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남산삼릉계선각육존불. 통일신라 9세기. 본존높이 2.7미터. 협시보살상 1.8미터. 오른쪽 본존 2.4미터.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호. 경주시 배동.

삼릉계 중턱에 높이 4미터와 폭 7미터 정도로 넓게 펼쳐진 암반이 있다. 앞쪽 바위와 조금 뒤로 물러선 바위가 마치 두 개의 병풍을 펼친듯한데, 두 암벽에 각각 삼존불을 새겨놓았다. 우리나라 선각마애불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조성된 것이다. 거친 벼랑의 질감 때문에 깊은 선각들이 유려하지 못한 편인데, 오히려 그 맛이 선묘의 회화성을 살려주고 있다.

뒤쪽보다 앞쪽 벼랑의 삼존상이 선명한 편이다. 자연스런 불보살의 표정이나 자세의 선묘는 신라불화의 단면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아마도 밑그림은 솔거의 후예로 당대에 손꼽히는 어느 화가가 그렸을 법하다. 삼존불의 양 협시보살은 본존불 입상을 향하여 무릎을 괴고 앉아 쟁반 위에 연꽃을 올리는 헌화의 자세이다. 그리고 약간 뒤로 물러선 암벽의 삼존불은 좌상의 본존불을 중심으로 보살입상을 배치한 구도이다. 오랜 세월 동안 바람과 비에 다듬어진 듯 바위의 표면이 미끈하지만, 암질이 단단하고 균열이 많아 마애불을 조성하기 어려운 암반이다. 그래서 선각을 택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마애불이 바라보는 남쪽을 향하면 왜 이곳에 마애불을 조성했는지 쉽게 풀린다. 삼릉계에 숨겨진 듯한 부처들이면서도 암반 위로 오르면 경주의 중심 삶터인 배리 들녘을 전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암반 위에는 인공으로 흙을 파 놓았는데, 빗물이 불상으로 흘러내리지 않도록 한 장치 같다. 또 암반 위에는 네모난 구멍들이 파여 있고, 주변에는 목조로 건물을 지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