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굴불사지사방불. 통일신라 8세기 중반 서쪽본존높이 3.5미터

보물 제121호.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 소재.

경주의 북쪽을 가로막는 바위산이 소금강이다. 산 중턱에 법흥왕 때 순교한 이차돈을 추모하는 백률사가 있는데, 절에 오르는 입구에서 사방에 불상이 새겨진 사면체 바위를 만난다. 《삼국유사》에 “경덕왕이 백률사에 오르던 중 땅 속에서 염불하는 소리가 들려 파보게 하니 사면석불이 나왔다, 이곳에 굴불사(掘佛寺)를 지었다”는 설화가 전한다. 굴불사가 ‘부처를 발굴한 절’이라는 의미인 것처럼 사찰은 없고 석조사방불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8세기 중엽의 경덕왕 시절에는 한국의 불교미술이 최고조에 달했다. 석굴암과 불국사를 비롯해서 불상과 석탑 그리고 건축에 이르기까지 신라의 이상미가 구현된 절정기이다. 경덕왕의 방문설화가 전하는 굴불사지의 사방불 역시 당대의 예술미와 부조 솜씨를 보여준다. 바위의 서쪽 면은 관음보살과 세지보살이 협시를 이룬 아미타삼존불을, 동쪽은 왼손에 약합을 든 약사여래좌상을, 남쪽은 도상의 이름을 추정하기 힘든 여래와 보살상을, 그리고 북쪽은 미륵보살입상과 여섯 개의 팔을 지닌 십일면관음보살입상을 배치하였다.

바위의 사면이 고르지 않은데, 그 중 서향을 한 아미타삼존불이 가장 크고 조각도 견실하다. 게다가 이 아미타불입상은 3미터 정도의 바위 면에 몸을 부조하고 그 위에 두상 부분을 따로 조각하여 세워놓았으니 금세 중심 부처임을 알 수 있다. 바위에 새겨진 몸은 우견편단의 유연한 의습처리로 사실감 난다. 오른팔이 떨어져나갔고, 왼팔은 꺾어 배 앞에 대었는데, 수인이 불분명하다. 이처럼 바위에 몸을 새기고 별도로 두상을 조합한 독특한 형태의 조각으로서는 가장 이른 시기에 속한 작품이다. 이런 방식은 남산 약수곡의 거대한 마애불입상으로 이어졌고, 이후 파주 용미리마애불입상, 안동이천동마애불입상, 논산계룡산마애불입상 등 주로 고려시대 조각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아미타불 좌우의 협시보살은 별도의 환조를 배치한 것으로, 경주서악동마애삼존불의 전통을 계승하였다고 볼 수 있다. 좌협시보살상은 보관에 작은 화불을 단 관음보살이며, 우협시보살상은 심한 손상을 입어 파악하기 어렵다. 몸을 약간 비튼 자세의 보살상들을 측면에서 보면 등에서 허리로 이어지는 불륨 있는 곡선이 아름답다.

동쪽을 바라보는 약사여래는 거의 땅에 내려앉혀 중부조로 새긴 좌상이다. 눈과 코에 상처를 입었지만, 눈썹에서 이어진 콧날이 선명하며 이마가 좁은 편이다. 어깨와 무릎의 비례감은 자못 당당해 보인다. 그 중 음각선묘의 원형 두광과 신광이 결합된 광배는 화염문이 섬세하다. 남쪽 면에는 삼존불을 모신 것으로 추정되는데 왼쪽 보살상이 떨어져 나갔다. 삼존불에서는 대개 본존을 크게 하고 좌우 보살을 작게 하는데, 이 남면의 삼존불은 남아 있는 여래상과 보살상의 키가 거의 같은 점이 특이하다. 북쪽 면은 중부조의 미륵보살입상과 선각의 보살상을 새겨 넣었다. 미륵보살입상은 약간 내반된 감실형 공간에 부조했으며, 반복된 정 자국이 빛을 방사하는 광배 같은 느낌을 준다. 그 왼쪽 면에 음각선묘로 새긴 십일면관음보살상은 희미하지만 여섯 개의 팔을 가지고 있다. 보통의 관음보살상보다 더 많은 위력을 지녔다 하여 보관 대신 열 개의 얼굴을 붙이고 많은 팔을 곁들인 것이다. 이는 십일면관음상과 같은 밀교적 도상으로 우리 불교미술에서는 흔치 않다.

특히 불보살상의 자연스런 옷 주름 표현과 천의자락을 걸친 육감적인 몸매와 자태, 그리고 볼륨감 있는 사실미에는 8세기 경주 사람들의 미의식이 잘 표출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석굴암의 이상화된 조각미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들은 경전에 근거를 둔 사방불이라기보다는 당시 보편적으로 알려진 불보살을 신앙화한 것으로 짐작된다. 이들 중 가장 눈에 띄는 부처는 역시 아미타삼존불로, 태종 무열왕릉과 오른쪽의 서악을 바라보는 위치여서 신라 왕실과의 깊은 연관성을 짐작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