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봉사의 동쪽에 위치해 동산법문이라 불려
홍인대사(601-674)가 가르침을 편 오조사는 호북성과 안휘성, 강서성이 경계를 이루는 지점인 빙무산(憑茂山) 백련봉에 자리하고 있다. 오조사의 행정구역은 사조사와 같은 황매현이고, 쌍봉산에서 동쪽으로 30km 떨어진 곳에 있으니 그리 먼 거리는 아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동쪽에 있는 오조사를 동선사(東禪寺)라 불렀고, 홍인대사의 법문을 동산법문(東山法門)이라고 했던 것이다.
홍인은 도신의 법을 받아 빙무산으로 옮긴 뒤, 한 노인에게 땅을 시주받아 절을 짓고(654년) 비로소 전생의 발원을 펼친다. 홍인은 전생부터 ‘불법을 깨쳐 널리 펴 보이겠다’는 원력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홍인의 출생과 수행자로서의 삶은 전생의 원력에 의한 필연인 셈이다.
산문은 웅장하여 마치 성문을 연상케 하고 있다. 오조사라는 편액을 중심으로 왼쪽 문과 오른쪽 문 위로 신수와 혜능의 게송이 각각 금색으로 써 있다. 홍인의 제자인 신수(神秀)는 북종선(北宗禪)을, 혜능(惠能)은 남종선(南宗禪)을 제창했던바, 이 오조사가 바로 선의 황금시대로 들어서게 했던 발원지와 같은 것이다.
신수는 홍인의 제자 10인 중에서 스승 대신에 강의와 토론을 할 만큼 뛰어난 제자였다. <능가사자기>는 홍인의 제자 10인 중에서 단연 첫 번째의 제자로 신수를 거론하고 있다. ‘그가 <능가경>을 가르쳤고, <능가경>의 깊은 도리를 터득한 바가 뛰어났으므로 듣는 이들에게 큰 도움을 줄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홍인 수제자 신수, 나무꾼 혜능 등장에 입지 '흔들'
그런데 무지렁이 나무꾼 혜능이 등장함으로서 신수는 자신의 위치를 위협받고 만다. 그것도 혜능이 출가한 지 8개월 밖에 되지 않은 행자 신분으로 연자방앗간에서 허리에 무거운 돌을 메고 방아를 찧고 있을 때였다. 홍인은 많은 대중에게 각자 공부한 것을 게송으로 지어 오라고 지시를 내렸다. 대중의 교수사(敎授師)로서 신망이 높던 신수가 먼저 게송을 지어 회랑 벽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붙였다.
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勤拂拭
勿使惹塵埃
몸은 깨달음의 나무요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나니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티끌과 먼지가 묻지 않게 하라.
방앗간지기 혜능도 자신은 글을 읽거나 쓸 줄 몰랐기 때문에 한 학인에게 부탁하여 신수의 게송이 붙은 맞은편 회랑에 자신의 게송을 써 붙여주도록 했다.
菩提本無樹
明鏡亦非臺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
깨달음은 본래 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 또한 받침대 없네
본래 한 물건도 없나니
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가 있으리오.
두 게송을 읽어본 홍인은 아직 깨달음의 문에 이르지 못한 신수에게 더 정진할 것을 명했고, 마음자리에 바로 들어선 혜능에게는 대중들의 질시를 염려하여 모두가 잠든 삼경에 조사당으로 은밀하게 부른 뒤 <금강경>을 설하고 심법을 전했다.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디 티끌이 묻겠는가?
오조사 산문에 신수와 혜능의 게송만 소개하고 있음은 중국 선종사에 그들의 영향력이 그만큼 심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홍인이 입적한 후 신수는 호북성 형주 옥천사로 가 북종선을 폈으며, 혜능은 고향인 광동으로 돌아가 남종선을 폈던 것이다.
그러나 신수와 혜능만이 홍인의 법을 받은 제자였을까. 그건 결코 아니다. 다행스럽게도 <능가사자기>는 홍인의 제자들 중에 걸출했던 10인의 특징을 기록하고 있다.
<능가경>에 달통했던 신수가 있으며, 불법과 학문에 뛰어났던 지선(智詵)과 유주부(劉主簿)가 있으며, 늘 생각나게 하는 혜장(惠藏)과 현약(玄約)이 있으며, 수행을 잘했던 노안(老安)이 있으며, 세상 사람들을 가르치는 데 부족함이 없는 법여(法如)와 혜능(惠能) 고려승 지덕(智德)이 있으며, 강연에 뛰어났던 의방(義方)이 있으며, <능가인법지(楞伽人法志)>를 쓴 현색(玄賾)이 있었던 것이다.
홍인의 제자 중 고려승 지덕은 발군의 실력자
물론 여기서 내 눈길을 사로잡는 인물은 고려승 지덕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지덕은 삼국에서 온 구법승이었으리라. 사조 도신의 제자 법랑처럼 오조 홍인의 대표제자 중에 지덕이 끼어 있음은 예삿일이 아니다.
더구나 <능가사자기>는 세상 사람들을 가르치는 데 부족함이 없는 인물로 법여와 혜능 그리고 지덕 등 3명만 꼽고 있는 것이다. 삼국인 지덕이 홍인 당대에 벌써 세상 사람들의 스승이 될 만한 인물로 인정받았음은 그저 단순한 기록이 아닌 큰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법랑이 도신의 4대 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것처럼 지덕 또한 홍인의 1천여 명의 제자 중에서 군계일학(群鷄一鶴)이었으니 말이다.
산문을 들어서면서 나는 합장하고 고개를 숙인다. 홍인대사에게 한 번, 혜능에게 한 번, 구법승 지덕에게 한 번... 가능하다면 일찍이 홍인 회상으로 찾아와 발군의 제자가 되었던 지덕스님의 혼을 만나 오조사 경내를 함께 참배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최근에 조성된 산문보다는 옛길을 이용해 경내로 오른다. 혜능뿐만 아니라 구법승 지덕이 홍인대사를 친견하려고 걸었던 옛길이다. 나에게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통로가 옛길이다. 한두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아치형 석문(石門)과 홍예교가 정겹다. 더구나 홍예교 앞면 쪽에 방하착(放下着), 뒷면 쪽에 막착과(莫錯過)란 말이 눈길을 끈다.
여기서도 착(着)을 ‘집착하다’라는 뜻으로 해석해 본다. 통도사 극락암에 주석하셨던 경봉선사의 법문 중에 많이 나오는 경구이다.
구법승 지덕이 걸은 옛길에서 방하착을 떠올리다
방하착(放下着).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고정된 것 없이 무상하니, 즉 인연 따라 변화할 뿐이므로 집착을 ‘놓아버려라’는 말이다. 이 세상에 내 것이라고 주장할 만한 것은 하나도 없으니 제발 붙잡지 말라는 뜻이다. 우주의 별들도 생성되어 머물다가 파괴되고 없어지고(成住壞空), 만상은 태어나 존재하다가 다르게 변하면서 사라지며(生住異滅), 인간 또한 나고 늙고 병들고 죽으니(生老病死) 연기를 깨달았다면 무엇 하나 놓아버리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방하착은 선종사서의 통사(通史)인 <오등회원(五燈會元)> ‘세존장(世尊章)’에 흑씨범지(黑氏范志)가 오동꽃을 세존에게 공양했을 때 세존이 범지를 불러 ‘방하착하라’고 말씀하신 데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공안집인 <종용록(從容錄)> 제57칙인 ‘엄양의 한 물건(嚴陽一物)’에도 방하착이란 말이 나온다.
엄양이 조주선사를 찾아가 다음과 같이 물었다.
“한 물건도 가지고 오지 않았을 때는 어찌 합니까.
이에 조주선사가 말했다.
“놓아버려라.”
그러자 엄양이 다시 물었다.
“한 물건도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놓아버릴 것이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다시 지고 가라.”
막착과(莫錯過).
착(錯)은 ‘어긋나다’ 혹은 ‘잘못되다’라는 뜻이니 한자대로 풀이하자면 ‘잘못 지나가지 말라’는 말이다. 중국에서는 ‘기회를 잃지 말라’라는 뜻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잘못 지나가게 되고,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잃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집착과 어리석음의 덫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방하착이나 막착과는 자신이 겪고 있는 이것이란 전생에 정해진 일(是前生註定事)이니 깨어있는 의식으로 지켜 볼 뿐 집착하지 말라는 경구나 다름없는 것 같다. 결국 번뇌 망상이 붙은 마음에서 무엇에도 걸림이 없는 무심(無心)으로 돌아가 살라는 말이 아닐까. 문득 화두를 소리 내어 외기도 하는 것처럼 마음속으로 중얼거려 본다.
‘놓아버려라, 놓아버려라, 놓아버려라.’
홍예교를 지나는 동안, 비록 짧은 순간이지만 머릿속에 들끓는 온갖 잡생각을 다 놓아버리고 나니 비로소 대숲의 향기가 싱그럽다. 방하착하고 막착과하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남의 동네처럼 어딘지 생경해 보이던 오조사 경내가 달리 보인다.
대웅보전 앞의 송나라 휘종이 하사했다는 천하선림(天下禪林)이란 글씨에서도 소쇄하고 청량한 선풍(禪風)이 느껴진다. 천하의 선객들이 모여 선풍을 진작시킨 도량이라는 뜻이리라. 마찬가지로 송나라 영종이 써서 보낸, 천하의 조사들이 거쳐 간 뜰이란 뜻의 천하조정(天下祖庭)이란 글씨도 오조사의 오랜 역사를 말해 주고 있는 듯하다.
정찬주(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