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답사의 첫 번째 즐거움은 산 능선에 봉긋봉긋 솟아 서기(瑞氣)를 뿜는 가야의 무덤을 보는 것이고, 두 번째 즐거움은 울주반구대나 천전리에 이어 조성된 양전동 암각화를 보는 일이다. 그 다음은 대책없이 해학스런 부처님을 찾으러 개포동을 향하는 것이다. 개포동은 암각화가 있는 양전동에서 회천 천변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4∼5킬로미터 정도 지나면 나온다. 해발 387미터의 제석산 남쪽 기슭에 개포마을이 있는데, 그들의 삶터인 나지막한 산밭 옆에 마애관음상이 자리해 있다. 이제는 만남보다는 그리워하는 정으로 사는 노인네처럼, 따뜻한 손길이 거의 미치지 못하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마을 어귀의 교회 첨탑은 더욱 높아 보인다. 겨우 1.5미터 높이에 30센티미터 두께의 판석에 새겨진 관음보살좌상을 보면 마애불이란 호칭을 붙여주는 것이 주저되기도 한다.

보살상이 새겨진 판석 뒷면에는 ‘雍熙二年 乙酉 六月二十七日’이라는 명문이 있다. 성종 4년인 985년에 이처럼 서투른 민화 같은 못생긴 마애불을 완성해 놓고 당당하게 그날을 기록한 것이다. 고려가 개국하고 반세기가 지난 뒤, 글 모르는 소박한 백성들이 여기에서 치성드렸을 일을 상상해본다. 이제 와서 그 부처가 관음이니 미륵이니 따져본들 그들과 무슨 큰 관련이 있겠는가마는 제작시기를 밝혀놓은 것으로 미루어볼 때, 고려의 관모를 쓴 이 보살상을 처음 만들었던 의도는 사뭇 적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머리에 관모형 모자를 쓰고 결가부좌로 앉아 있는 마애불은 여느 보살과는 달라 보인다. 고려 관리들이 쓰는 관모형에 화불 하나를 달고 있어, 마치 보살상을 고위관료에 빗댄 것같아 보이기도 한다. 더군다나 가느다랗게 뜬 눈에서는 종교적인 엄정함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보다는 광대뼈가 튀어나온 둥그스레 넓적한 얼굴에서 소박한 해학미가 물씬 풍겨나오며, 귀걸이 장식 또한 인상적이다. 우견편단의 옷주름도 물결치는 대여섯 줄의 사선으로 그려 어색하기 짝이 없다. 접힌 팔과 양쪽에서 수평을 이루는 조그마한 발바닥이 묘사력의 미숙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오른손은 가슴 앞으로 올려 엄지와 검지를 맞대어 밖으로 손바닥을 보이고, 왼손은 손바닥을 밖으로 내보이며 어색하게 연꽃 가지를 잡고 있다. 지팡이 잡듯 수직으로 든 꽃가지에는 특이하게도 두 송이의 꽃이 피어 있어 마치 생화를 보는 듯하다. 두 줄의 신광과 둥근 두광, 광배의 화염문이 약소한 체구를 보완하여 나름대로 위엄을 나타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