색함보다는 커다란 불상에 안정감을 더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