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누리길을 걷다보면 이처럼 쓰레기 더미를 만나는 일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유쾌함과는 거리가 먼 엉터리 길이다.
DMZ평화누리길은 행주산성 입구에서 시작된다. 이왕지사 나선 길이니 먼저 행주산성을 돌아보기로 한다. 행주산성을 따라 걸어 오른다. 한강의 수면에서 피어 오른 수증기가 물안개가 되어 세상을 지우고 있다. 뿌연 강 풍경을 바라보며 산성의 정상에 오른다. 권율 장군의 격전지이다. 육지에서 임진왜란의 승기를 잡기 시작하던 곳이 이곳 행주산성이 아니던가.
아, 권율 장군이시여! 도원수 권율 장군의 호국의지가 감전된 것처럼 온몸으로 전달된다. 권율장군의 영정이 모셔진 사당 충장사에 들러 분향 참배를 하고 행주산성을 빠져 나왔다. 임진왜란보다 기간을 짧았지만, 아직도 끝나지 않은 한국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간직된 곳 DMZ의 이름을 떤 길을 가기에 앞서 권율 장군에게 인사를 올리는 것은 후손된 입장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리라.

행주산성 정상에 위치한 권율장군 대첩비. 멀리 안개 자욱한 한강이 보인다.

권율장군의 사당인 충장사. 이곳에서 분향을 하고 나라를 지킨 선조의 충절에 머리를 숙인다.

행주산성을 빠져나와 내려가다보면 행주서우너을 볼 수 있다. 문이 닫혀 들어가 볼 수 없다.

행주서원의 현판 글씨는 고종때의 무신 신헌의 작품으로 당시 명필로 이름이 높았던 인물이다. 이 서원은 권율장군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서원이다.
행주산성에서 내려와 좌측 내리막길로 접어들면 비로소 DMZ평화누리길 고양 첫째길이 시작된다. 길을 따라 양편으로는 **가든이란 이름의 음식점들이 줄지어 있다. 주로 민물장어와 참게 요리 집들이다.
그렇게 길을 따라 한참 걸어 내려가니 표지판이 좌측으로 행주서원이 있음을 알려준다. 행주서원은 현종이 권율 장군의 큰 공을 기리며 권율 장군의 제사를 겸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한국전쟁으로 전소돼 다시 복원해 놓았는데 문이 잠겨 있어 안으로 들어 설 수는 없었다.
길은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는 한강을 잠시 보여 주다가 다시 음식점이나 라이브카페들로 이루어진 거리로 이어진다. 표지판이나 안내판이 없어 걷는 내내 이곳이 평화누리길인가를 의심케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혹시나 싶어 현지인들에게 물어봐도 평화누리길이란 이름은 아예 금시초문이란다. 홍보가 덜 됐거나 아니면 졸속행정의 산물일 것이다.

DMZ평화누리길에서 양쪽에 철조망 구간이다. 거리가 너무 짧아 DMZ의 느낌을 만끽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길을 알리는 표지판은 훼손되었고, 방향도 엉뚱한 곳을 향하고 있다.

자유로와 신자유로 사이로 난 길을 걷는데 양쪽 대로에서 들려오는 차량들의 굉음과 공장에서 나오는 폐수가 흘러 쾌적하고는 거리가 먼 평화누리길이다.

길 좌측으로는 자유로가 있어 소음에 고통을 느낄 정도이고 길가에는 쓰레기가 널려 있다.
인도가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길에는 차들이 쉴 새 없이 지나다니고 있어 위태위태하다. 행주대교 교각 아래에 이르렀음 즈음에서야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길을 잘못 들지는 않았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다시 걷기를 시작한다.
철조망이 양쪽으로 설치된 길에는 통문도 설치되어 있다. 그 길을 걸으며 분단의 아픔을 느껴보기도 잠시, 길은 꺾어져 자유로 아래 토끼굴로 접어들고, 그 다음부터는 차량의 굉음이 요란한 농로를 따라 걷어야 한다. 농로의 길섶은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고 먼지 풀풀 날리는 길은 주말 오후임에도 걷는 사람이 없어 쓸쓸하고 삭막하기까지 하다.
그렇게 길은 계속 농로를 따라 몇 번을 꺾이면서 이어지는데 한참을 걸어야만 어쩌다 한 번씩 보이는 표지판이 반갑기는커녕 야속하기만 하다. 농로가 끝나면 혹시나 한강의 습지로 잘 알려진 장항습지를 지나치게 되려나하는 기대감과는 점점거리가 멀어지고 이제 길은 대놓고 대로변 인도를 따라 나 있었다. 맹렬하게 질주하는 차량들. 혹시 둘레길 같은 것을 상상했다면 실망이 큰 길이다.

표지판이 제대로 설치되는 않아 길을 잃기 십상이다. 군데군데 걸려 있는 리본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배려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길이다.

농로를 빠져나오면 찻길 옆을 걸어야 한다. 호수로라는 이름 때문에 호수로 이어진줄 알았는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인도를 걷다가 발견한 주먹만한 나사뭉치. 대형트럭에서 떨어져 나온 것으로 만약 차량 바퀴에 튀어나온다면 생명을 위협하는 앗찔한 무기가 아닐 수 없다.

길은 다시 호수 아래 농로로 이어지지만 아스팔트 길이어서 발에 주는 피로도가 장난이 아니다. 벗나무가 줄지어 있어 이른봄 벚꽃이 만개할 때면 유일한 볼거리를 제공해줄 것 같다.
호수로의 인도를 따라 걷는 길은 호수로 아래 농로로 진입하게 되고, 다시 사람 없는 길을 묵묵히 걷게 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나마 길가로 벚나무가 줄지어 심어져 있어 벚꽃 필 즈음이면 아름다운 벚꽃길이 열릴 적이라는 기대가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를 걷는 일은 즐거움 보다는 고통이 수반된 순례의 길처럼 느껴진다.

육교겸 전망대의 기능을 갖도록 만들어놓은 조형물. 무엇을 보라는 것인지 그 의도를 알기 어렵다.

드디어 도착한 일산 호수공원의 전경. 호수공원의 전경은 멋진 겨울 호수의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피곤하고 피로하며, 허술한 조성과 관리로 망친 기분을 조금이나마 위로해준다.
이 길을 걷자니 일회용 전시행정이 만들어낸 겉치레 길이라는 의구심이 끊임없이 고개를 쳐든다. 빈약한 표지판과 안내판. 안전장치 하나 없는 길은 오로지 차를 위한 길이지 사람을 위한 길은 아니었다. 그것도 트레킹을 위한 길로는 도무지 이해하기 할 수 없게 만드는 짜증나고 화나는 길이었다.
서서히 무거워지는 걸음으로 호수공원에 도착한다. 고양시 첫째길 구간을 모두 걸은 것이다. 즐거움 보다는 아쉬움이 많았던 길, 이제는 제법 알려졌을 법한 이 누리길을 걷는 동안,
왜 이 길을 걷는 사람이 없을까라는 의문이 저절로 풀렸다.
지금이라도 길의 구간을 재조정하고 정비할 곳은 정비하고 좀 더 볼 것 많은 구간으로 꾸며준다면 사람들의 발길을 불러 모을 수 있을 것이다.
혹시 길의 이름이 DMZ평화누리길이라서 전쟁의 위험과 아픔을 온몸으로 경험하도록 했다면 몰라도, 평화누리길이라는 취지로 조성되었다면 취지에 맞게 조성이 되어야 할 것이다. DMZ평화누리길이 허울 좋은 전시행정의 산물이 아니라 분단국가의 현실을 알게 하고 통일을 염원하는 평화의 길로 거듭나도록 관계기관의 분발을 촉구한다.