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태평이년명마애약사불좌상 고려 977년, 높이 0.9미터. 보물 제981호, 경기도 하남시 교산리 선법사 소재.

남한산성의 북단 끝자락인 하남 교산리의 선법사 한쪽에는 암벽 계곡이 만든 작은 폭포와 약수터가 있다.

객산폭포(客山瀑布) 혹은 약수골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약수터 옆으로 뾰족하게 솟은 삼각형 바위에 서남쪽을 향한 1미터 높이의 마애불이 조각되어 있다. 약수터의 감로수와 함께하면서 늘 대중의 건강을 지켜주는 약사불이다.

사진제공=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약사불은 동방유리정토에 계시는, 중생들의 가장 현실적인 고통인 질병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부처이다. 지금도 사람들은 이곳의 약수를 뜨기 위해 줄을 잇고 있다. 왼손에 약합을 들고 사각대좌 위에 앉은 모습의 마애불이다. 백안의 미소가 돋보이고 옷 주름과 대좌의 문양은 융기된 선묘로 섬세하게 묘사하여 회화성을 높였다. 깔끔하게 다듬어진 얕은 부조는 바위 표면을 파 들어가면서 양각의 맛을 낸 독특한 기법이다.

불상의 머리와 몸 뒤로 각 세 줄의 두광과 신광이 퍼져나가며 그 바깥으로 불꽃모양이 장식되어 광배를 이룬다. 사각대좌 위에는 연꽃이 깔끔하게 피어 있는데, 약간 부감해서 본 연꽃모양으로 부처의 가부좌한 하반신을 빙 두르고 있다. 바위에 그린 것 같은 회화적인 맛을 한껏 살린 표현이다.

이 마애불은 고려초기의 투박한 거불양식과 아주 달라, 소규모일 뿐 아니라 신라불상의 형식을 잘 배운 듯한 도상적 격식을 갖추었다. 마애불 오른쪽으로 ‘太平二年 丁丑 七月二十九日 古石佛在如賜乙重修 爲今上皇帝萬歲願’이라는 음각의 명문이 보인다. 태평이란 송 태종의 연호인 ‘태평흥국’을 줄여서 쓴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불상은 경종 2년인 977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고려에서는 바로 전 왕인 광종 후기부터 대국의 위상으로 체제를 개편하고 임금을 황제라 불렀으므로 황제란 고려왕을 지칭하는 것이다. ‘황제만세’를 운운하는 것이 의례적인 것인지 아니면 마애불과 특별한 관련이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당대 다른 지방에 조성된 마애불과는 도상의 격조나 새김솜씨가 크게 차이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지방 조각가의 솜씨는 분명 아닐 것이다.

아무튼 이 작은 마애불은 조성된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남한산성의 북단 사람들과 삶을 함께해 온 것만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