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의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열심히 발품을 팔며 샅샅이 돌아봐도 막상 다녀오고 나면 늘 부족함이 느껴지곤 하는 것이다. 수원화성을 벌써 몇 번이나 다녀왔음에도 놓치고 들러보지 못한 곳이 있기 때문이다.

수원 화성의 화홍문 위 방화수료정 옆에 위치해 있는 창성사진각국사대각원조탑비가 있는 비각의 모습.


보물 제14호로 지정된 창성사진각국사대각원조탑비. 창성사는 광교산에 있던 사찰이었으나 조선 후기 소실되면서 비만 이곳에 옮겨졌다.


방화수류정과 북암문의 풍경. 방화수류정은 화홍문과 용연과 함께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만들어주고 있다.

지나쳤던 작은 비각 하나가 눈에 띤다. 창성사진각국사대각원조탑비가 있는 비각이다. 이 비각의 비석이 보물 제14호로 지정된 소중한 국보였다는 사실도 모른 채 지나쳤으니 수원에 들른 길에 다시 찾아보기로 했다.

창성사진각국사대각원조탑비를 찾고 보니 실상 특별한 것은 별로 없었다. 작은 비각과 그 안에 오래된 비석 하나. 눈에 보이는 것은 별스러운 것이 없는 비석이지만 아마도 이 비석에 새겨진 역사적인 기록들이 바로 보물의 격을 갖게 한 것이리라.

이 비석은 원래 광교산 창성사 터에 있던 것이었으나 1965년 지금의 자리 방화수류정 옆에 옮기고 비각을 세운 것이라고 한다. 창성사는 수원의 북쪽에 위치한 수원의 진산인 광교산에 있던 사찰이었으나 조선 말기에 이르러 폐사되어 지금은 그 터만 남아있다.

진각국사 천희(天熙)는 고려말기의 스님으로 경주에서 태어나 1325년 승과에 급제하여 부인사와 개태사 등에서 수행하였다.

공민왕 13년에 중국으로 유학을 다녀오고 치악산에서 머물게 된다. 그리고 공민왕이 시호를 내리고 국사에 봉해진다. 당시 왕사였던 그 유명한 나옹화상과 함께 선교(禪敎)의 공부시관(功夫試官)을 맡았다고 한다. 공부시관이란 시험감독이나 시험에 관한 일을 맡아보는 벼슬아치라고 보면 될 것이다.

훗날 부석사 주지가 되어 무량수전을 보수하고 금강산과 오대산 등지에서 후학들을 양성하다가 광교산 창성사에서 입적한 대선사이다.

쓸쓸하고 고즈넉한 수원천변의 풍경. 멀리 화홍문의 아름다운 홍예가 드러나 보인다. 수원천은 광교산에서 발원하여 수원을 관통하는 하천이다.


수원천을 따라 걷다가 매향교 앞에서 빠져나오면 바로 만나게 되는 수원화성박물관. 박물관 야외전시장에 놓여진 녹로. 그러니까 요즘의 타워크레인 기능을 하는 기구의 모습이 보인다.


아이들 장난감처럼 보이는 이 작은 수레는 동자라는 도구로 성곽을 쌓을 때 사용되는 석재를 나르는 기구로 사용되었다.


거중기의 모습이다. 거중기는 도르레의 원리를 이용하여 무거운 물건을 쉽게 들어올리는 기능을 했던 기구이다. 지금의 기중기에 해당된다고 보면 된다.


선정비가 있는 풍경. 이 비들은 조선 후기 수원에 내려와 다스렸던 관리들의 공덕을 칭송한 비들이다.

비각을 살펴보고 방화수류정 앞으로 내려와 수원천변을 따라 걷는다. 얼어 있던 겨울 개천이 녹으며 흐르고 있었다. 봄이 지척에 와 있음을 피부로 느끼던 시간이었다. 조만간 버들가지에 연두색이 가득해 질 것이다. 싱그러운 연두 빛이 간절해진다.

삭은 갈대 너머로 화홍문이 아스라이 눈에 들어온다. 멀리 보이는 화홍문의 홍예는 여전히 아름다운 모습이다. 매향교에 이르기 전 수원천변의 산책로를 빠져나오니 커다란 박물관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수원화성박물관이다.

수원화성박물관 앞은 야외전시장이다. 지금의 타워크레인 역할을 했던 ‘녹로’를 비롯해서 거대한 돌덩어리들을 들어 올리던 ‘거중기’와 마치 장난감처럼 보여 지던 작은 수레 ‘동차’도 모두 신기한 모습으로 눈에 들어온다.

‘이런 장비들이 있었기에 3년이란 짧은 시간에 이 아름답고 거대한 화성을 축조한 것이지!’

정조의 실학정신과 실험정신에 다시 한 번 감복하는 순간이었다.

수원화성박물관까지 돌아보고 나와 수원사로 간다. 수원천변을 따라 걷기만 해도 이 처럼 들러 볼 곳이 많다.

현대식 건물로 지어진 수원사의 건물 벽면에 조성된 관음보살상. 석양에 비친 관음보살의 미소가 아름답다.


수원사 경내의 풍경. 수원사는 1920년 당시 주지였던 강대련 스님이 건립했다.


수원사 극락보전의 모습. 역시 1920년대에 지어졌다.


극락보전에서 바라본 수원사 전경.

현대식 건물로 세워진 수원사는 전통사찰만 돌아보던 내게는 많이도 낮 설고 어색하게만 느껴진다.

그래도 한 번은 들러보고 싶은 마음에 절집 안으로 들어선다. 건물 벽면에 조성된 청동 약사관음이 석양 붉은 노을빛에 젖어 들고 있다.

경내에 들어서니 그 모습은 바깥에서 본 풍경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몇 채의 요사와 큰 법당 하나가 정면에 드러난다. 전각에는 '극락대원전'이라는 커다란 현액이 걸려 있다. 이름으로만 볼 땐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법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식 건물 안에 이런 전통 전각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이 전각은 1920년 이곳 수원사가 창건될 때 지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수원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 용주사의 직할사찰이며 도심 포교당으로 세워진 절집이다.

1920년 당시 용주사의 주지 강대련 스님이 수원시의 시민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세웠는데 점차 이곳 수원사를 찾는 시민들이 많아지자 1999년 다시 현대식 건물로 짓고 수원사 불교문화원으로 단장하였다고 한다.

수원사 뒷길에서는 수없이 많은 점집들이 늘어서 있다. 왜 이리 많은 점집이 들어섰는지 궁금하다.


수원화성의 봉돈에 올라보니 해가 뉘엿뉘엿 팔달산 너머로 지기 시작한다. 낙조의 풍광이 그런대로 멋있다.


수원사 옆에 위치한 웅장한 딕양식의 수원제일교회 전경.


창룡문에서 바라본 수원화성의 낙조.

수원사를 돌아보고 뒷길로 접어드니 골목 마다 점집들이 넘쳐난다. 수원시내 특히 화성의 성안에는 유독 많은 점집들을 볼 수 있었다.

수원 화성 내에 어찌해서 점집이 이렇게 많은지 그 연유가 무척이나 궁금해지기만 한다. 거의 한 집 건너 한 집 꼴로 무속신앙의 신당들이다.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따로 알아보고 그 궁금증을 해소해 볼 참이다.

화성 봉돈에 오른다. 팔달산으로 해가 기울고 있다. 성 너머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는 교회당의 유리창에도 노을빛이 번지고 있다.

이 교회가 수원제일교회다. 이렇게 웅장한 모습으로 지어진 지는 20년 전. 1950년대 팔달산 밑에서 천막교회로 시작했다고 한다.

성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하나는 불교의 포교당 건물이 하나는 기독교의 예배당 건물이 우뚝 솟아 있다. 성 안에는 부처님이 성 밖에는 예수보살님이 중생들의 아픔과 고통을 어루만지고 있는 모습이다.

이웃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 이웃 종교끼리 서로를 이해하는 종교관이 세워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던 순간이다.

중생이 우선이고 중생이 사랑 받는 자비와 박애의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보던 순간이다. 내가 믿는 신만이 세상을 구원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함께 아름다운 세상에서 아름다운 삶을 영위하는 것을 꿈꾸는 세상을 생각해 본다.

상대의 아픔을 먼저 들여다보고 그 아픔을 함께 나누겠다는 마음공부가 먼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수원 화성 일대를 돌아보며 가져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