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장면 장암리는 이천시의 진산인 설봉산의 서쪽 기슭에 있는 동네이다. 이천에서 남한강으로 합류하는 복하천의 지류인 표고천이 마을 앞으로 흐르고 그 건너편에 이천의 바위산으로 유명한 도드람산(猪鳴山)이 버티고 선, 풍광이 수려한 곳이다. 그러나 설봉산과 도드람산 사이를 중부고속도로가 가로지르는 바람에 그 아름다움이 그만 조각나 버렸다.

마장(馬場)이라는 이곳의 지명으로 보아 나라에서 운영하던 말을 키우는 곳이었던 모양이다. ‘긴 바위가 있는 곳’이라는 장암리(長巖里)는 곧 마애불이 새겨진 바위를 지칭하는 것 같다. 그 이름처럼 마을 입구의 도로변에는 ‘미륵바위’라 불리는 바위 하나가 서 있다. 3미터가 넘는 이 바위의 앞면에는 반가상을, 뒷면에는 ‘太平興國六年 辛巳 二月日 香徒’라는 명문을 새겨놓았다.

경종 6년인 981년에 새겨진 마애불이다. 잘생기지 않은 순박한 얼굴이나 비례에 맞지 않는 신체로 보아 ‘향도’라는 시주자에서도 확인되듯이 지방 장인의 솜씨이다. 거의 같은 시기에 ‘황제만세(皇帝萬歲)’를 기원하며 조성된 인근 하남 교산리의 태평이년명마애약사불좌상의 격조에 비하면 더욱 그렇다.

이곳 장암리 마애불은 입체감이 거의 없는 희미한 선각이다. 10세기 고려 조각의 한 특징인 못난이 상의 전형으로, 불상으로서의 엄정함을 갖추지 못했다. 보통의 반가상들과는 달리 왼발을 오른쪽 무릎 위로 올려 왼팔과 나란히 하였다. 화불이 새겨진 높은 보관을 썼으나, 사각형에 가까운 얼굴과 넓은 이마, 짧은 귀, 두꺼운 입술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게다가 오른손에는 꽃가지를 대각선으로 들었는데, 그 끝인 보관의 오른쪽에서 부챗살처럼 퍼지는 것은 관음보살의 지물인 연꽃이라거나 혹은 딱히 무어라고 하기에도 어색하며, 그 솜씨에 자못 웃음만 나올 뿐이다. 오른발을 연화대좌에 내려놓았지만 하단부로 갈수록 조각은 더욱 희미해진다. 마애불 앞으로 사각 판석 두 개가 떨어져 있다. 하나는 부처의 머리에 얹은 것이며, 다른 하나는 제단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가의 자세로 앉은 상을 대개 미륵상이라고 부르지만, 이처럼 보관에 화불이 등장하고 연꽃을 든 도상은 관음보살이다. 만약 마애불을 미륵보살이라고 한다면 들고 있는 것은 용화수(龍華樹)가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용화수는 관음보살이 들고 있는 연꽃과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마을 사람들은 이 부처를 그냥 미륵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부처바위 덕분에 마을이 잘 된다 하여 지금도 산신제를 지내고 있으며, 마애불에 ‘장승이’라는 애칭도 붙여 주었다.

보통, 마을 입구에 선 크지 않은 편평한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은 인근의 불당으로 옮겨가는 경우가 많다. 미륵신앙을 마을의 공동체를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끌어들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마애불은 그 규모 때문에 옮겨가기 힘들었을 게다. 아마 처음부터 지방 ‘향도’에 의해 마을의 수호신격으로 이 자리에 세워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