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의 선기는 부드럽지만 단박에 의표 찔러
‘입술에서 번쩍번쩍한다.’고 칭송하는 조주선사의 선기(禪機)는 확실히 격렬한 임제선사의 (喝, 고함소리)이나, 매서운 덕산의 방(棒, 방망이)과는 대조를 보인다. 얼음을 녹이는 봄바람처럼 부드럽지만 단박에 의표를 찔러 부질없는 망상을 깨뜨려 주는 것이다.
백림선사는 경내 어디를 가나 천년을 하루와 같이 조주선사의 차향이 향기롭고, 뜰마다 측백나무의 푸름이 싱그럽다. 문선요(問禪寮) 기둥에 걸린 주련도 조주선사의 선풍을 단 두 문장으로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다.
趙州茶香明心性
庭前柏樹悟眞空
조주 차의 향기는 마음의 성품을 밝히고
뜰 앞의 잣나무는 참된 공을 깨닫게 하네.
회랑으로 이어지는 정자에도 평상심(平常心)이라고 쓰인 편액이 걸려 있다. 선사의 선풍은 스승인 남전선사와 남전의 스승인 마조선사와 관계를 갖는다. 마조선사는 입적할 때까지 ‘평상의 마음이 도다’라고 설하였던 것이다.
‘도(道)는 닦을 것이 없으니 물들지만 말라. 무엇을 ’물들음‘이라 하는가. 생사심(生死心)으로 작위와 지향이 있게 되면 모두가 물들음이다. 그 도를 당장 알려고 하는가. 평상심(平常心, 본래면목)이 바로 도다. 무엇을 평상심이라고 하는가. 조작이 없고, 시비가 없고, 취사가 없고, 단상(斷常)이 없으며, 범부와 성인이 없는 것이다.’
순례일행은 백림선사 경내 끝에 있는 만불전을 참배하고 서둘러 조주석교(趙州石橋)로 간다. 조주석교까지는 절에서 4km 떨어져 있어 버스로 10분 거리다. 아직 석양의 날빛이 남아 있어 다행이다. 가는 중간에 경전을 봉안했던 금강경탑(조주다라니경당)이 보인다. 탑이 시가지 중심의 로터리에 서 있음은 예전에는 여기까지 백림선사 경내였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리라.
조주석교.
조주선사 게송에도 등장하는 돌다리이다. 선림에서 다른 견해들이 분분하자 조주선사는 게송을 지어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조주의 남쪽, 석교의 북쪽
관음원에 미륵불 계시는데
조사께서 남긴 신발 한 짝
지금까지도 아직 찾지 못했네.
趙州南石橋北 觀音院有裏彌勒
祖師有一雙履 直至如今覓不得
조주석교에서 조사가 남긴 신발 한짝을 찾아 헤매다
조주석교는 조주성(趙州城)의 관문으로서 하북(河北)과 하남(河南)을 잇는 유일한 다리였다고 한다. 그러니 ‘조주의 남쪽, 석교의 북쪽’이라는 표현은 천하를 가리키는 말인 것이다. ‘조사께서 남긴 신발 한 짝 지금까지도 아직 찾지 못했네.’라고 한 것을 보면 당시에도 조사선(祖師禪)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던 것 같다.
조주석교에 다다른 순례일행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나도 마찬가지다. 화두로 접했을 때는 징검다리를 연상했는데, 막상 현장에 와 보니 규모도 장엄하려니와 무지개를 보는 듯 탄성이 절로 나온다. 안내문을 보니 천하제일교(天下第一橋), 대석교(大石橋)로 불리는 조주교는 수나라 대업(大業) 연간(605-618)에 장인 이춘(李春)이 건설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 1400여 년이나 된 걸작이다. 돌다리 위에서 ‘조주의 돌다리(趙州石橋)’라는 화두를 음미해 본다.
한 학인이 조주선사에게 물었다.
“오래전부터 조주의 돌다리에 대해서 들어왔으나 와 보니 외나무다리만 보입니다.”
“그대는 외나무다리만 볼 뿐, 조주의 돌다리는 보지 못하는구나.”
“무엇이 돌다리입니까.”
“건너오너라. 건너오너라!”
조주선사가 다시 말했다.
“나귀도 건너고, 말도 건넌다.”
이를 두고 정혜화상이 백림선사 방장으로 계실 때 다음과 같이 설한 바 있다.
“조주스님은 이 문제를 아주 형상화하고 구체화하고 생동감 있게 불법의 종지를 직접적으로 게양하고 드러내 보여 우리들이 영원히 잊지 못하도록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건너오너라.’는 불법을 밖에서 구하지 말고 스스로 깨달음의 문을 열라는 말이 아닐까. 또한 ‘나귀도 건너고, 말도 건넌다.’는 중생을 이롭게 하는 나귀나 말이 되라는 남전선사의 가르침을 생동감 있게 형상화한 말일 것이다.
정혜화상의 얘기를 더 들어본다.
“선종의 품격은 남에게 의지하여 견해를 지으면 자신이 깨달음의 문을 막아버리는 것으로 여깁니다. 선종은 자신이 스스로 도리를 깨달아 자신의 길을 것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조주스님은 묻는 말에 정면으로 대답하지 않은 것입니다. 핵심은 말 밖에 있으며 말 밖의 뜻을 체득해야 합니다.
조주스님은 우리가 사고할 여지를 용납하지 않고 바로 깎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밀어붙입니다. 오직 몸을 솟구쳐 아래로 한번 뛰어야만 비로소 알 것입니다. 길이 없는 길에 다다랐을 때는 어찌 할 것인가. 바로 몸을 틀 방법을 찾아내야 합니다. ‘산이 다하고 물이 다한 곳에 이르면 자연히 몸을 틀 때를 얻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갈 길이 없는 곳까지 밀어붙여 자기 스스로 몸을 틀 방법을 생각해 내게 하는 것이 바로 선종입니다.”
조주선사는 80세에서 100세까지는 몹시 곤궁하고 적막하게 보냈던 것 같다. 세상 사람들이 스님을 알아보지 못했고, 조주성의 인심이 각박했기 때문이었다. 승당에는 좌선하는 자리나 손 씻을 세면장도 없었고, 살림살이는 간신히 죽이나 먹을 정도였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선상(禪床) 다리 하나가 부러졌는데도 타다 남은 부지깽이를 끈으로 매달아 사용했을까. 그러나 조주선사는 신도가 새로 만들어 시주하려 했지만 번번이 거절하였다. 뿐만 아니라 40년 동안 주지를 살면서도 단 한 번도 신도들에게 편지를 내어 공양을 청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조주선사는 당신의 적막한 선거(禪居)를 <십이시가(十二詩歌)>에 생생하고 섬세하게 묘사하여 남기고 있다.
닭 우는 축시(丑時)-
깨어나서 추레한 모습을 근심스레 바라본다
군자(裙子)도 편삼(褊衫)도 하나 없고
가사는 형체만 겨우 남았네
속옷에는 허리 없고 바지에는 주둥아리가 없다
머리에는 푸른 재가 서너 말
도 닦아서 중생 구제하는 이 되렸더니
누가 알았으랴! 변변찮은 이 꼴로 변한 줄을.
이른 아침 인시(寅時)-
황량한 마을 부서진 절은 참으로 형언키조차 어려운데
재공양은 치워버리고 죽 끓일 살 한 톨도 없다
무심한 창문과 가는 먼지만 괜스레 바라보나니
참새 지저귀는 소리 뿐, 친한 사람 아무도 없다
호젓이 앉아 때때로 떨어지는 낙엽소리 듣는다
누가 말했던가, 출가인은 애증을 끊는다고
생각하니 모른 결에 눈물 적신다.
해뜰녘 묘시(卯時)-
청정함이 뒤집혀 번뇌가 되고
유위공덕(有爲功德)은 속진에 덮이나니
무한전지(無限田地)를 일찍이 쓸어 본 바 없어라
눈썹 찌푸릴 일만 많고 마음에 맞는 일은 적나니
참기 어려운 건 동촌(東村)의 거무튀튀한 늙은이
보시 한번 가져온 일이란 아예 없고
내 방 앞에다 나귀를 풀어놓아 풀을 뜯긴다.
공양 때의 진시(辰時)-
사방 인근에서 밥 짓는 연기만 부질없이 바라보노라
만두와 찐 떡은 작년에 이별하였고
오늘 생각해보며 공연히 군친만 삼킨다
생각을 지님은 잠깐이요 잦은 한탄이로다
백 집을 뒤져봐도 좋은 사람 없어라
찾아오는 사람은 오직 마실 차를 찾는데
차 마시지 못하고 가면서는 발끈 화를 낸다.
오전의 사시(巳時)-
머리 깎고 이 지경에 이를 줄을 그 누가 알았으랴
어쩌다가 청을 받아 촌중 되고 보니
굴욕과 굶주림에 처량한 꼴, 차라리 죽음을 받으리
오랑캐 장가와 검은 얼굴 이가는
공경하는 마음은 조금치도 내지 않고
아까는 불쑥 문 앞에 와서 한다는 말이
차 좀 꾸자, 종이 좀 빌리자고 할 뿐이네.
해가 남쪽을 향하는 오시(午時)-
차와 밥을 탁발하여 도는 데는 정한 법도가 없으니
남쪽 집에 갔다가 북쪽 집에 다다르고
마침내 북쪽 집에 이르러서는 그 수를 헤일 수 없다
쓴 가루소금과 보리 초장
기장 섞인 쌀밥에 상추무침
오로지 아무렇게나 올린 공양이 아니ㄹ며
스님이라면 모름지기 도심이 견고해야 된다고.
해가 기우는 미시(未時)-
이때는 양지 그늘 교차하는 땅은 밟지 않기로 한다
한번 배부르매 백번 굶주림을 잊는다더니
오늘 이 노승의 몸이 바로 그렇도다
선(禪)도 닦지 않고 경(經)도 논하지 않나니
헤진 자리 갈고 햇볕 쐬며 낮잠 잔다
생각컨대 저 하늘의 도솔천이라도
이처럼 등 구워주는 햇볕은 없으리로다.
해 저무는 신시(申時)-
오늘도 향 사르고 예불하는 사람은 있어
노파 다섯에 혹부리 셋이라
한 쌍의 부부는 검은 얼굴이 쭈글쭈글
유마차(油麻茶)라! 참으로 진귀하구나
금강역사여, 애써 힘줄 세울 필요 없다네
내 바라보니, 누에 오르고 보리 익거든
라훌라 아이한테 돈 한 푼 주어 봤으면.
해 지는 유시(酉時)-
쓸쓸함 밖에 무얼 다시 붙들랴
고상한 운수납자 영영 끊기고
절마다 찾아다니는 사미승은 언제나 있다
격식을 벗어난 말 입에 오르지 않나니
석가모니를 잘못 잇는 후손이로다
한 가닥 굵다란 가시나무 주장자는
산에 오를 때뿐 아니라 개도 때린다.
황혼녘 술시(戌時)-
컴컴한 빈 방에 홀로 앉아서
너울대는 등불을 영영 보지 못하고
눈앞은 온통 캄캄한 금주(金州)의 옷칠일세
종소리도 듣지 못하고 그럭저럭 날만 보내니
들리는 소리라곤 늙은 쥐 찍찍대는 소리뿐
어디다가 다시 마음을 붙여 볼까나
생각다 못해 한번 바라밀을 뇌어본다.
잠자리에 드는 해시(亥時)-
문 앞의 밝은 달, 사랑하는 이 누구인가
집안에서는 오직 잠자러 갈 때가 걱정이어라
한 벌 옷도 없으니 무얼 덮는담
유가 유나와 조가 오계(五戒)는
입으로는 덕담하나 정말 이상하구나
내 결망을 비게 하는 건 그렇다 하더라도
모든 인연 물어보면 전혀 모르는구나.
한밤중 자시(子時)-
마음경계가 잠시라도 언제 그칠 때가 있더냐
생각하니 천하의 출가인 중에
나 같은 주지가 몇이나 있을까
흙자리 침상 낡은 돗자리
늙은 느릅나무 목침에 덮개 하나 없다네
부처님 존상에는 안식향(安息香) 사르지 못하고
잿더미 속에서는 쇠똥냄새만 나는구나.
죽을 다 먹었으면 바리때를 씻어라
조주선사의 선풍이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퍼지고 번왕(藩王)들의 귀의를 받은 것은 100세 이후였다. 당시는 번왕들이 각처에서 할거하는 시기였는데, 하북의 연왕(燕王)과 진부(鎭府)의 조왕(趙王)이 조주성을 두고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하북의 연왕이 군사를 거느리고 조왕이 통치하는 진부를 공격하려고 조주석교 너머에 진을 치고 있었다. 기상관측을 담당하는 장수가 연왕에게 보고했다.
“조주 땅은 성인이 사는 곳입니다. 그러니 싸우면 반드시 패할 것입니다.”
연왕은 조왕에게 싸움 대신 연회를 청했다. 두 왕은 연회가 끝나자마자 관음원으로 가 조주선사를 참예했다. 그런데 조주선사는 방 안에서 앉은 채 두 왕을 맞이했다. 연왕이 의아하게 여기며 물었다.
“인왕(人王) 높습니까, 법왕(法王)이 높습니까.”
조주선사는 바로 대답했다.
“인왕이라면 인왕 가운데서 높고, 법왕이라면 법왕 가운데서 높습니다.”
연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대중들이 조주선사에게 설법을 청했다. 조주선사는 먼저 연왕에게 되물었다.
“대왕께서는 주위사람이 많은데 어찌 노승에게 설법을 청하십니까.”
연왕은 조주선사 주변의 사람들을 물러나게 명했다. 그러자 사미승 문원(文遠)이 소리쳤다.
“대왕께 아룁니다. 그런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연왕이 물었다.
“어떤 사람이 주위사람이란 말이냐.”
“대왕께서는 존호(尊號)가 많아서 스님께서 설법하지 못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연왕이 말했다.
“선사께서는 이름 따위는 개의치 마시고 설법해 주시오.”
두 왕은 긴 설법을 듣고는 조주선사를 찬탄하며 돌아갔다. 이때도 조주선사는 방 안에서 앉은 채 배웅했다.
다음 날, 연왕의 휘하 장수가 아침 일찍 조주선사를 찾아 관음원으로 왔다. 조주선사는 방을 나와 장수를 맞이했다. 장수가 대뜸 힐난했다.
“어제는 두 대왕이 오는 것을 보고도 일어나지 않으시더니 오늘은 어인 일로 제가 오는 것을 보고 이렇게 나와 맞아주십니까.”
“그대가 대왕이었다면 노승은 일어나 맞이하지 않았을 것이오.”
장수는 조주선사의 말에 기세를 꺾고 돌아갔다. 얼마 후, 조왕이 사신을 보내 조주선사께 공양을 올리겠다고 청했다. 조주선사가 허락하고 공양 장소로 나가자 조주성 사람들이 다 모여 있었다.
이후 조왕은 선원을 세워 보시하려 했다. 그러나 조주선사는 사람을 보내 거절했다.
“만약 풀 한 포기라도 건드린다면 노승은 조주로 돌아갈 것이오.”
조주선사는 관음원 밖의 것은 세상 사람들의 것이라 여겼고, 풀 한 포기의 생명도 아꼈던 것이다. 마침내 조주선사는 세연을 마치려 하였다.
“내가 입적하거든 태워버리되 사리를 수습하지 말라. 종사의 제자는 세속 사람들과 다르다. 더욱이 몸뚱이는 허깨비일 뿐이니 무슨 사리가 생기겠느냐.”
조주선사는 제자를 시켜 불자(拂子)를 조왕에게 보내면서 이렇게 전했다.
“이는 노승이 일생 동안 쓰고도 못 다 쓴 것입니다.”
조주선사는 897년 120세로 단정히 앉은 채 입적했다. 그러자 조왕이 진찬(眞讚)을 지어 바쳤다.
푸른 개울에 비친 달이요
맑은 거울 속의 얼굴이라
우리 스님 우리를 교화하셨네
천하의 조주선사시여.
碧溪之月 淸鏡中頭
我師我化 天下趙州
조주 시가지로 나오니 벌써 어스름이 깔리고 있다. 조주선사가 남긴 화두들이 차향처럼 마음을 맑힌다. 조주선사의 화두는 절 안에만 있지 않고 무한하다. 일상 속에서 본래면목을 깨닫게 해준다.
한 학인이 조주선사께 물었다.
“무엇이 저 자신입니까.”
“죽은 먹었느냐.”
“먹었습니다.”
“바리때를 씻어라.”
죽 먹고 바리때를 씻는 주인공은 누구인가. 날마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나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조주선사의 질문과 답은 놓인 자리가 늘 다르다. 질문이 답이 되고, 답이 질문이 된다. 생각과 말의 길을 차단시켜버리기 위해서다. 사람들의 본래면목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다.
茶提 정찬주(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