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남산불곡마애불좌상. 신라 7세기초반. 보물 제198호
불상높이 1.4미터, 감실높이 1.7미터, 폭 1.2미터. 경주시 인왕동
경주 남산의 북쪽, 비탈진 언덕 암반에 듬직한 바위 하나가 덩그러니 솟아 있다. 이 바위에 미소년 모습의 부처님이 계신다. 살짝 고개를 숙여 삼매에 든 얼굴은 경주 땅 신라불교의 마스코트라 할 만하다. 이곳은 이 부처상 덕분에 불곡(佛谷)이라는 지명을 얻게 되었다. 그런데 이 불상은 감실에 고부조로 조각된 구조라든지 채색문제, 조성된 위치 등 풀리지 않는 몇몇 수수께끼를 안고 있다.
불곡의 마애불은 고신라 불상의 초기 대표작으로 꼽힌다. 높이 3미터, 넓이 4미터 정도의 ‘」’형 화강암을 1.45미터 가량 파 들어가 감실(龕室)을 조성했고, 그 공간에 꽉 들어차게 불상을 조각했다. 인도나 중국의 석굴사원에서 그 선례를 찾아볼 수 있기는 하지만, 대개 우리나라의 마애불이 바위에 도드라지게 새긴 부조 형태이거나 선각인 것과 비교한다면 특이한 구조인 셈이다.
우리나라 마애불도 감실 형태를 보이는 몇몇 사례가 있지만 이 경우처럼 깊게 새기지는 않았다. 깊은 감실은 경주 시내를 등지고 남동향으로 앉아 계신 부처님께 볕을 보내주지 않는다. 동짓날 점심 먹기 전이어야 불상 전체에 햇빛이 들어 신비롭고도 자비로운 표정의 동안을 대면할 수 있게 된다.
불상은 양손을 배앞으로 모아 옷소매에 넣고 편하게 앉은 자세이다. 오른발만을 내놓은 채 이중으로 잘 접힌 옷주름이 대좌까지 덮고 있다. 머리에는 두건 형태의 불룩한 돌이 솟아 양어깨로 이어져 통견의(通肩衣) 법의와 연결된다. 이를 보면 불(佛)이라기보다 보살이라는 주장이 나올 만하다. 또한 법의와 함께 두건 부분에도 붉은색의 흔적이 선명하여 처음부터 채색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최근에는 감실 내부에도 연꽃 그림이 있다 하여 소개된 적이 있다.
어쨌거나 불이든 보살이든 신라인이 처음 채색했을 때를 상상해 보면, 감실부처는 신라의 미소년인 화랑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세월의 풍상은 그 채색의 번잡함을 벗겨냈고, 삼매경에 들어 자비로운 부처의 평화스러움을 되돌려준 것 같다. 이 감실부처는 삼화령 미륵삼존불이나 남산 윤을곡 삼존불의 둥글고 부드러운 동안과 함께 고신라를 대표하는 화랑형 애기미륵으로 꼽을 수 있다. <사진제공=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